'워킹맘 무덤'이라 불리는 초등 돌봄… 쏟아지는 정책에도 아이 돌봐줄 곳 없어 발 동동

[창간 35주년/ 지속가능한 돌봄] (1) 프롤로그
초등생 자녀 돌봄 공백에 돌봄교실·학원·조부모 총동원
맞벌이 부부 “한 명 월급 고스란히 자녀 학원비로 쓴다”
돌봄 공백, 경력 단절이나 저출생 원인 작용… 해법 모색

[한라일보] 지난해 말 기준 제주지역 합계출생률 0.83명, 출생아 수 3200명, 초등학생 수 3만명 대 급감. 저출생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출산 또는 자녀 돌봄에 있어서 발생하는 어려움과 불확실성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하교가 빠른 1학년은 일하는 엄마(워킹맘)들이 퇴직을 가장 많이 고민하는 시기여서 '워킹맘의 무덤'이라 불린다.

제주는 전국과 비교해 맞벌이 가구와 자영업 비중은 높고 소득은 낮은 지역으로 꼽힌다. 낮은 개인 소득으로 맞벌이를 선택하고, 이 선택은 돌봄 여건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 아이 돌봄을 위해 휴직 또는 퇴직을 선택하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가구 소득은 감소한다. 이에 경제적 지원, 현금성 지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돌봄 고민을 해결하겠다며 쏟아지는 정책에도 부모들의 발길은 학원으로 향한다. 초등돌봄은 정말 이렇게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시간에, 우리 아이들을 과연 누가 돌볼 것인가.

|신학기 시작에… 워킹맘은 "3월의 공포"

오후 2시 태권도, 3시 영어, 4시 피아노, 월·수 수영, 목·금 미술….

양혜은(40·제주시 노형동)씨가 초등학교 2학년 자녀의 일주일 시간표를 짜는 모습은 마치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자녀의 정규 수업 이후 일정을 퇴근 시간 전까지 최대한 빈틈 없이 채워 넣으면 미션 완수다. 이 테트리스의 빈틈은 곧 '돌봄 공백'이다.

방과 후 이용할 수 있는 돌봄 서비스도 있다. 문제는 늘 수요 대비 턱없이 적은 공급이다. 늘봄과 돌봄·방과후 등 학교 안 돌봄과 지역사회 돌봄이 있지만, 모집 인원이 제한된 데다 학교 인근 학원의 시작 시간대와 겹치는 경우가 많아 참여를 주저하게 된다. "차라리 자녀가 조금이라도 배우고 확실히 안전했으면" 하는 생각에 혜은 씨가 선택한 답지는 결국 사교육이다. '학원 돌봄'은 싸지 않다. 수학과 영어가 각각 20만원, 수영· 태권도 15만원, 미술 7만원. 월 약 80만 원이 첫째 아이 사교육비다. 내년 입학을 앞둔 7살 둘째 아이까지 합하면 학원비만으로 월 150만원을 훌쩍 넘긴다. 이 비용은 방학이면 더 늘어난다. 학교에 가지 않아 생기는 돌봄의 빈틈을 학원이 '특강'으로 메워주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인 혜은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한 명의 월급을 교육비에 고스란히 쏟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라며 "학원비에 소요되는 경제적 무게와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사적 돌봄'을 책임져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의 무게까지 쌓여간다"고 말했다.

|학교, '교육' 주체서 '공공 돌봄' 주체로

돌봄에 대한 학부모의 요구에는 아이의 보호에 관한 '안전 돌봄', 적극적인 교육을 기대하는 '교육 돌봄'이라는 요구가 공존한다. 이에 경제적 이유를 더해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건 학교에서의 '공공 돌봄'이다.

초등학생 대상의 돌봄 서비스는 올해 시작된 늘봄학교를 비롯해 돌봄·방과후 프로그램, 지역아동센터·다함께돌봄센터·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 마을 돌봄 등이 있다. 타 시설을 이용하는 형태보다도 돌봄교실 등 학교 시설을 이용한 돌봄 시간 연장형 정책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난다.

이 같은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춰 올해 첫 발을 뗀 늘봄학교는 교육과 돌봄을 융합해 '돌봄을 하는 교육'이라는 개념을 실천하겠다는 정책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아침·저녁 돌봄은 물론 긴급 돌봄도 가능하다.

시범 운영이 한창인 지금, 현실에서 들은 이야기는 정부의 설명과는 조금 달랐다. 도내 한 늘봄학교 시범 운영 학교의 경우 오후 2시까지만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요일별로 이용자를 추첨해 주중 하루 또는 이틀만 당첨될 수 있다는 학부모의 푸념도 들려왔다. 시범운영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학원 수업 등으로 '테트리스 블록 쌓듯' 돌봄 공백을 메울 시간표를 짜야 하는 맞벌이 가정에겐 아직까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아보인다. 2025년, 학교는 일하는 엄마의 육아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학교 현장의 목소리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돌봄교실에 남아 있지 않고 방과 후에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집보다 학교가 더 안전한 곳이기도 하다. 일하는 학부모들은 일하는 시간 동안에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방과 후에 자녀들을 돌봐주기를 바란다.

도내 한 초등교사는 "학교별로 초등돌봄교실에 참여하는 유형과 여건이 각자 다르고, 업무 분장에도 늘 어려움을 겪는다"며 "학교교육과정 운영이 주가 되는 학교에서 방과 후 돌봄교실을 무리하게 운영할 경우 학교 수업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운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돌봄 전담사는 "우리는 돌봄 교실의 현장을 아이들이 대충 시간을 때우는 공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교육이라는 게 이뤄지고 있다"며 "큰 학교일수록 어렵다. 겸용 교실을 쓰는 경우 담임 교사와 돌봄 교사와의 소통도, 갓 입학한 아이들과 학부모와의 소통을 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도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돌봄 시간 연장'만이 지속가능한 돌봄일까

늘봄학교는 공적돌봄의 선택권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더 늦은 시간까지 누군가가 아이를 돌봐주는 방법만으로는 지금의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돌봄은 '저출산', '일과 가정 양립'이라는 대전제를 갖고 발달해 왔다. 공적 돌봄을 무한정 늘리기만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교육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7·9세 아이를 둔 고모(38·제주시 노형동)씨는 "국가에서 아이를 봐줄테니 나가서 일하라는 구조가 적절한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가정 양립이 이뤄지기 위해선 회사 내부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는데, 제 경우 공무원이라 법적인 테두리가 있어서 괜찮지만 민간에선 정말 충돌이 많다고 한다"며 "아이가 아파서 가야 하는데 '우리 때는' 이라는 말로 치부하거나, '양호실에 좀 누우면 되지. 그것 때문에 가느냐'는 말을 여전히 들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고 사례를 들었다.

많은 일하는 엄마들이 일과 가정의 줄다리기에서 한 쪽을 포기하는 상황에서, 돌봄 서비스 확대가 또 다른 돌봄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아이들의 돌봄 장소가 이동이 되는 건,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고씨는 "저녁 8시까지 학교에 아이들을 머물게 하든 다른 기관에 맡기든, 그 엄마들도 누군가의 엄마일텐데, 그렇게 해서 또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받는 거다. 그게 잘못된 정책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본보는 올해 이미 작동 중인 돌봄 지원 정책에 구멍은 없는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많은 부모가 공교육 대신 사교육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가 뭔지 점검해본다. 특히 지역사회의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며, 제도적 뒷받침을 통한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학부모들의 신뢰와 이용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돌봄'의 방향도 모색한다. 돌봄 선진국으로 꼽히는 해외 사례와 타 지자체의 사례도 들여다볼 게획이다.

강다혜기자 dh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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