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제 쏟아질라”…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 ‘빚투’ 차단 나선 증권사들

강정아 기자 2024. 9. 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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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영풍·영풍정밀 투자경고종목 지정
증권사 신용거래 막혀… 증거금률도 100%↑
KB證, 고려아연 신용대출도 1억원으로 제한
경영권 분쟁에 개미 ‘투기성 거래’ 급증하자
빚투 막고 주가 급락에 따른 미결제 위험 방지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면서 주가가 큰 변동성을 보이자 증권사들이 ‘빚투(빚내서 투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경영권 갈등’이란 테마에 올라타 한 몫 챙기려는 수요가 주가를 요동치게 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들 기업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이 9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한국거래소가 영풍과 영풍정밀을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하면서 증권사들이 제공하는 두 종목의 신용거래가 모두 막혔다. 미수거래 보증금인 위탁증거금률도 100%로 상향 조정되면서 사실상 미수거래도 불가능해졌다. 경고종목 지정은 이르면 내달 8일 해제될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과 메리츠증권은 경고종목 지정예고가 나왔던 지난 20일 선제적으로 영풍과 영풍정밀에 대한 위탁증거금률을 100%로 올리고 신용대출 불가 종목으로 분류한 바 있다.

이날 고려아연은 거래소로부터 단기과열종목으로 지정예고됐다. 고려아연은 이외에 투자주의를 받진 않았지만, KB증권은 이달 19일 고려아연의 신용대출 종목군을 개인당 최대 20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S’에서 ‘F’로 변경했다. F는 개인당 최대 5억원, 종목별 1억원까지 신용대출이 제한된다. 위탁증거금률도 20%에서 40%로 인상했다.

KB증권은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 변동에 대해 차액만을 거래하는 차액결제거래(CFD) 증거금률도 조정했다. 고려아연·영풍정밀의 CFD 증거금률은 같은 날 40%에서 50%로 상향됐다. 이보다 앞선 이달 10일에는 삼성증권이 고려아연의 위탁증거금률을 30%에서 40%로 올렸다.

KB증권 관계자는 “고려아연·영풍정밀·영풍의 주가 시세 변동성이 확대된 만큼 과도한 레버리지 사용 제한을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고자 신용공여한도를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증권사들이 선제적으로 증거금률을 올리고 신용대출을 제한한 건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경영권 분쟁이 확대되면서 주가가 요동치고 있어서다. 이달 13일 개장 전 영풍과 MBK 연합이 고려아연 지분을 공개매수하겠다고 깜짝 선언한 이후 지난 20일까지 영풍과 고려아연 주가는 91.92%, 32.19%씩 뛰었다. 영풍·MBK의 공개매수 대상인 영풍정밀은 119.32% 급등했다.

영풍과 MBK 연합에 맞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대항공개매수를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개인 투자자의 투기성 거래가 크게 늘었다. 기존 공개매수 가격(고려아연 66만원·영풍정밀 2만원)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공개매수는 다음 달 4일에 종료될 예정이다. 영풍·MBK 연합은 종료 기한 연장 없이 오는 26일까지 공개매수 가격을 올릴 수 있다.

빚투가 급증하면서 신용잔고도 크게 늘었다.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이달 20일 기준 고려아연 신용잔고는 424억800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영풍·MBK의 공개매수 발표 전보다 241억4500만원(131.69%) 급증한 규모다. 신용잔고율은 0.17%에서 0.39%로 높아졌다. 신용잔고율이 높을수록 상장된 주식 중 신용으로 산 주식이 많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영풍 신용잔고는 3억2900만원(15.64%) 증가한 24억3200만원(잔고율 0.26→0.31%), 영풍정밀은 9100만원(2.57%) 늘어난 36억2800만원(잔고율 2.43→2.51%)으로 집계됐다. 개인 투자자의 거래량(매수·매도 주식 수의 합) 비중은 고려아연이 58.2%, 영풍이 73.3%다. 코스닥 상장사인 영풍정밀은 91.3%에 달한다.

주가가 계속 오르면 상관없지만, 분쟁 과정에서 주가가 급락해 개인 투자자가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증권사들은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증권사들은 이러한 미결제 위험을 줄이고자 빚투 억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날 오후 2시 19분 기준 영풍은 전 거래일 대비 28.42% 급락했다. 같은 시각 고려아연도 공개매수 시작 후 처음으로 4% 넘게 하락했고, 영풍정밀은 3.16% 오르며 상승세가 주춤한 모습이다. 이상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고려아연과 최씨 일가의 대응 방안에 따라 향후 고려아연을 포함한 관련주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공개매수를 진행한 SM엔터테인먼트·한국앤컴퍼니처럼 공개매수가 끝나거나 경영권 분쟁 결과가 명확해지면 기존 주가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개매수 발표로 과도한 투기 심리가 발생하면 시장이 일시적으로 과열돼 해당 종목 주가가 실제 가치보다 더 높게 평가될 수 있다”며 “이는 이후 급격한 가격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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