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59] 예상과 기대 사이
알코올에 적신 밤 전철. 주르르 앉은 일곱 모두 고개 숙였다. 눈 감은 셋, 휴대전화 들여다보는 셋. 나머지 한 사람이 괜히 반갑다. 책을 보는 게 아닌가. 두어 정거장 지났을까. 더 반갑게도 가방에 책을 넣는다. 내리려는군. 가만, 이런 걸 ‘짐작(斟酌)’이라 하면 알맞을지 새삼 아리송하다.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잡아 헤아림.’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다. ‘(까닭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쳐서 헤아림’이라 한 사전도 있다. 이래저래 ‘짐작’의 쓰임새는 앞일보다는 지난 일에 무게가 실린 느낌이다.
‘추측(推測)’은 어떨까. ‘미루어 생각하여 헤아림.’ 시점(時點) 구분이 없다. 실제로 과거, 미래에 두루 쓴다.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주식형 펀드에 더 많은 돈을 넣었으리란 추측이 나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는 주요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지만’처럼.
‘앞날을 헤아려 내다봄’이라는 뜻이니 ‘전망(展望)’도 쓸 수 있을까. ‘먹는 코로나 치료제 처방과 투약이 이번 주 안에 이뤄질 전망’ ‘미국 항만 적체 현상 역시 상반기까지는 이어지리라 전망’에서 보듯 조금은 거창한 일을 가리킬 때 주로 쓴다. 해서 ‘그가 다음 역에서 내릴 전망’ 같은 표현은 어색하다.
비슷한 말로 ‘관측(觀測)’이 있다.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잘 살펴보고 그 장래를 헤아림.’ 풀이로는 ‘짐작’ 자리에 써도 괜찮을 법한데…. ‘지난해 초과 세수가 예상보다 10조원가량 더 될 것이란 관측’(1)과 ‘친구는 이번 학기 학점이 높게 나오겠다고 관측했다’(2)를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1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결국 글머리의 ‘짐작’은 ‘예상(豫想)’이 가장 무난하지 싶은데. 표준국어대사전 풀이가 이상하다. ‘어떤 일을 직접 당하기 전에 미리 생각하여 둠.’ 주체와 무관한 일도 있을 테니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헤아려 봄’이 맞지 않을까.
그날 밤 자리는 나지 않았다. 눈 감은 승객만 하나 늘었을 뿐. 턱없는 배신감…. 예측이 아니라 기대(期待)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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