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7] LG 부진, 쌍둥이 빌딩 폭파 협박이 날아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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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에게 알린다”라는 제목으로 일부러 서툰 글씨로 쓴 한장짜리 팩스에는 실로 섬뜩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협박범은 자신을 탄광에서 3년간 폭파 업무를 담당했던 전문가인 엘지 광팬이라고 소개하고는, 만일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6월15일 오전 11시에 엘지 구단 본사 여의도 엘지 트윈타워(일명 ‘쌍둥이 빌딩’)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전에도 팬의 항의를 접했던 경험은 많았다. 1993년 시즌 종료 후 당시 ‘미스터 엘지’라는 애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훈과 해태(현 기아 타이거즈) 한대화 간의 트레이드가 발표되었을 때, 구단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와서 필자의 집을 폭파해버리겠다는 위협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종전과는 차원이 다른 대형 사건이었고, 구단의 고민이 깊어졌다.
협박범은 다음과 같은 6개 조항을 제시하면서 조목조목 구단과 선수단에서 조치해야 할 행동강령(?)을 적시했다.
첫째, 김상태를 선발에서 빼고, 심재학을 중간계투로 돌려라.
둘째, 안상준, 손지환과 김선진은 보기도 싫으니 2군으로 보내라.
셋째, 김민기를 선발로 고정하고 대스타로 키워라.
넷째, 용병을 잘 뽑고 똑바로 관리해라.
다섯째, 홈런보다 번트가 더 중요하니 잘 연습시켜라.
여섯째, 이 중 첫번째와 두번째가 특히 중요하니 반드시 이행하라.

황당한 내용이고 단순 협박임이 분명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찜찜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내부적으로 철저한 보안을 지시한 후 대표이사에게만 보고한 다음 곧바로 경찰서에 신고했고 트윈타워 관리 회사인 엘지 유통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때부터 사태가 확대되면서 군사작전에 버금가는 대소동으로 이어졌다. 그룹 구조조정본부 주관으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관할 영등포경찰서와 소방서에서 쌍둥이 빌딩의 70개 전체 층과 부대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쳤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한편 구단은 극비리에 강남경찰서와 영동전화국에 발신자 추적 작업을 요청했다. 그러나 며칠 뒤에 발신자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통보가 왔다.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에 대한 광범위한 탐문 조사 역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마침내 운명(?)의 날, 6월15일이 밝았다. 그날은 한국야구발전위원회 정기모임이 KBO에서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일단 모임에 참석한 다음, 회의가 시작되자 “그룹에 볼일이 있으니 다녀와서 점심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여의도 트윈타워로 달려갔다.
트윈타워에 도착하니 안팎으로 전투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태세에 돌입해 있었고, 고가사다리를 갖춘 대형 소방차와 구급차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빌딩 안에는 삼삼오오 민방위 복장의 직원들이 떼 지어 모여 있었으며 긴장감이 팽배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날이 민방위 훈련일인지라 직원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소집에 응했을 것이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1994년도 우승 뒤풀이 생맥주 파티가 벌어졌던 그곳을 죄인처럼 들어갔다. 동관 35층에 있는 엘지 유통 김명환 상무실로 올라갔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운명의 11시가 가까워 왔다. 대형 벽걸이 시계의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드디어 11시 정각. 정적 속에서 모두 숨을 죽였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김 상무가 티브이(TV)를 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꽝∼ 꽝∼’ 요란한 굉음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트윈타워는 아무런 진동이 없었다. 그제야 티브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다가 보이고 군함이 보였다. 때마침 남북 간의 서해안 교전 상황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됐다.
만일 당시 범인이 잡혔다면 공갈·협박과 업무방해죄로 최하 5년의 실형 감이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괴문서가 도착한 6월5일부터 디데이(D-DAY)인 6월15일까지 엘지는 8경기 7승1패의 초고속 상승세를 보였다.
과연 협박범은 본인의 협박이 효과가 있었다고 의기양양했을까? 아니면 조여 오는 수사망에 가슴을 조였을까? 결과적으로 엘지는 1999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종료 직후 필자는 정든 야구단을 떠나 축구단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천보성 감독은 자진해서 사퇴하면서 팀을 떠났다.
1993년 말 김상훈-한대화 트레이드 직후 구단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와서 필자의 집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했던 그 인물과 이 사건의 주인공이 혹시 동일인이 아니었을까?

최종준 전 엘지 트윈스·에스케이(SK) 와이번스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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