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의 여신'하면,
여러분은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한 목동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는데요.

그는 고민 끝에
사랑과 미의 여인 아프로디테라 답했습니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영어로는 비너스라고도 하는데요.

실제로 아름다움을 다루는 미술에서
비너스는 수많은 화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때문에 미술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한 여신이기도 하죠.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 있는데요.
바로, 밀로의 비너스(the Venue de Milo)죠.

단정하게 정리된 머릿결과 갸름한 얼굴.
오뚝한 콧날과 야무지게 다문 입술이 아름답고,
목을 따라 내려오는 나선형 곡선은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하죠.

둥글고 부푼 엉덩이와 천을 두른 허벅지는
육감적이고도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그런데 이 조각상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두 팔이 없다는 것이죠.

두 팔이 없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를 대표하는 조각,
<밀로의 비너스>입니다.

비너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 12신 중 하나로
아름다움과 사랑을 주관하는 여신입니다.

오랜 시간 ‘아름다움’과 ‘미’의 아이콘으로 여겨져왔죠.
비너스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화가들은 비너스를
당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때문에
구석기인들이 만든 여인의 모습도
비너스라 부르기도 하죠.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던 당시로선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의 모습이었죠.

이렇듯 각 시대를 대표하는 ‘미’의 기준은
비너스를 통해 끊임없이 재탄생했습니다.

밀로의 비너스 역시
제작 당시의 아름다움을 담았습니다.

기원전 1세기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아름다움의 극치’, ‘미의 대명사’로 불리죠.

작품이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 시대는
자연 과학과 철학이 발전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오감을 통해 얻게 되는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미술 작품은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것이었죠.

이들은 눈에 보이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라 여겼는데요.
그래서 이 시대의 신과 영웅은
모두 근육질의 몸,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됐습니다.

인간의 신체를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특별한 자세를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내민 왼발의 뒤꿈치를 약간 들어서,
오른쪽 발에 체중을 싣고 서 있는 모습.
무게 중심을 한쪽 다리에 싣고
다른 한 발의 힘을 빼면
신체에는 자연스럽게 S자 굴곡이 만들어집니다.

조각상에 자주 등장하는 이 자세를
‘콘트라포스토’라고 하는데요.

하체부터 올라오는 인체의 중심에
일부러 곡선을 줘서,
멈춰있지 않고 막 뭔가를 할 것만 같은 인상을 남기죠.
생동감을 더하기 위한 표현방식입니다.

당시 조각가들은 이 방법을 통해
대리석 조각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사람처럼
사실적이고도 자연스럽게 묘사할 수 있었죠.

또한, 밀로의 비너스는 완벽한 비율을 보여줍니다.
비너스의 얼굴과 몸 전체에 적용된 비율은
매우 이상적이고 수학적인데요.

‘1:1.618’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황금비율(Golden Ratio)은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비율로 여겨지는데요.

보는 사람에게 안정감과 완벽한 균형미를 느끼도록 합니다.

이러한 황금비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 신전 같은 건축물부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A4용지나 신용카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죠.

사람의 키는 배꼽을 기준으로
상체와 하체가 1:1.618 비율일 때,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비율이라고 하는데요.

높이 2m 4cm의 밀로의 비너스 상 역시
배꼽을 기준으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1:1.618의 황금비율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신의 머리 길이는 전체 몸길이의 1/8.
그야말로 8등신의 신체 비율을 자랑합니다.

조각 곳곳에 담긴 치밀한 황금비율.
덕분에 밀로의 비너스는
두 팔이 없음에도
안정적이고도 묘한 당당함이 느껴지죠.

또, 여신상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큰 대리석 조각 2개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이는 그리스 시대의 전형적인 조각 기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몸통과 다리,
팔과 발을 각각 조각해서
수직 말뚝으로 고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요.

밀로의 비너스를 자세히 보면
고정돼 있던 조각이 사라진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죠.
사실, 이 대리석 조각은 참 미스터리합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무엇을 조각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던 조각인지도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밀로의 비너스라는 작품명도
그저 조각상이 발견된 장소였던
그리스의 섬, 밀로스(Mélos)라는 지역명을 따른 것이었죠.

유일하게 알려진 건
이 조각상이
기원전 130년에서 120년 사이 제작된 작품이란 겁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나선형 곡선으로 매끈하게 흐르는 실루엣.

물결무늬로 흐르는 머리카락과
마치 금방이라도 몸을 타고 흘러내릴 것 같은
풍부한 주름을 가진 드레스.

그리스 미술의 완벽한 인체 표현에 더해
이전엔 없었던 화려함이 돋보이죠.
때문에 한층 더 관능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이는 그리스 후반기,
헬레니즘 미술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4세기.
대왕 알렉산더는 그리스부터 이집트, 페르시아를 넘어
인도 일부 지방까지 정복하며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때문에 이 시기의 미술 작품은
점령지에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제작되었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문화가 바로 헬레니즘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헬레니즘 문화와 양식은 제국 전역으로 퍼졌죠.
이후 3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발전을 거듭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헬레니즘 시기의 작품들을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이죠.

헬레니즘 시기에
많은 비너스 상이 제작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그중 밀로의 비너스만이
유일하게 형태가 잘 보존돼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두 팔이 모두 없다는 것!
이건 연구활동에 상당히 치명적입니다.

그리스 신들을 묘사한 작품에서
손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요.
그들이 무엇을 손에 들고 있느냐가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번개나 왕홀(지팡이)을 들고 있고,
제우스의 부인이자 가정의 신 헤라는
왕홀과 접시, 석류를 들고 있죠.

삼지창을 든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나팔과 월계관을 높이 치켜든 승리의 여신 니케.

그리스가 가장 사랑하는 여신 아테나는
창과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때문에 팔이 없는 동상은
그가 어떤 포즈를 하고 있었는지,
어떤 물건을 들고 있었는지,
심지어는 어떤 신인지도 알기가 어렵죠.

사실, 불완전한 밀로의 비너스를
완전하게 복원하려는
다양한 연구와 시도가 있었습니다.

조각상의 팔이 어떤 동작을 취하고 있을지 알아내기 위해
전문가들은 몸 전체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했는데요.

오른팔은 어깨가 있어서
복원에 이견이 많지는 않았지만,
왼팔의 경우 어깨까지 소실돼
아주 다양한 추측이 쏟아졌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왼쪽 승모근의 높이를 보고 연구를 이어갔죠.

왼팔을 기둥에 올려놓기도,
거울이나 방패를 든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머리에 장식을 달거나 실과 물레를 들고 있다 말하기도 했죠.

이후,
비너스가 발굴되었을 당시
함께 발견된 파편에서
왼팔의 일부로 추정되는 조각을 발견했는데요.
이 조각은 무언가를 쥐고 있는 형상이었습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비너스의 왼팔은 사과를 들고
앞으로 뻗고 있는 자세를 취했을 거라 예상했죠.

또, 루브르 박물관의 복원 전문가들은
조각상의 배에 있는 둥근 모양의 흔적을 연구했는데요.
비너스의 오른팔이 몸을 사선으로 가로질러서,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을 거라 말했죠.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 조각인
<사모트라케의 니케> 날개 부분을 복원하면서,
<밀로의 비너스> 역시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는 기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브르는 의외의 결정을 내립니다.
두 팔을 복원하지 않기로 한 건데요.

이 조각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불완전함’에서 나오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인위적으로 복원한 팔은
오히려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방해한다 생각한 겁니다.

온전한 형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밀로의 비너스.
조각을 본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요.

상상력의 대가,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는
유독 이 조각상에 깊은 관심과 애착을 가졌습니다.

‘서랍이 달린 밀로의 비너스’
‘긴 서랍이 관통된 밀로의 비너스’ 등


밀로의 비너스를 변형시킨 작품들을 만든다거나
비너스의 실루엣을 반복해 착시를 일으키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죠.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프랑스의 조각가,
니키드 생팔(1930~2002)은
색색의 페인트 총을 쏘는 슈팅페인트 기법을 사용해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불렸던 밀로의 비너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미국 팝 아트의 선구자, 짐 다인(Jim Dine, 1935~) 역시
밀로의 비너스를 재해석해 목 잘린 청동 비너스상을 만들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여러 영화나 광고에서
이 조각상의 흔적을 종종 발견할 수 있죠.

밀로의 비너스는 200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꾸준히 사랑받아 왔습니다.

비록 두 팔이 없어 온전치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명작이 되었죠.

사람들은 사라진 두 팔을 어색해 하기보단
당당한 불완전함 앞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이 작품 앞에서, 지금 여러분은 어떤 것이 느껴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