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 한인 유학생이 군 제대 후 시작한 뜻밖의 일

조회수 2022. 7. 8. 10: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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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IT개발 다시 배우는 이유
코로나 사태로 실물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텍사스대 재학 시절(왼쪽)과 한국폴리텍대학 재학 중(오른쪽)인 모습. /최성민 씨 제공, 더비비드

‘유학파’라는 이력은 분명 힘이 있다. 남들보다 한걸음, 아니 두세 걸음은 앞서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새로운 길을 가겠다며 그 두세 걸음을 포기한 사람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최성민(29) 씨. 2016년 텍사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NGO(비정부기구) 단체인 APLN(Asia-Pacific Leadership Network)에서 경력을 쌓았다. 돌연 올해 3월 한국폴리텍대학 증강현실시스템과에 입학했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다. 최성민씨를 만나 선택의 이유를 들었다.

◇정치가 정답이 아니었다

텍사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NGO(비정부기구)에서 경력을 쌓다가 돌연 올해 3월 한국폴리텍대학 증강현실시스템과에 입학한 최성민 씨. 새로운 진로를 위해서다. /더비비드

어릴 때 집안 풍경은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는 연신 혀를 끌끌 차면서도 매일 밤 9시만 되면 뉴스 채널에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아버지처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참여한 ‘내셔널 영 리더스 콘퍼런스’에서다.

“9박 10일 동안 워싱턴DC의 주요 정부 기관을 둘러보고 체험하는 교육프로그램이었어요. 국회의사당에서 학생들끼리 당을 만들어 모의국회를 열었는데요. 인종, 성차별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는 친구들을 보며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자기 소신을 자신있게 말하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최성민 씨. /최성민 씨 제공

2012년 8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군 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핵 비확산을 주장하는 NGO(비정부기구) 단체인 APLN(Asia-Pacific Leadership Network)에서 프로그램오피서(Program Officer)로 1년 간 일했다.

좋은 대학에 좋은 스펙까지 갖추었지만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변화’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NGO 단체는 일의 호흡이 깁니다. 저의 문제였을까요. 당장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주지 못하니 답답했습니다. 전공인 ‘정치’를 통해서 길을 찾는 것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더군요.”

◇고민은 새로운 출발을 늦출 뿐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를 상징하는 UT타워 앞에 선 최 씨. /최성민 씨 제공.

28살이란 나이에 모든 경력을 버리고 백지상태로 돌아왔다. 주저하는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뭐가 됐든 빨리 결정하자’고 스스로 되뇌었다. “고민은 새로운 출발을 늦출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진로를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코딩, C언어 같은 컴퓨터 언어를 배운다기에 IT분야로 정했습니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메타버스(실제 현실과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상의 3차원 공간)였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화되자 NGO 단체에서 주관하던 세미나와 컨퍼런스가 대거 온라인으로 대체됐는데요. 참여자들의 집중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메타버스로 ‘공간’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어내는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학생들이 컴퓨터를 보며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더비비드

포털사이트, 유튜브 등에 ‘메타버스’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글과 동영상을 섭렵했다. 관련 기술을 빠르게 익히고 실무에 적용할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수소문했다. 컴퓨터∙게임 아카데미 홈페이지를 들여다봤지만 커리큘럼이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돼 있었다. 3년제∙4년제 대학에 가자니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한국폴리텍대학 광명융합기술교육원 증강현실시스템과를 알게 됐습니다. 10개월 과정으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메타버스의 기초부터 실무까지 배울 수 있고, 주요 기업과 동일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장비가 마련돼 있었죠. 무엇보다 NC소프트 등 현업에 종사했던 개발자 출신 교수진이 맘에 들어어요.”

◇물어물어 찾아가는 길

실제 공부하고 있는 책을 펼쳐 보이며 웃고 있는 최성민 씨. /더비비드

2022년 3월 한국폴리텍대 광명융합기술교육원 증강현실시스템과에 입학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유니티/언리얼엔진(VR·AR개발프로그램), 포토샵/마야(2D·3D그래픽프로그램)등 수업으로 꽉 찬 일상을 보내고 있다. 실습에 필요한 고사양 컴퓨터가 학교에 있기 때문에 저녁 9시까지 실습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때가 많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 중 90% 이상이 최 씨와 같은 비전공자다. 힘이 될 때도 있지만 경쟁의식을 느낄 때도 많다. “컴퓨터 언어는 컴퓨터가 갈 길을 하나하나 수식으로 써주는 작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얼마나 논리적으로 간결하게 쓰느냐가 중요하죠. 저도 한 논리 한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에 척척 수식을 써 내려가는 친구를 보면 너무 부럽습니다.”

최성민 씨가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학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비비드

가령 A에서 C까지 가는 길을 만든다고 할 때 A-B-C라는 빠른 길을 단번에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A에서 D,E,F까지 거친 다음에야 C로 도달하는 길을 찾는 사람도 있다. 최 씨는 아직 자신이 후자에 속한다고 말한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된다. “학창 시절 모르는 수학 문제가 있으면 수학 잘하는 친구한테 물어보듯이 친구들에게 많이 물어봐요. 다들 귀찮은 내색 없이 열심히 알려줘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초심자의 공부는 받아쓰기가 중요하다. “수업이 끝나면 수업시간에 만들었던 게임을 혼자 다시 만들어보면서 복습합니다. 수식을 처음부터 받아쓰기하는 셈이죠. 이 수식이 왜 쓰였는지 엔터를 칠 때마다 고민하면서 수업 내용을 되새깁니다.”

결과물을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열을 느낀다. “얼마 전엔 혼자서 게임을 만들어봤습니다. 좀비가 다가오면 총으로 제거하는 게임인데요. 시간이 갈수록 좀비의 숫자가 늘어나죠. 간단한 게임인데 그걸 만드는 데 꼬박 2주가 걸렸어요. 다 만들고 보니 정말 내 자식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IT 혁신의 최전선에 서고 싶어”

최 씨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더비디드

1년 전만 해도 컴퓨터에 알 수 없는 수식을 쓰는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5년 전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GO가 인기를 끌 때 포켓몬 잡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이걸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최근 국내 게임회사 펄어비스에서 내놓은 ‘도깨비’라는 게임 화면을 볼 때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어떤 버튼을 누르면 어떤 화면이 뜨고, 캐릭터는 어떤 액션을 하는지 세세하게 관찰하게 됐죠.”

10개월 교육 과정을 마치자마자 게임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다.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주요 대기업에서 가상 인물 전면에 내세워 광고 모델로 쓰고 가상 인물로 꾸려진 아이돌 그룹이 탄생했죠. 그런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먼 미래에는 나를 닮은 캐릭터가 가상현실 속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면, 현실에서도 목 안에 시원함이 감도는 기분을 느끼는 기술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기술의 최전선에 서고 싶습니다.”

/더비비드 X 한국폴리텍대학 공동기획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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