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한 정조의 8일간 나들이.. 애끊는 효심 '뭉클'

조성민 2022. 2. 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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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원행을묘 정리의궤'
사도세자 묘 참배 기획하고 총감독
준비 기간만 2년.. 6000여명 동원해
한강 배다리도 설치·자재관리 관여
어머니를 위한 특별가마까지 제작
일정 맞춰 화성행궁서 회갑 진찬연
상차림 음식 70가지.. 성대하게 차려
다양한 행사로 신도시 화성에 활기
아버지 복권 등 정략적 의도도 담아
1795년(정조 19)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이 있는 경기도 화성에서 개최한 행사 장면을 그린 8폭 병풍. 제1폭 명륜당 참배, 제2폭, 제3폭 혜경궁 회갑잔치, 제4폭 경로잔치, 제5폭 야간군사훈련, 제6폭 활쏘기와 불꽃놀이, 제7폭 한양으로 돌아오는 행렬, 제8폭 환궁길 한강 배다리로 구성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8살 나이에 세손으로 책봉된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아버지가 할아버지 영조의 명에 의해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를 가두라는 영조의 어명이 내려지자, 정조는 마지막까지 아버지 사도세자를 살려달라고 애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세자가 죽은 뒤 정조는 어머니를 따라 외갓집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혜경궁 홍씨는 아들 정조를 다시 궁으로 돌려보낸다. 혹시 영조가 질투할 것을 우려해 생이별의 아픔을 참아낸 것이다.

정조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이겨내고 1776년 영조가 승하하자 왕으로 즉위한다. 하지만 정조는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과 어머니의 딱한 사정을 잊지 않았다. 즉위 당일, 정조가 발표한 글 첫 마디는 ‘아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정조는 재위 기간 왕권 강화와 개혁을 추진하고 조선 후기 중흥기를 이끈 대표적인 군주이자, 평생 부모를 잊지 않고 모신 효자였다.

이러한 정조의 애끊는 효심은 ‘원행을묘 정리의궤’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정조가 을묘년 환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부친 사도세자의 묘에 다녀온 8일간의 일정과 이벤트가 상세히 적혀있다. ‘원행을묘 정리의궤’는 ‘을묘년(1795년)에 원행(왕족의 묘에 성묘하러 감) 다녀온 것을 정리의궤청에서 기록하여 펴낸 의궤’라는 뜻이고, ‘의궤’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일체의 관련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해 놓은 책’이다.
최근 ‘원행을묘 정리의궤’를 풀어쓴 책 ‘정조, 어머니와 원행을 다녀오다’에 따르면 을묘년 원행은 정조가 직접 기획하고 총감독했다. 행사참여 인원은 6000여명, 예산은 10만여냥에 달한다. 정조가 1793년 1월19일 연설에서 을묘년 원행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기록에 따르면 준비 기간은 2년 정도로 추측된다.

정조는 평생 처음으로 가마 타고 나들이하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모든 것을 치밀하고 호화롭게 마련한 것으로 확인된다. 한강에 다리가 없던 그 시절에 말과 가마 등 수많은 물자를 포함한 대규모 행렬을 위해 임시 다리인 ‘배다리’를 설치해야 했는데, 정조는 이를 위해 직접 ‘배다리’ 설치, 배와 자재의 관리 방법을 작성한다.

어머니를 위한 특별 가마도 제작한다. 하나는 한양에서 화성까지 타고 갈 말이 끄는 가마로, 이를 제작하는 데 2785냥의 비용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 앞에 내려 무덤까지 올라갈 때 타는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로, 이 가마를 만드는 데는 732냥이 들었다. 이 두 대의 가마를 보고, 정조는 “이 가마를 보니 안이 넓고 밖이 가벼우며, 크기가 법도에 맞고 발과 휘장, 가마 덮개가 정교하고 매우 촘촘하니, 경 등이 공장을 감독한 수고로움이 가상하다 할 수 있다”고 흡족해했으며, 원행 보름 전에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예행연습까지 진행했다.

어머니 회갑잔치도 성대하게 했다. 혜경궁 홍씨의 정확한 회갑일은 1795년 6월18일이다. 정조는 원행 일정에 맞추어 화성행궁에서 미리 회갑 진찬연을 거행하고, 실제 회갑일에도 다시 궁에서 잔치를 열었다. 진찬연에서는 ‘헌선도’, ‘몽금척’, ‘수명명’, ‘하황은’ 등 궁중무용 공연이 진행되었고, 축하의 잔을 올리는 내내 ‘여민락’, ‘낙양춘’, ‘환환곡’ 등의 음악과 ‘장악장’, ‘관화장’ 등의 창이 연주됐다. 또 의식에 참여한 이들의 ‘천세’, ‘만세’ 소리가 궁 밖까지 울려 퍼졌다.
을묘년 원행 장면을 그린 화첩식 의궤도인 ‘화성원행의궤도’의 가교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나들이를 위해 정조가 특별 제작한 두 대의 가마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날의 진찬을 위해 준비된 음식상 또한 매우 화려했다. 주인공인 혜경궁 홍씨께 올려진 메인 상차림은 각종 떡·다식·강정·과일·견과·정과·탕·육류·생선·만두 등 70가지나 됐고, 이 외에도 소별미 12가지가 추가되었다. 잔칫상에 꽂아 놓는 조화인 각종 상화가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잔치가 열리는 봉수당에는 장막을 비롯하여 각종 화려한 문양의 돗자리와 방석, 십장생 병풍과 주렴, 탁자, 수건, 조화, 초 등이 준비됐다.

이 밖에도 을묘년 원행에는 다양한 행사가 함께 치러졌으며 그 안에는 현명한 왕 정조의 ‘정략적’ 의도도 담겨있다. 우선 이 행사를 화성행궁에서 치름으로써 자신이 건설한 신도시 화성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더불어 남편의 묘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머니를 모시고 성묘함으로써 어머니의 한을 풀어 드리고 아버지의 복권을 꾀했다. 자신이 창설한 장용영 군사 등 3700여명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자신의 위세를 떨쳤고, 특별 과거 시험을 시행하고 쌀을 나눠주는 사미 행사와 양로연 등을 열어 백성들에게 왕실의 은혜를 베풀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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