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기자들의 트라우마, '마음 약한 소리' 아니다

김달아 2022. 5. 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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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광주에서 신축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졌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 저널리즘·트라우마 비영리기관 다트센터의 지원을 받아 4월6일 발표한 '한국 기자 트라우마 보고서'에 따르면, 현직 기자 544명 중 78.7%(428명)가 근무 중에 트라우마를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자들이 대형 사건·사고 현장에서만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조사 결과에서 보듯 현장 기자들에게 트라우마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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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터러시] 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향한 갈구는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매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곧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언론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지난 1월 현대산업개발이 신축하다 붕괴된 광주의 아파트 건설 현장. ⓒ시사IN 조남진

지난 1월 광주에서 신축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졌다. 현장 작업자 일부는 대피하거나 구조됐지만 6명은 매몰된 채 연락이 끊겼다. 사고 당일부터 현장에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사회부 소속인 주니어 A 기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근, 아파트 10여 개 층 바닥이 폭삭 내려앉은 모습, 울부짖는 실종자 가족들. 처참한 현장 속에서 수색·구조 작업 상황을 전하고 붕괴 원인을 취재해 보도하는 일이 A 기자의 몫이었다.

수색 작업이 길어지는 사이 A 기자는 파견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복귀했다. 그날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들어오면서 불현듯 ‘무너질 것 같다’는 공포를 느꼈다. 분명 퇴근하는 길인데, 또 다른 사고 현장으로 가는 것처럼 불안했다. 발코니에 서 있을 때면 마치 광주 붕괴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며칠이 지나도 이런 잔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불쑥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연차가 낮아서 그렇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A 기자가 느낀 공포는 취재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 트라우마다. 사고 당사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비할 순 없지만,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문제는 기자들이 지속적으로 트라우마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점이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 저널리즘·트라우마 비영리기관 다트센터의 지원을 받아 4월6일 발표한 ‘한국 기자 트라우마 보고서’에 따르면, 현직 기자 544명 중 78.7%(428명)가 근무 중에 트라우마를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428명 가운데 59.3%는 1년에 2~3회, 26.9%는 월 2~3회씩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주 2~3회라는 응답도 9.6%나 됐다. 보통 사람들이 평생 한두 차례 트라우마를 겪는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기자들이 대형 사건·사고 현장에서만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느꼈는지 물었더니(복수 답변) ‘취재 과정’(61.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이 ‘보도 이후 독자들의 반응’(58.4%)이었다. 이메일이나 댓글, 전화 등 온·오프라인상의 항의와 공격을 포함해서다. ‘기자라는 이유로, 특히 특정 기사로 인해 공격당한 적 있느냐’는 질문엔 조사 대상 중 77.9%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정인으로부터 지속적인 공격을 당했다는 기자도 18.5%나 존재했다. 트라우마는 단단할 것 같던 기자들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기자 상당수는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으로 ‘죄책감을 느꼈고’(54.8%),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원망을 멈출 수 없었다’(47.8%)고 했다.

비판을 넘어 괴롭힘 수준까지 된다면

조사 결과에서 보듯 현장 기자들에게 트라우마는 일상이다. 취재 단계에서부터 기사화 과정, 보도 이후까지 업무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기자 사회에선 ‘마음 약해서 하는 소리’로 취급당했지만, 차츰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물론 기사에 대한 일정 수준의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와 보도는, 비록 어떤 비판과 마주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공적 책무다.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기자가 탄탄한 기사를 쓸 수 있고, 이를 위해 독자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이렇게 나온 콘텐츠가 독자들이 원하는 ‘좋은 보도’ 아닐까. 노동자로서 기자의 정신건강을 어떻게 보호할지, 독자들이 비판을 넘어 괴롭힘을 가할 때는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논의할 때다.

김달아(⟨기자협회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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