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 모드에서 직장인 모드로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카공’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나 역시 카공족이라 해도 무방하다. 마감에 쫓기거나 학교에 제출할 리포트를 작성할 때는 어김없이 카페를 찾는다. 가족 모두 자신의 일을 하러 나가면 오전부터 오후 내내 집에 머무는 이는 나밖에 없고, 나를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렇다.
아침이 되면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이 매력적인 집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된다. 대개는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면 그 자리에 자꾸만 앉아 공부하고 싶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아마도 집에서는 목 늘어진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세수도 생략한 채 어슬렁거리는 걸 좋아하는, 뼛속까지 귀차니즘을 장착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번역 작업을 할 때는 안락한 의자에 몸을 실은 채 유유자적하며 넓은 모니터 화면을 앞에 두고 책을 읽을 때도 있다.
그러니 뭔가 제대로 해야 되겠다 싶은 일이 있으면 어느 카페를 갈 것인지부터 고른다. 행선지를 정하고 나면, 그대로 나가지는 못하니 최소한 외출이 가능한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집순이 모드에서 출근하는 직장인 모드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트인 공간이 주는 공공성을 즐긴다. 혼자 있음에도 외롭지 않고, 여럿이 함께 있지만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지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없는, 약간의 제약이 뒤따르는 그 장소성이 내 자세와 태도를 바로잡아줘서 더 좋다. 그렇게 절반쯤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공부하고 작업하는 것은 생산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싶으면 카페에 간다. 원고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발길이 저절로 카페로 향한다. 일하다가 갑자기 멀쩡하게 잘 정리된 그릇장의 그릇들이나 싱크대 서랍을 다시 정리하고 싶어질 때도 카페에 간다.
집은 완전히 사적인 공간이어서 너무도 편안한 나머지 딴짓을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꼭 필요한 집안일이 아닌데도 일을 만들어 딴짓을 하고 있다 싶으면 공간을 바꿔주는 게 낫다.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다면, 카페가 아니더라도 집중이 잘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자기만의 방이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짧은 산책 후 도착하는 경복궁역 근처 던킨도너츠의 문 옆자리, 작년까지 내가 부지런히 드나들었던 동네 카페 일일케이크의 창가 자리, 한낮 오후에 당이 떨어질 때면 우주 최강의 머핀 냄새로 나를 유혹하던 카페 고로롱 …….
던킨도너츠와 함께 내가 지극히 사랑하였으나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는 나의 카페들은 그렇게 ‘마감을 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집과 직장, 학교 등의 바깥 생활공간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공간이나 완충지대로 카페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분위기와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다.
물론 커피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본전은 뽑아야 한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앉아서 공부하고, 책을 읽거나 뜨개질, 그림 그리기까지 하면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이렇게 카페에서 취미, 독서, 공부를 가리지 않고 하다가는 언젠가 카페에서 마감을 못 하고 놀기만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