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표 계산에 묻힌 "연금개혁 하겠습니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입력 2022. 1.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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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행정학회와 한국정책학회는 요즘 대선 토론회를 진행 중이다. 매주 여야 대선 후보를 초청해서 토론회를 하고, 분야별로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여기서 차기 정부의 복지·재정 분야 과제 1순위로 꼽힌 것이 연금개혁이었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명색이 행정과 정책을 연구하는 학자 집단에서 지목한 것이니, 연금개혁이 차기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임은 틀림없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복지정책은 기본적으로 빈곤에 대처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라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공적연금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나랏빚 걱정 많이 하는 것은 현재의 빚이 많아서가 아니라, 미래의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 같아서이고, 이는 주로 공적연금 빚 때문이라는 것도 제법 알려진 일이다. 게다가 공적연금은 노후소득 보장의 기본수단이건만 국민의 신뢰는 바닥을 긴다. 국민 다수는 과연 내가 늙었을 때 연금을 제대로 탈 수 있을지, 그때까지 연금재정이 거덜나지 않고 버틸지 의심한다.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 것, 노인 빈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지속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최근 대두된 얘기가 아니다. 해묵은 과제였고,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상당 수준의 연금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전혀 하지 않았다. 수년 전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현행보다 지속 가능성을 다소 높이는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 놓은 뒤로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필요성이 절실함에도 감감무소식인 속사정은 알 길 없지만, 어쨌든 연금개혁은 차기 정부로 넘어갔고, 뒤로 미룬 탓에 상황은 더 나빠졌다.

‘득표에 불리’ 대선 후보 언급 꺼려

사정이 이러니 대통령 후보들은 앞다투어 연금개혁을 약속할 것 같다. 하지만 여당과 제1야당 후보 공약에서 연금개혁은 찾아볼 수 없다. 유력 후보 캠프에는 연금 전문가도 있을 테니 연금개혁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모를 리는 없다. 그런데 왜 공약에는 없을까? 득표에 도움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동의하지만 제 임기 안에 할 수 있을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 없다”고 했다. 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어느 정당이든 연금개혁을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오면 지게 돼 있다”고 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국가를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어찌 유불리를 따져가며 회피하는가”라며 비난해야 할까. 전혀 아니다. 대통령이라면 정치적으로 손해인 정책도 국가에 도움이 되면 해야 하지만, 후보한테 득표에 불리한 공약을 하라고 다그치는 건 온당치 못하다. 내가 후보라도 그런 공약은 사양이다.

그럼 어찌할까. 후보 입장 고려하느라 연금개혁 약속 받아내지 못하고, 그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도 미적대다가 차차기 정부로 넘겨버리면? 이건 정말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공약하지는 않되, 연금개혁 하겠다는 약속만은 하라고. 사실 득표의 유불리를 떠나서 후보가 연금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연금은 대다수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노후소득원이다. 또 모든 일하는 사람은 59세까지 의무적으로 연금보험료를 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의 이해가 걸려 있기에, 개혁하려면 국민의 합의 도출이 필수적이다. 연금개혁에 성공한 해외 사례를 보면 예외 없이 긴 시간의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데, 하물며 후보 캠프 전문가 몇몇이 시간에 쫓기며 만든 연금개혁 공약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겠는가.

구체적인 안을 공약으로 내세워 봐야 논란만 일으킬 뿐 그대로 이뤄질 리 없다. 무엇보다 대표성이 약하다. 그러니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아니라 연금개혁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옳다. 두 후보도 연금개혁의 의지는 있는 것 같다. 이재명 후보는 “연금개혁은 해야 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론 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어떻게 하겠다’라는 것 자체는 독선에 가깝다”고 했다. 또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임기 내 초당적 그랜드플랜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연금개혁 의지는 표명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비록 소확행에 해당하지 않고 그다지 심쿵하지 못해도 ‘연금개혁 하겠습니다’라는 공약을 정식으로 발표해야 한다. 제목 밑의 세부 내용에는 연금개혁의 방향과 원칙을 담으면 된다. 방향과 원칙이라면 캠프에서 알아서 설정해도 괜찮겠다. 여기에 팁을 준다면 대강 이런 내용을 담는 것이 좋겠다. ‘연금개혁은 국민 합의 도출이 필수이므로 여야 및 사회 각계각층 대표가 참여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개혁안을 만들겠다. 목표는 견실한 노후소득 보장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 제고이다. 특수직역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포함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관련 정책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민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구축하겠다.’

내가 누구를 뽑을지는 밝힐 수 없지만, 누구를 안 뽑을지는 밝힐 수 있다. 나는 연금개혁 공약 하지 않는 후보는 뽑지 않겠다. 공감하는 독자는 동참해주길.

사족. 이 글의 독자들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가족 중 만 18세 이상인 국민연금 미가입자가 있으면 무조건 임의가입하고 매달 9만원씩 내시라. 국민연금은 낸 것의 두 배 이상 받는다. 어떤 민간 재테크 상품보다 수익률이 높고 안정적이다. 낸 것보다 많이 받는 초과수익은 납부 기간에 비례한다. 현재의 수급자 연금액이 낮은 까닭은 납부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원래 40년 기준으로 설계한 것인데, 취업한 뒤부터 내기 시작하면 40년은커녕 30년 채우기도 쉽지 않다. 매달 내는 게 버거우면 잠시 중단해도 된다. 추후 납부라는 게 있어서 10년 미만까지는 나중에 한꺼번에 내더라도 인정된다. 중요한 것은 기간을 꽉 채우는 것이다! 글쎄, 연금공단 관계자는 내 제안이 못마땅할 수 있겠다. 납부 기간이 길어질수록 재정이 악화될 테니. 하지만 그건 선후가 바뀐 것이다. 국민 노후소득 보장을 담당하는 연금공단이라면 기간 늘리기를 독려해야 마땅하다. 재정 고갈이 앞당겨지는 게 걱정인가. 그래서 개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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