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래 입금된 20만원에 통장정지.."250만원 주면 풀어줄게"

박수현 기자 2022. 4.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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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송금해 계좌를 거래정지시키고 금전을 요구하는 통장 협박(통협)이 기승을 부린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어플리케이션을 깔도록 한 뒤 의뢰인이 지정한 계좌로 10만~50만원 가량의 돈을 보내고, 피해 신고를 유도해 해당 계좌를 정지시키는 방식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된 계좌는 신고가 접수되면 곧바로 지급정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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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지난 18일 30대 남성 A씨의 케이뱅크 계좌가 지급정지됐다. 낯선 사람에게서 20만원이 입금된 직후였다. 입금자명은 텔레그램 아이디였다. A씨가 메시지를 보내자 "핑돈(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입금했으니 통장을 계속 쓰고 싶으면 200만원을 보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돈을 보내면 보이스피싱 피해자와 합의할 수 있도록 입금자의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넘기겠다는 설명이었다. 제안을 거절하자 가격이 200만원에서 80만원으로, 다시 50만원으로 떨어졌다. A씨는 "결국 돈은 내지 않았고 지급정지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송금해 계좌를 거래정지시키고 금전을 요구하는 통장 협박(통협)이 기승을 부린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어플리케이션을 깔도록 한 뒤 의뢰인이 지정한 계좌로 10만~50만원 가량의 돈을 보내고, 피해 신고를 유도해 해당 계좌를 정지시키는 방식이다.

보이스피싱 피해구제제도를 악용한 범행이다. 돈을 송금받은 사람 입장에선 영문도 모른 채 전자금융거래가 모두 막히는 셈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 이의제기 승인도 쉽지 않고 은행에서 중재 요청을 거절하면 입금자와 합의를 하기도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기사 : 본지 3월10일자 ☞누군가 10만원 보내자 통장이 묶였다…요즘 기승하는 '통협' 뭐길래]
"통장 쓰고 싶으면 250만원 내놔"…피해자 개인정보 유출에 협박까지
이달 들어 수차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송금한 통협 일당 B씨와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 /사진=박수현 기자
지난달 31일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이달 들어 수차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송금한 통협 일당 B씨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계좌의 지급정지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하자 B씨는 "장(통장)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비용을 먼저 알려달라고 말하자 250만원을 제시했다.

B씨는 "돈을 주면 피해자 이름, 계좌번호, 연락처를 주겠다"며 "피해자 정보를 받아서 입금된 돈을 반환하면 지급 정지가 풀릴 것"이라고 했다. 계좌가 정지돼 돈이 없다고 말하자 "200만원까지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B씨의 설명과 달리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 계좌 지급정지를 취소할 수는 없다. 피해자가 직접 신고를 취하해야 지급정지가 취소된다.

B씨는 "하라는 대로 하면 풀린다"고 주장했지만 명확한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답장을 하지 않자 B씨는 "그 장 죽여버리겠다"며 협박을 시작했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추가로 입금해 지급정지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말이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지급정지 통보를 받은 이들에게 금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추가 피해가 우려됐다.
보이스피싱 가담자 아닌데도…'합의' 외에 당장 지급정지 해제할 방법 없어
본지 취재진이 만난 통협 피해자들은 금융거래가 제한돼 피해가 크지만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누군가의 의뢰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돼 계좌가 지급정지된 사정을 알아도 제도적 한계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오랜 시간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된 계좌는 신고가 접수되면 곧바로 지급정지된다. 피해자의 서면 신고가 접수된 이후에 지급정지를 취소하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이의제기 신청이 승인되거나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야 한다.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피해자와 합의해 신고 취하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은행에서 중재 요청을 거절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지난 22일 카카오뱅크 통장이 지급정지된 C씨(33)는 "당장 신용카드 대금을 내야하는데 은행에선 서면 신고가 접수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라고 했다"며 "입금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합의하고 싶지만 은행 측은 '다른 고객의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토로했다.

지난 23일 지급정지 통보를 받은 자영업자 D씨(31)도 "은행에 이의제기를 신청할 예정이지만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신청이 반려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며 "당장 장사를 해야 하는데 은행 측에서는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기다리란 말만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피해 사례는 꾸준히 발생하지만 법과 제도의 한계로 즉각적인 해결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런 유형의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을 위해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범죄인 만큼 대처가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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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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