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도 안 되는 전통 악기 '비파' 연주자의 꿈은?

비파(琵琶)는 삼국시대에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현재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악기다. 비파는 신라시대에 가야금, 거문고와 함께 삼현(三絃)으로 불리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였던 전통 악기였으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명맥이 끊겼다. 비파가 복원된 건 1988년에 이르러서다. 2000년대 들어 악기와 연주법 복원, 연주자 육성이 이뤄지면서 다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파 연주자 정영범씨. /본인 제공

그러나 이런 비파의 역사는커녕 비파라는 악기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비파 연주자 정영범(32)씨는 그래서 어깨가 무겁다. 비파의 명맥을 잇고 비파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정씨는 국내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 비파 연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것도 비파를 알릴 기회라는 이유였다. 올해로 18년째, 비파 연주자로 살고 있는 그와 비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비파는 어떤 악기인가?

“비파는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다. 물방울 모양의 몸통에 긴 목이 달렸다. 앞판은 오동나무, 뒷판은 견고한 밤나무로 만들며 줄은 명주실을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비파는 중국의 악기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서역에서 들어온 악기이고 오랜 세월 우리 고유의 악기로 발전했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의 비파와는 생김새나 연주법이 다르다. 우리나라 비파는 세 종류가 있는데 향비파와 당비파, 월금이다. 향비파는 줄이 5개, 당비파는 4개인데 목이 꺾인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월금은 향비파와 당비파와 달리 몸통이 달처럼 둥글다. 줄의 수나 생김새에 따라 비파의 음색이 다르며 연주하는 음악도 달라진다. 현대에 들어 전통음악 외에도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줄 수나 음판을 늘린 개량 비파도 있다.”

우리나라 비파에는 향비파, 당비파, 월금 세 종류가 있다. 사진 왼쪽부터 월금, 향비파, 당비파. /정영범씨 제공

-비파는 언제 처음 접했나?

“중학교 1학년 때 방과후 악기 교실에서였다. 바이올린과 플룻, 가야금, 비파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비파라는 낯선 악기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생김새도 소리도 특이했다. 박물관에서 들어봄 직한 이상하고 이국적인 소리에 이끌려 비파를 배우기로 했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비파로 동요와 아리랑 등 익숙한 노래들을 연주해 주셨다. 원래 알던 노래인데도 비파로 연주하니 새롭고 신기하게 들렸다. 방과후 교실을 통해 비파를 접한 뒤 어느덧 따로 배우고 싶을 만큼 비파가 좋아졌다.”

-그렇게 비파를 배우기 시작해 전공까지 하게 된 건가.

“원래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했다. 한때는 요리사를 꿈꿨다. 악기를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비파를 따로 배우긴 했어도 그냥 좋아서 배우는 정도였다. 그러다 중3이 되고 예고를 가느냐 마느냐 고민하면서 비파를 전공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특이한 악기라서 전공자도 많지 않았지만 비파를 계속 배우고 연주하고 싶었다. 국립전통예술고(현 국립국악고)에서 비파를 전공하고 서울예대 한국음악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연주 실력을 더 키우고 싶어 중국 북경국립중앙음악학원으로 유학을 갔다 지금은 휴학 중이다.”

-국내에 비파 전공자가 많지 않은데.

“비파를 전공하고 현재 활동하는 연주자는 국내에 6~8명에 불과하다. 명맥이 끊어졌던 비파를 복원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파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여전히 전공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비파 전공자를 육성하는 대학도 중앙대와 서울예대뿐이다. 전공자가 많지 않아 비파의 명맥을 잇고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더 많이 느낀다. 중국에 유학을 간 것도 비파 연주 실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르 악기에도 다 있는 것처럼, 교재나 음반, 고증을 거친 비파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비파를 접할 수 있도록 교재, 음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대로 고증한 악기 복원도 시도하고 있다. 무대나 유튜브로 비파를 알리는 것만큼이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당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정영범씨. /본인 제공

-공연은 자주 하나?

“몇 년 전만 해도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비파는 생소한 악기였다. 그러나 비주류 악기를 발굴하고 무대에 올리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비파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참신할 걸 원하는 대중들도 비파를 신선하게 여긴다. 덕분에 비파 공연이 많아졌고 무대에 오를 일이 늘었다. 다른 악기와의 앙상블 무대도 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무대에 오르려고 한다.”

-비파 연주자로서 습관이나 원칙이 있다면.

“비파는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인 만큼 줄 관리가 핵심이다. 연주 중에 줄이 터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공연 전에 반드시 줄에 상처가 있지 않은지 만져보며 확인하고 흠이 있으면 미리 갈아준다. 또 줄을 풀었다 조였다 반복하거나 송진을 발라 줄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연주 연습은 많으면 6시간, 매일 3시간 정도 하고 있다."

장구와 합주를 하고 있는 정영범씨. /본인 제공

-최근 비파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데.

“‘이날치 밴드’나 ‘풍류대장’의 영향으로 국악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왕이면 참신한 악기를 배우고 싶은지 비파를 배우겠다고 나선다. 개인강습이나 출강 중인 학원의 수강생이 늘었다. 드라마에 나온 비파를 보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국내 드라마에 나온 대부분의 비파 연주 장면을 내가 직접 했고 배우들도 가르쳤다. 오래 전 ‘스타킹’에 나온 내 영상을 보고서 비파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분들도 있다. 최근에는 국악 전공자들도 부전공으로 비파를 많이 배우러 온다. 비파를 배워두면 대중적인 악기를 연주할 때보다 무대에 오를 기회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비파 전공생도 조금씩 늘면서 제자 육성도 하고 있다.”

-초보자들이 배우기에 어렵지 않나.

“피아노의 바이엘처럼 초보를 위한 교재가 따로 없다. 바이엘 다음에 체르니 같은 체계도 없다. 비파를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재나 악보가 부족해 초보들이 어렵게 느낄 수 있다. 그보다 큰 장벽은 악기의 가격이다. 흔히 유통되는 중국 비파는 10만원에도 구할 수 있지만 제대로 만든 한국 비파는 300만~400만원에 달한다. 아무리 저렴한 것도 100만원이 넘는다. 초보가 덜컥 구입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비파를 대여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비파 입문이 쉽지 않다. 그래서 비파 전공자로서 제대로 된 교재를 만들고 전통 악기를 복원하고 진입 장벽을 낮추는 일에 더 마음이 쓰인다.”        

-비파 연주자로서 사명감이 커 보인다. 보람도 있겠지만 힘들지는 않나.

“끊어진 명맥을 다시 잇는 일이 쉽진 않다. 여전히 비파를 복원하고 체계를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다 해놓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가는 길을 걷는 지금이 즐겁다. ‘비파의 미래가 너에게 달렸다’는 소리를 들을 땐 보람도 느낀다.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대학에 갔을 때만 해도 밖에서 국악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왜 중국 악기를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비파 전공인데 주전공이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한때는 계속 이걸 해야 하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비파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응원도 많이 받는다.”

-이쯤되면 비파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비파의 매력은 연주할 때 나온다. 비파는 악기를 안고 연주를 한다. 연주를 하다보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이 좋다. 이국적인 악기 소리도 매력적이다. 비파만의 소리가 매력 그 자체다.”

비파 연주자 정영범씨는 비파를 안고 연주 하다보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본인 제공

-앞으로의 목표는.

“연주자에서 나아가 교육자가 되고 싶다. 대학에서 비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게 꿈이다. 그래서 비파 연주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기타 동호회나 가야금 합주를 볼 때마다 항상 부러웠다.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끼리 동호회도 하고 합주를 한다는 게 말이다. 앞으로 비파 연주자들이 많아져서 동호회가 생기고 합주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비파의 대중화는 물론 비파가 국악에서도 꼭 필요한 악기가 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글 jobsN 강정미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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