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세기, 이탈리아의 미술 비평가 조르주 바사리가
한 그림을 보고 남긴 말입니다.

평평한 벽면 위에 그려졌는데도 깊게 홈이 파인 듯 입체적으로 보이는 이 그림.
반원형의 아치 안으로 보이는 예배당 건물 속에는
중앙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매달린 그리스도와
그 주위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가로 3미터, 세로 6.6미터가 넘는 이 거대한 그림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기도 하는데요
이 그림은 어떻게 감상자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는 걸까요?
최초의 원근법이 사용된 작품,
마사초의 <성삼위일체>입니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존재가
모두 하나의 하느님이라는 가톨릭 교리입니다.
이는 종교회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인데요.

성부는 신성한 신의 모습으로,
성자인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으로,
그리고 성령은 비둘기와 같은 새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납니다.

마사초의 그림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중앙의 예수와 머리 위에서 날고 있는 하얀 비둘기,
그 뒤로 예수의 팔을 받치고 있는 성부이 세 가지 존재는
차례대로 같은 축 위에 배치되어 서로 같은 본질을 지닌 것임을 상징합니다.

예수의 발치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자 요한이 예수를 향해 기도하듯 경건히 서 있죠.
하지만 이 그림이 온전히 신성을 강조하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마사초가 활동하던 15세기는
인간을 중시하던 고전 문화가 부활하는 ‘르네상스’가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주목하기 시작했죠.
따라서 그는 신과 속세의 인물들을 그림에 적절히 섞어 구성하였는데요.

그림의 가장 바깥쪽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이 그림의 봉헌자인 도미니코 렌지와 그의 아내 산드라입니다.

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으로,
그림 속에 자신들의 초상화를 넣어 신성한 인물들과 함께 등장하길 원했습니다.
이와 같은 세속적 봉헌자의 모습은 이후 르네상스 회화에서 후원자 상의 전형으로 쓰이게 되죠.

마리아와 성자 요한에게도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했는데요.
중세에서 거룩하거나 신비롭게 표현되던일반적인 신의 모습과 달리
이상화되지 않은 인간의 외형으로 그려내외관상으로 후원자 부부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죠.

마사초는 중앙의 예수와 하단의 네 인물들을 대칭적인 피라미드 구도로 배치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상징성과 함께그림에 균형과 안정감을 더하는 요소로 활용합니다.

그가 그림에 숨겨놓은 장치는이 뿐만이 아닙니다.
분홍빛 아치에서부터 격자무늬의 반원형 천장을 따라 직선을 그어 보면,
선들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것을알 수 있습니다.

점이 모인 이곳, 십자가의 밑동 부분이 바로 이 그림의 소실점입니다.
소실점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 수평선을 따라 계속해서 멀어진 끝에
결국 사라져버리는 지점을 뜻하죠.

뻗어나간 선들에 의해 공간이 뒤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면이 아닌 입체를 보는 듯한 착시.
마사초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원근법을 최초로 그림에 구현해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사물의 형체는 작아보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하게 서 있는 가로수가 도로를 따라 점점 작게 보이는 것처럼,
사물의 크기가 거리에 따라 일정 비율로 축소되는 것이죠.

마사초는 이러한 원근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소실점에 직접 못을 박고 끈을 연결해 스케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원근법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계산과 치밀한 구도가 필요했는데요.
끈을 이용해 완벽한 직선을 만들어 계산했던 것과 일치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었죠.

한번 그리면 수정이 불가능한 프레스코 벽화로 그림을 그린 탓에
현재에도 미세한 스케치의 흔적이 작품에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는 감상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실점의 위치를 설계한 것입니다.
당시 이탈리아 남자의 평균 키는162센치였고, 그들의 눈높이인 153센치에 맞추어
같은 높이인 십자가 밑동 아래로 소실점을 설정한 것이죠.

따라서 키가 160센치 전후인 사람이 그림의 6미터 앞에 서서 <성삼위일체>를 감상하게 된다면,
그 깊이감에 의해 그림이 아니라 흡사 조형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쪽 눈을 감게 된다면, 더욱 실감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가진 두 눈과 달리 소실점은 단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600년 전 피렌체 사람들은 이러한 3D 효과에 놀라
마사초가 성당 벽을 뚫은 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죠.

세 번째는 빛과 색채를 조화롭게 이용한 것입니다.
마사초는 사실적 환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간뿐만 아니라 빛도 함께 조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빛을 예수가 있는 중앙의 십자가에 비춤으로써, 뒤쪽 예배당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명암대비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예배당의 세부 묘사나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색조를 흐리게 하였습니다.

또한 성부 하님이 입고 있는 튜닉의 붉은 색깔은 성자 요한과 봉헌자 도미니코 렌지에게,
겉옷의 푸른 색깔은 성모 마리아와 렌지의 아내에게 입혀 화면의 좌우대칭과 균형감을 살렸죠.

사선으로 교차되는 이들의 옷 색깔은 천상과 지상의 연결고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마사초는 이 그림에서 다양한 공간층을 활용합니다.

<성삼위일체>의 평면구성도를 보면,
그가 실제 어떤 구조를 상상하고 그림을 설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평평한 이차원 공간에 총 네 개의 차별적인 공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요.
가장 앞쪽에 봉헌자 부부가 손을 모으고 있는 공간,
성모 마리아와 성자 요한이 존재하는 가운데 공간,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공간,
그리고 가장 높은 단 위에는 성부가 서 있는 공간입니다.

인물들 각자는 같은 평면 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층위씩 후퇴해가며 입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면임에도 그 속의 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원근법의 마술인 것이죠.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죠.
그림에서는 예수의 공간 속 기둥이 뒤쪽 성부의 공간 속 기둥보다 훨씬 길어 급격한 차이를 보이지만,
평면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실제 기둥들은 같은 길이로 설계된 것입니다.

마사초가 그림을 보는 각도에 얼마나 급한 경사를 부여했는지알 수 있는데요.
화면을 급격하게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각도.

이는 감상자가 그림을 평행한 눈높이로 바라보더라도,
예수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고 있다고 느낄 만한 각도입니다.
소실점이 그림 하단부가 아닌 화면의 중앙에 있었다면 이와 같은 급경사는 느껴지지 않았겠죠.

이처럼 과격한 경사는 감상자가 낮은 곳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종교적인 숭고함을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원근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마사초가 그림을 그릴 당시인 15세기 초만 해도 이는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그가 회화에 처음으로 적용한 원근법은
미술 기법의 혁신을 가져왔고, 그를 초기 르네상스의 창시자라 불리게 만들었죠.

그러나 마사초가 원근법 자체를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에도
단일 인물의 크기를 관찰자와의 거리에 따라 축소하는 단축법은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통일된 시점에 대상들을 고정하는 방법은알지 못했을 뿐더러
대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과학적으로 표현해내지는 못하였죠.

이에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1413년,
의뢰인들에게 자신이 지을 건물의 모습을 미리 보여줄 목적에서 원근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렌체 세례당은 그의 첫번째 연구대상이었는데요.
브루넬레스키는 세례당 정문 앞에서선 원근법을 이용해 건물 도상을 정확히 그려냅니다.
그가 그려낸 실측도가 올바른지 확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는데요.

세례당 앞, 적당한 거리에 서서 그 실측도를 얼굴 앞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그림을 거울로 비추는 것입니다.
그림의 소실점 위치에 뚫은 구멍을 통해거리를 조절하면서 그 거울을 바라보면,
자신이 그린 세례당 그림이 거울에 반사되어 보이게 됩니다.

거울을 치우면 실제 세례당이 보이고
다시 거울을 비추면 자신이 그린 그림이 보이는 것이죠.
브루넬레스키는 선 원근법을 통해 그린 그림과 실제 대상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원근법의 효과를 증명해냅니다.

그리고 동시대에, 마사초는 그의 제자로서
원근법과 투시도법의 원리를 배워
이를 최초로 회화에 적용시켰습니다.

<성삼위일체>에 그려진 반원형의 아치는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양식으로,
마사초와 그의 긴밀한 관계를 실감할 수 있게 하죠.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원근법이 건축에 사용되는 과학적 방법론에 머물렀다면
마사초는 그것을 회화에 최초로 적용시킵니다.

원근법은 마사초의 천재성 그리고 그의 빛을 다루는 능력 덕에 기교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이죠.
따라서 <성삼위일체>는 최초로 원근법이 적용된 회화라 불리게 됩니다.

마사초는 혜성같이 등장하여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일찍이 발견된 그의 예술적 재능은 르네상스 이념을 온전히 구현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원근법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 아닌,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이었기 때문이죠.

원근법은 ‘개인'의 탄생을 전제로 합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개인이 그림을 볼 때는 소실점도 그에 걸맞게 하나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나의 시선으로 본다는 발상이 마사초의 원근법으로 인해
새로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원근법은 왜 중세가 아닌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발견되었을까요?
신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던 중세에는 대상 간의 거리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평평하게 보이고
그 중요도에 따라 크기가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세에는 이러한 신의 시선을 고스란히 화폭에 옮기는 데 열중했죠.

그에 비해 르네상스 화가들은 신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내 눈에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면서
주체로서의 인간상을 제시하게 되죠.

<성삼위일체>는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놀라운 가능성으로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기법을 익히면 누구라도 이처럼 정교하고 사실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게 된 것이죠.

이후 르네상스 초기의 흐름은 원근법에 대한 열렬한 학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상의 주체인 인간이 가진 지성의 능력을 강조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인 르네상스가 꽃피게 됩니다.

성삼위일체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명확히 하는 부분도 드러냅니다.

신과 인물이 나오는 그림의 상단과 대비하여
그림 하단에는 해골이 덩그러니 누워 있는 것을확인할 수 있는데요.
해골의 묘비 위에는 라틴어로 된 경구가 쓰여 있습니다.

“나는 한 때 당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미래의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는 메멘토 모리, 즉 인간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명문 아래 놓인 해골은 이러한 인간의 필연적인 조건을 환기시키죠.

해골의 주인공은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갈비뼈를 하나하나 세어보았더니
성경에서 묘사되는 아담의 모습처럼 갈비뼈 갯수가 하나 모자랐기 때문이죠.

예수가 처형당한 골고다 언덕에 아담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존재하여
정황상 이 해골은 묘비에 묻힌 아담을 그려낸 것으로 보입니다.

해골은 아담, 즉 모든 인간들의 죽음을 상징하며
유한한 삶 끝에 최후의 심판이 존재한다는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위치한 이 그림.
관광객들은 모두 입체적인 신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경험하고, 그림 속에 빠져들기 위해 성당을 방문합니다.

<성삼위일체>의 등장인물들은 실제 사람의 크기보다약간 더 크게 그려졌는데요.
몇 발자국 뒤로 떨어져 관찰하는 감상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
실제 크기로 그린 것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으로 보입니다.

최초의 원근법적 시도였음에도
그 구성적 치밀함과 완성도는 지금도 감탄을 자아내죠.
마사초의 그림이 드러내는 강렬한 현실성은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를 우리들 앞에서 ‘지금’ 일어나는 이야기로 탈바꿈 시킵니다.

르네상스의 시작점이자 근대 회화의 시초가 된 이 그림.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