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마치 도넛 같다'..첫 관측 성공한 우리은하 블랙홀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Sagittarius)A*' 의 모습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은하 중심부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Sagittarius)A*' 의 모습이 12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이 초거대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무려 400만 배에 이른다.

가운데 어두운 부분이 실제 블랙홀이며, 주위의 밝은 빛은 거대한 중력으로 초고온 상태가 된 가스가 방출하는 빛이다.

이 빛의 고리 크기가 대략 수성의 공전 궤도 정도로, 지름이 6000만km 정도 된다.

우리에겐 참 다행인 소식은 이 거대한 '괴물'이 태양계로부터 약 2만6000 광년이라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다. 이 괴물 때문에 지구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세계 주요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블랙홀 영상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해온 국제 협력 프로젝트 '사건지평선망원경'(EHT)의 연구진이 이번에 처음으로 궁수자리A*의 모습을 포착해 공개했다.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A* 블랙홀은 태양계로부터 2만6000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지난 2019년 이미지가 공개된 '은하 M87'(또는 '처녀자리A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이후 촬영에 성공한 두 번째 블랙홀이다. M87 블랙홀의 질량은 우리 태양의 65억 배로 이번에 발견된 궁수자리A*보다 천 배 이상 더 크다.

그러나 "다름 아닌 '우리의' 초거대 블랙홀이기 때문에 이번 궁수자리A* 포착이 특별하다"고 EHT 프로젝트 소속 헤이노 팔케 네덜란드 라드바우드 대학 교수는 밝혔다.

팔케 교수는 "궁수자리A*는 '우리 뒷마당'에 있는 블랙홀이다. 궁수자리A*가 블랙홀에 대한 우리의 의문을 해결해 줄 것이다. 매우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블랙홀'이란?

  • 블랙홀은 물질이 붕괴된 공간이다.
  • 중력이 워낙 강해 주위의 물질은 물론 빛조차도 빠져나갈 수 없다.
  • 큰 항성이 사멸 과정에서 중력으로 인해 폭발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하지만 어떤 블랙홀들은 그 크기가 정말 압도적이라 우리 태양의 수십억 배에 달하는 질량을 자랑한다.
  • 이렇듯 대부분 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초대질량 블랙홀들의 형성 과정에 대해선 아직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러한 블랙홀 덕에 은하계는 더욱더 역동적이며, 블랙홀은 은하계 진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번 관측은 과학기술의 역작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궁수자리A*는 지구에서 2만6000 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이 하늘에 난 작은 바늘구멍과도 작은 천체를 식별해내기 위해선 극도로 높은 해상도를 가진 관측 장비가 필요했다.

EHT의 비법은 바로 '초장기선 전파 간섭계(VLBI)' 관측법이었다.

VLBI는 근본적으로 여러 대의 안테나를 결합해 전파를 모으는 방식이다. 전 세계 천체학자들은 전 지구에 걸친 전파망원경 8대를 연결해 지구 규모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다.

Schematic description

블랙홀의 중력에 끌려온 가스는 주위를 회전하면서 '강착원반'이라 불리는 구조를 만들며 끌려 들어간다. 이 강착원반의 크기는 블랙홀 질량에 따라 달라진다. 블랙홀의 중력 때문에 빛이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가운데 영역은 검게 나타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블랙홀에서 멀어져 중력이 약해지면 빛이 드디어 나올 수 있게 되는데, 이 '표면적'을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빛이 벗어날 수 없는 중력장의 경계인 셈이다. 강착원반에서 밝은 부분은 소위 '도플러 부스팅' 때문이다. 지구 쪽으로 다가오는 가스가 내는 빛은 도플러 효과를 받아 훨씬 밝게 관측되는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전파망원경으로 동시에 같은 블랙홀을 관측한 결과 하늘을 마이크로아크세컨드 단위로 잘라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망원경의 민감도와 분해능(서로 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일 수 있었다. EHT 연구진은 이에 대해 "달 표면에 있는 베이글을 관측할 수 있을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런데도 수 페타바이트(1PB가 100만GB)에 이르는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구성하기 위해선 원자시계, 스마트 알고리즘 및 엄청난 슈퍼컴퓨팅 작업이 필요했다.

블랙홀에서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의미는 어떤 방법으로도 블랙홀 자체를 직접 볼 수 없으며, 블랙홀의 '그림자'만을 관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블랙홀의 강한 중력 때문에 끌려온 가스는 '강착원반'이라 불리는 구조를 만들며 끌려 들어간다. 이때 빛이 방출되는데, 마치 어둠 주위에서 소리를 지르며 퍼져나가는 듯한 빛 덕에 블랙홀 윤곽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번에 새로 포착된 블랙홀 이미지를 기존의 M87 블랙홀 이미지와 비교해보면서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지리 윤시 박사는 "궁수자리 A*의 질량이 M87보다 천 배 정도 더 작다"라면서 "즉 고리 구조가 천 배 더 빠른 시간 축에 따라 변화한다는 뜻이다. 매우 다이내믹하다. 고리가 하루하루 달리 움직인다"라고 덧붙였다.

윤시 박사가 설명한 이 차이점은 연구팀이 제작한 시뮬레이션 영상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해당 영상은 우리가 라디오파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눈을 가졌다는 가정하에 우리은하 중심이 어떻게 생겼을지 보여준다.

고리의 초고온 가스 또는 '플라즈마'는 블랙홀 주변을 엄청난 속도(약 30만km/s)로 회전한다. 밝은 부분은 물질이 지구 쪽으로 다가오는 부분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지구 쪽으로 다가오는 가스는 '도플러 효과'로 인해 더 밝게 보이기 때문이다.

블랙홀 관측 'EHT' 프로젝트

지구로부터 M87 블랙홀보다 훨씬 가까이 있음에도, 궁수자리 A* 관측이 늦어진 이유가 바로 주변이 급격히 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료 해석이 훨씬 까다로웠다.

실제로 두 블랙홀은 지난 2017년 초 같은 기간 관측됐지만, M87 블랙홀은 훨씬 크고 지구에서 무려 약 5500만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마치 더 정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현재까지 생각하는 블랙홀의 물리학이 맞는지 시험하기 위해 이번에 새롭게 관측된 블랙홀 이미지를 활용한 여러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찾아낸 것은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제시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은 우리은하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다고 의심해왔다. 블랙홀이 아니면 주변의 별들을 2만4000km/s 의 속도로 가속할 수 있을 만한 중력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이 속도가 감이 안 온다면 우리 태양이 은하 주위를 공전하는 속도가 230km/s 정도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천문학자 라인하르트 겐젤과 안드레아 게즈가 궁수자리 A*에 대한 연구로 지난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할 당시 노벨위원회는 우리은하 중심의 "초거대한 조밀한 물체"라고만 언급했다.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게 블랙홀이 아닐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궁수자리 A* 인근 별들의 공전 속도는 엄청나다

한편 작년 말 지구에서 발사된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올 8월 궁수자리 A* 쪽을 관찰할 예정이다.

개발 비용만 100억달러(약 12조원)가 소요된 이 우주망원경은 블랙홀과 강착원반을 직접 촬영할 만한 해상도를 갖추고 있진 않지만, 뛰어난 적외선 관측 장비 덕에 블랙홀 주변 환경에 관한 연구의 새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즉 천문학자들은 블랙홀 주변을 맴도는 별 수백 개의 행동과 물리학을 매우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 근처에 항성 크기의 블랙홀이 존재하는지, 항성 크기만 한 블랙홀이 있는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응집한 증거가 있는지 등에 관해서도 연구하게 된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궁수자리A* 주변 환경을 연구하는 모습을 담은 상상도

해당 연구를 이끌 제시카 루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조교수는 "더 선명한 우주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질 때마다 은하 중심부를 찍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언제나 환상적인 걸 알게 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EHT 팀의 연구 결과는 '천체물리학저널' 특별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