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애기장대, 식물의 비밀 아낌없이 알려주다

김민철 논설위원 2022. 5. 1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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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회>

애기장대는 초봄에 산기슭이나 길가·화단에서 흰색 꽃을 피우는 식물로, 커봐야 30㎝ 정도입니다. 무·배추, 냉이와 같은 십자화과인데, 꽃이 좁쌀만큼 작은데다 튀는 외모도 아니어서 냉이려니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여튼 꽃 애호가들은 애기장대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야생의 애기장대. /사진=여왕벌

그런데 요즘 매주 수요일 카오스재단이 진행하는 강연 ‘식물 행성(Plant Planet)’을 듣다보니 가장 많이 나오는 식물 이름이 애기장대였습니다. 지난주까지 8주 강연마다 “애기장대로 실험을 했더니...”라는 말이 빠진 적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 카오스 식물 강연 4강에서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최길주 교수는 “애기장대로 실험을 했더니 발아율이 22도에서 높았고 그 이상 올라가면 떨어졌다”고 했고, 지난주 8강에서 서울대 생명과학과 이일하 교수는 애기장대 현미경 사진을 보여주며 영양생장과 생식생장을 설명했습니다. 주로 정상적인 애기장대와 돌연변이 애기장대를 비교해 어떤 유전자가 있고 없을 때 식물체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연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식물이 잘 자라는지 알아본 실험도 애기장대를 갖고 했다고 합니다.

애기장대 춘화처리 설명 화면. /서울대 이일하 교수 강연 PPT

애기장대는 뿌리잎이 10개 정도 로제트형으로 모여난 다음 긴 꽃대를 올려 작은 흰 꽃을 피웁니다. 그 모습이 아래쪽은 꽃다지 같고 위쪽은 냉이 같았습니다. 다만 열매 모양이 냉이는 삼각형이지만 애기장대는 선형(線形)입니다. 주로 꽃다지, 냉이와 어울려 살기 때문에 잘 살펴보면 아파트 화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북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자란다고 합니다.

이렇게 평범한 애기장대가 왜 식물 강연에서 빈번하게 이름이 나올까요? 그것은 이 식물이 식물 과학에서 대표적인 모델 식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동물학자들이 연구에서 초파리, 쥐, 영장류 같은 모델 동물을 쓰듯이 식물학자들은 애기장대를 모델 식물로 쓴다는 것입니다.

각 성장 호르몬이 부족할 때 결과를 보여주는 애기장대 사진. /충북대 조현우 교수 강의 PPT

애기장대는 발아해 씨가 맺힐 때까지 1세대 기간이 6주로 짧다고 합니다. 빨리 자라고 빨리 꽃이 피는 것이죠. 또 유전체(genome) 크기가 작고 식물체가 소형으로 배양이 용이해 실험재료로 적합하다고 합니다. 애기장대의 유전자 총수는 2만7000개인데 2000년 이미 전체 유전체 분석을 완료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유전자 조작도 쉬운 장점까지 있다고 합니다.

식물과학의 모델, 애기장대. /서울대 이일하 교수 강연 PPT

이런 다양한 장점 때문에 유전학, 생리학, 발생학 등 식물학의 여러 분야에서 애기장대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애기장대 연구에 관한 데이터를 모아 놓은 미국 애기장대 자원 센터(ABRC)에 등록된 연구 결과만 90만 건에 육박했습니다. 애기장대가 인류에게 식물의 비밀을 아낌없이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식물학자는 “나에게 애기장대는 세상과 생물을 이해하는 창(窓)”이라고 했더군요.

야생의 애기장대.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지난달 13일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유리 교수의 ‘건축탐구 잎’ 강연에서는 애기장대 자체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 교수도 애기장대로 식물 신호전달체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오늘도 혹사당하는 애기장대, 애기장대가 고생이 많네”라는 댓글을 소개하자, 이 교수는 웃으며 “애기장대,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애기장대에 노벨상을 주어야”, “과학계는 애기장대에 공로상을 주어야” 같은 댓글도 달렸습니다.

식물실험실 대학원생들은 애기장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박사후 과정인 카오스 강연 사회자는 “실험 식물의 복지는 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다. 애기장대 종자만을 위한 냉장고도 있다. 저희가 쉬는 날 없이 매일 잘 자라는지 체크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식물 과학자들은 매일같이 애기장대와 더불어 울고 웃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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