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볼이었던 공이, 올해부터 스트라이크라고?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 심판위원들은 올해 1월 휴가를 반납하고 서울 고척돔에서 설날 앞 주까지 판정 훈련을 했다. 새 시즌을 앞두고 심판도 선수처럼 훈련을 한다. 가장 중요한 훈련은 야구에서 가장 어려운 판정인 스트라이크·볼 판정이다. 통상 2월 시작되는 프로야구단 전지훈련 캠프에 합류하지만 올해는 일정을 앞당겼다. KBO가 올해부터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적응 훈련이 필요했다.
야구 규칙은 스트라이크존을 ‘유니폼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으로 하고, 무릎 아랫부분을 하한선으로 하는 홈플레이트 상공’으로 규정한다. 규칙이 달라진 건 아니다. 실제 스트라이크존이 규칙상 존에 비해 현저히 좁기 때문에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림 1〉과 〈그림 2〉는 야구 콘텐츠 그룹인 야구공작소가 제작한 2018년과 2021년 KBO리그 투타 유형별 스트라이크존이다. 실선으로 표시된 작은 직사각형이 규칙상 존이다. 큰 실선 직사각형은 규칙상 존 각 변을 야구공 반 개 너비만큼 늘린 것이다. 색으로 표현한 분포는 트래킹 장비로 측정된 투구가 영역별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확률을 나타낸다. 색이 짙을수록 확률이 높고 옅을수록 낮다.
한눈에 봐도 2018년에 비해 2021년 스트라이크존이 줄어들었음이 나타난다. 낮은 쪽 존은 아래쪽으로 다소 길어진 반면 좌우 폭이 좁아졌다. 판정이 더 정확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존의 축소는 높은 코스에서 두드러진다. 2021년엔 규칙상 존의 높은 쪽 경계에 꽂힌 공이 거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못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도 “높은 쪽 스트라이크존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심판들도 1월에 이 부분을 주로 훈련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강타자들은 스트라이크존 코너를 파고드는 외국 투수의 공을 치는 데 애를 먹었다. 존이 좁은 KBO리그에서라면 볼로 판정될 공이기 때문이었다. 좁은 스트라이크존은 지난해 프로야구 역사상 유례없는 볼넷 폭증을 불렀다. 2021시즌 볼넷은 9이닝당 4.19개로 역대 최고치였다. 볼넷 폭증으로 야구가 지루해졌고, 경기 질이 떨어졌다는 원성까지 뒤따랐다. KBO가 존 확대를 결정한 배경이다.
야구 경기의 양상은 역사적으로 공의 재질, 마운드 높이, 펜스 거리, 투포수 간 거리, 특정 투구의 금지 등 규칙과 환경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스트라이크존도 매우 중요한 변수다. 존이 좁아지면 투수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이 줄어들고, 넓어지면 높아진다.

점수가 너무 많이 나거나 너무 적게 나는 야구는 팬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KBO는 중앙은행이 금리정책을 쓰듯 스트라이크존이라는 수단으로 타고투저나 투고타저를 조절해왔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KBO가 스트라이크존을 변경한 횟수는 무려 아홉 번이다.
최초 변경인 1990년과 세 번째인 1998년엔 야구 규칙을 개정해 존을 변경했다. 메이저리그의 규칙 개정을 수용한 결과다.
나머지 일곱 번은 규칙을 그대로 두고 판정 지침만 종전과 달리했다. 엄밀하게는 규칙 개정 없이 존을 변경할 수 없다. 하지만 KBO는 관행적으로 ‘존 확대’ ‘축소’라는 표현을 써왔다. 이 관행은 1996년 김기춘 총재부터 시작됐다. 두 번(1996·2007년)은 공격적인 야구를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존을 축소했고, 다섯 번(2002·2010·2015·2017·2022년)은 타고투저 완화 등 이유로 확대했다.
스트라이크존을 바꾸면 생기는 일
앞선 여덟 차례 존 변경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존이 변경된 시즌과 앞 시즌의 평균자책점과 9이닝당 볼넷을 비교했다. 존이 확대된 시즌에는 두 값이 낮아지고, 축소된 시즌엔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림 3〉에서 보듯 딱 한 시즌을 제외하곤 모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가장 마지막으로 존이 바뀐 2017년에 평균자책점은 전년 대비 –4.0%, 9이닝당 볼넷은 –15.9%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이후 KBO가 지침을 바꾸지 않았는데도 확대된 존이 다시 좁아졌다는 데 있다. 과거 여러 차례 존 변화에 대해 “초반에는 변했지만 갈수록 원래 존으로 돌아간다고 느꼈다”라고 말하는 선수와 감독, 코치가 많다.
메이저리그는 2000년대 트래킹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트라이크존을 규칙상 존에 가깝게 바꾸는 데 성공했다. 실제 판정을 실측 데이터와 비교해 심판에게 피드백하면서 오류를 수정하는 방식이었다. KBO도 2010년대부터 트래킹 데이터를 심판위원 고과에 반영하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와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피드백 방식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심판이 선수 반응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도 존이 좁아져왔던 이유로 꼽을 수 있다. 허운 KBO 심판위원장은 1월 고척돔에서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이 정착하려면 선수들 도움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심판 다수는 야구장 관객과 TV 중계 시청자의 비난에도 예민하다.
심판이 비난을 의식하게 되면 적극적인 판정 대신 익숙한 기존 존을 우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림 2〉에서 특히 심판이 높은 쪽 스트라이크 판정에 소극적이라는 점은 그 방증이다. 심판은 대개 야구선수 출신이며 한국 선수는 어려서부터 ‘높은 공은 나쁜 공’이라고 배운다. 존에 예민한 투수나 감독도 높은 쪽 볼 판정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심판 입장에서 ‘하이 스트라이크’를 규칙대로 판정하면 타자에게 항의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높은 공은 볼로 오심을 하는 게 오히려 안전하다. 그래서 야구 규칙보다 훨씬 낮은 스트라이크존 상한선은 출범 이후 KBO리그의 오래된 특징이었다.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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