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는 법"

중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중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주한중국문화원의 강연이나 행사, 전시회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중 태극권은 국민운동이라 불릴 정도로 중국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힘 하나 안 들이고 물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느릿느릿한 품새라니. 마음을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당연히 태극권 공부를 좋아할 것이라고. 한달음에 달려가 3개월짜리 태극권 과정을 등록했다.

하지만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에 태극권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첫날부터 몸과 마음이 심하게 따로 놀았다. 쉬우면 운동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태극권은 나무토막 같은 나의 몸이 해내기에 너무도 어려운 운동이었다. 게다가 수업시간이 매주 토요일 아침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수업이 있던 토요일 점심 무렵에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 연이어 결석했다. 네 번째 수업에는 겨우겨우 참여했으나, 그때부터는 수업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중도하차를 결정했다. 강사도 훌륭하고 수업료도 저렴하고 심지어 집에서 가까운 거리였는데도 그만둔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는 법. 태극권에 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은 여전하지만, 무술까지 연마해서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되겠다는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오랜 기간에 걸쳐 배우고 익혀야 하는 공부는 수업 요일과 시간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야할 길이 아니라면 돌아 나오는 게 좋다"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여도 갈등이 생긴다.

뭔가를 처음 배우려고 할 때, 수강 기간이 길거나 수업 횟수가 많으면 선뜻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나 역시 무엇을 배우든 초반부터 기나긴 시간을 견뎌내고 열정을 투입해야 하는 수업은 가급적 피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부담 없는 원데이클래스와 1개월에서 3개월 정도의 기간 내에 하나의 과정이 마무리되는 수업을 선호한다. 새로이 시작한 배움의 길이 나와 잘 맞지 않을 때에 대비해서 일단 낯가림을 떨치는 준비기간이 필요한 셈이다.

예를 들어 옷 만들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우선 내게 적합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바느질 공방을 찾는다.

나는 《바느질 사계》와 《홍창미의 스토리 백》을 읽고 그 공방의 초급반에서 6주 동안 옷을 만들었다. 6회의 수업 부산물로 소품 한 개와 옷 다섯 벌(스커트, 큐롯 반바지, 긴 바지, 소매 없는 원피스, 긴 소매 원피스)이 생겼다. 그리고 성취감을 맛보는 선에서 옷 만들기 수업을 끝냈다.

초급반을 무사히 마쳤는데도 다음 단계인 중급반 수업을 등록하지 않은 것이다. 만든 옷은 하나씩 늘어갔지만, 더는 배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옷가지 수에 비례해서 늘어났기 때문이다. 바느질은 내가 갈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옳은 길을 되찾아 나오면 된다. 가야 할 길이 아니라면 아무리 멀리, 아무리 많이 걸어갔다 해도 미련 두지 말고 냅다 돌아 나오는 게 좋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많이 걸어간 것이 아까워서 계속 가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일이다. 길을 너무 멀리 떠나와서 어디로 돌아갈지 알 수 없을 때는 그 자리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도 속 시원한 해결책이다.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는 건데, 나 아닌 그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몇 년 전에는 수채화를 배우러 갔다가 스케치북 몇 장만 채우고 끝낸 적이 있다. 수채화의 색감을 제대로 내려면 물감이 마르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데, 늘 마음보다 손이 먼저 나가 붓질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그림을 망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다 잘 빠진 그림 하나를 건지자마자 그림 공부는 일단 끝내고, 수료증 삼아 그 그림을 침실 벽면에 마련한 ‘명예의 전당’에 소중하게 걸어두었다.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 두어 해 뒤에는 데생의 기초를 배우러 갔다가 두 달 만에 그만뒀고, 다음에는 펜화 드로잉 수업을 시작해서 한 달을 채우고는 또다시 중도하차했다.

이렇게 여러 번 다시 시도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마무리를 잘 지었기 때문이다. 중도하차하는 순간에도 내가 그려낸 결과물들을 보면 후회가 들지 않았다. ‘이것 하나 건진 게 어디야’라며 오히려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그래서 그림 그리기 삼단 콤보를 시식하는 것으로 허기는 감췄지만, 다른 장르의 그림을 배우러 가겠다고 언제 또 나설지 모르기에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일본 드라마 제목).

자기 검열을 너무 많이 하면 나중에는 판단력이 흐려진다. 자기 회의도 가끔만 해야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질 때는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별로 기대하지 않아야 부담이 없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대충 시작했다가 마음에 들면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선택과 집중의 시기를 지나 균형을 잡게 되면 무엇을 배웠건 그 분야에 관해서는 한결 깊어진 눈빛을 지니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