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방호벽을 지난다. 강원도 군인 마을 같은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인제, 원통, 천도리 같이 휴전선이 가까운 동네에서 많이 보던 군사시설물인데 이곳에서 보니 신기했다. 경기도라는데 왜인지 강원도 같은 느낌이었다.
외곽이라 그런지 고물상이 많았다. 재활용 쓰레기를 압축해서 모아둔 것이 알록달록하니 하나의 팝아트 작품을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며 재잘댄다. 고물상 처음 보냐는 언니의 질문. 작은 것에 신기해하는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말하는 언니다.
내가 살던 동네의 고물상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모아 놓은 작은 고물상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큰 공장 같은 규모라 신기했다. 사실 좀 전에 밥을 먹어서인지 기분이 좋아져서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나누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다.
주유소에서 조금 더 올라가서 묘지 방향으로 진행했다. 여기서 길을 잘못 든 것인지, 길을 좀 헤맸다. 군데군데 가시오가피처럼 가시가 살벌한 나무들이 있었다. 멋모르고 가시에 살짝 닿았다가 식겁했다. “앗, 따거!” 한 번 따가움을 맛본 뒤로는 가시나무가 있는지부터 살피고 조심히 한 발씩 내딛게 된다. 누구라도 따가움을 맛보면 조심할 수밖에 없다.
가시나무 사이에서 한참을 사투한 끝에 어느새 길을 제대로 찾은 듯했다. 지뢰밭에서 빠져나와 보니 옷 여기저기에 도깨비바늘이 붙어 있다. 분명 선명한 길과 군데군데 자리한 표지기를 보며 따라갔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찌 되었건 길을 잘 찾아 다행이다.
길을 제대로 찾았든 아니든 간에 드문드문 표지기가 있었던 걸 보면 우리만 잘못 든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사실이 퍽 위로가 되었다. 이번 구간은 전체적으로 약간의 알바를 겸하며 걷는 길이다. 알바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길이 여기저기 중구난방이다.
도로와 건물이 뒤섞인 한북정맥. 종주꾼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단비 같은 안내판이 있었다.
야산을 따라 걷는데 온통 묘지뿐이다. 초입에도 죄다 묘지였는데 걷는 내내 묘지가 많다. 묫자리로 좋은 산인가 보다. 묘지는 터가 좋은 자리에 많다는데 이 산이 보기보다 터가 좋은가? 묘지가 많다는 것만 빼면 길도 좋고 폭신폭신 걷기 좋은 동네 뒷산 느낌의 작은 야산이다.
곧이어 좁은 도로를 건너 다른 야산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 도로가 작은넋고개다. 야산에서 도로로 내려오는 비탈에 생활 쓰레기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어 잠시 주춤하게 되지만 길이 하나뿐이라 갸우뚱하면서도 곧장 내려온다. 작은넋고개에서 맞은편 산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표지기가 많아 등산로 찾기가 어렵지는 않다.
발이 아파서 신발을 갈아 신고 싶어졌다. 발바닥이 약해서 그런지 중등산화를 신고 눈길이 아닌 산길을 한나절 이상 걸으면 발바닥에 통증이 온다. 충격이 조금이라도 덜 느껴질까 싶어 두꺼운 양말을 신었더니 발에 열이 많이 나서 되레 더 불편했다.
처음 산행할 때부터 로망이었던 투박하고 무거운 가죽 중등산화. 여전히 중등산화를 신는 걸 좋아하지만 신을 때마다 자주 발바닥이 아파서 고민스럽다. 마인들이 단단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신어온 기간도 길어 적응은 충분히 되었는데도 아픈 걸 보면 신발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발이 좀 약한 듯하다.
우천 소식에 혹시 몰라 여벌의 신발 하나를 더 챙겼는데 요긴하게 쓰게 되었다. 갈아신으니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발이 가볍다. 중등산화에서 가벼운 리지화로 갈아 신었으니 당연지사. 무게도 무게지만 발이 시원해져 좋았다. 외국에서는 장거리 종주 시 샌들을 애용하기도 한다던데, 신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해봐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두꺼운 양말만 챙겨온 나를 위해 언니가 여벌의 얇은 양말을 빌려줘서 남은 거리는 좀 더 편하게 산행할 수 있었다. 우천 소식에 다음 날 산행을 대비해서 챙긴 신발인데 중간에 갈아 신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무렴 어떤가. 남은 산행을 더욱 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
야산 같은 산들이 이어져 무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작은넋고개 이후로 개발이 한창이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니 짓고 있는 건물이 많이 보이고, 능선 바로 옆에도 짓는 건물이 있다. 공사를 시작한 지 제법 오래된 것 같던데, 공사장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보니 방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현재 공사가 중단된 것처럼 보였다. 몇 년 후에 다시 걸으면 완성된 건물을 볼 수 있으려나? 나중에 후기를 보면 이 길은 색다르겠다. 다른 한 편으로는 건물이 모두 완공되고 나면 이 길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작은넋고개에도 한북정맥 이정목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개발과 공사에 따른 변화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한북정맥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야 하겠지만 많이 훼손되지 않고 지금만큼이라도 유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죽엽산 길을 그대로 지나왔다. 길이 너무도 선명했고, 지나는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그대로 진행해왔다. 노송들이 많은 숲이었다. 서어나무가 있는 걸로 보아 오래된 숲 같았다. 서어나무는 숲이 변해가다 더는 변하지 않는 안정된 상태인 극상림을 구성하는 중요한 나무이다. 서어나무 자생지가 있는 지역은 산림이 최소 200년 이상 된 숲이라 할 수 있다. 울창한 숲이 참 좋았는데 마음이 급해서 곁눈질만 할 뿐 멈춰 둘러보지 않고 내달리듯 지나왔다.
죽엽산을 내려오다 보면 임도길과 만나는 길목에 초소가 있다. 초소 옆에 붙은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죽엽산은 국립산림과학원의 광릉연구시험림으로 지정되어 임산물 채취 같은 불법행위가 금지되고, 허가를 받아야 입산이 가능한 산이라고 한다. 앞으로 남은 구간까지는 좀 더 자세히 조사해서 문제가 없도록 해야겠다.
임도에서 산길을 따라 좀 더 내려가면 송전탑을 따라가는 길이 있다. 여기서도 약간의 알바를 겪었다. 갈림길이 많고 표지기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잘못하면 알바 하기 딱 좋은 곳이다. 우리는 길이 넓고 좋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그대로 음식점까지 내려가 버렸는데, 나중에 후기를 찾아보니 넓은 길로 걷다가 좌측으로 꺾어 샛길처럼 생긴 산길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다.
되돌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던 찰나 음식점 바로 옆에 난 산길을 찾았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 곧바로 생태탐방로로 올라설 수 있었다. 생태탐방로와 만나는 이곳이 비득재이다. 아래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매섭게 달리고 있다. 후기를 좀 더 자세히 보니 생태탐방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도로를 건너 노고산으로 올라섰다고 한다.
광릉숲 생물권 보전지역 둘레길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었다.
비득재에서 이곡초등학교 방향으로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깨끗한 이정목이 눈에 띈다. 이정목 가운데 ‘광릉숲생물권보전지역둘레길’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광릉숲?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낯익은 이름이다. 수연 언니와 내가 함께 수업을 들었던 숲길등산지도사 교육 동기 선생님 중에서 ‘광릉숲친구들’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분들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모처럼 전화를 걸었는데, 역시나 잘 아는 길이라며 반가워했다.
비득재에서 노고산을 지나 이곡리 고개까지 광릉숲 둘레길 4코스 고모산성길과 겹친다는 정보를 얻었다. 둘레길이 난이도가 세지 않아서 걷기 좋을 거라며 나중에 광릉숲 둘레길도 한 번 걸어보라는 홍보의 한 마디까지 덧붙였다. 등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선생님인데, 이곳 둘레길은 걸을만하다는 말에 힘을 내어 본다.
전화를 끊기 무섭게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일기 예보에 비해 늦춰지긴 했지만, 기어이 비가 내릴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40분이다. 노고산을 오르는 길에도 송전탑이 이어진다. 된비알을 오르며 두 번째 송전탑을 맞이하는데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던 비가 점점 굵어지는 게 느껴진다. 더 많이 내리기 전에 서둘러 가방을 내려두고 다이소에서 산 1,000원짜리 우비를 꺼내 입고, 가방에 레인 커버를 씌운다.
기왕 배낭을 연 김에 사과도 같이 꺼냈다. 우비를 입으며 사이좋게 사과 한 쪽씩 나눠 먹는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먹는 사과는 퍽 맛이 좋았다. 언니는 작년 한 해 10번이 넘는 우중 산행을 했는데, 이 우비 한 벌이면 충분했다고 한다. 단돈 천 원짜리 우비가 가성비가 좋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사실 지금 입은 것도 작년에 언니와 ‘불수사도북’을 할 때 언니가 선물해준 우비인데 그때 쓰질 않아서 그대로 보관만 하고 있다가 이번에 요긴하게 쓰게 되었다.
가격에 비해 괜찮은 것 같다. 요즘 천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던가. 이 정도면 최고의 가성비다. 비가 5㎜ 이내로 온다고 했으니 예보대로라면 이걸로 충분할 것 같다. 혹시 몰라 고어텍스 자켓과 오버트라우져(방수바지) 역시 챙겨왔으니 걱정할 건 없다. 갑갑한 게 싫어서 상황을 봐서 갈아입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