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방에서 왜 벽걸이 시계를 팔까?
금은방에 왜 벽시계가?
일단 금은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광장시장 근처에 있는 종로4가 금은방 골목에 갔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금은방들이 다 현대식으로 바뀌어서 벽시계가 걸려 있는 곳은 찾을 수 없었던 것. 주변 가게 사장님한테도 물어보고 건물 경비아저씨한테도 물어봤는데 답은 “몰라요” “그런 금은방은 이젠 종로에 없어요~”였다.
종로에 오면 뭔가 옛날 느낌 나는 고풍스런 금은방에 휴대용 돋보기를 낀 시계장인을 만나 벽시계도 걸어놓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도를 보다가 그럼 시계 골목에 가면 알 수 있을까? 해서 갔는데 철거 예정.... 어째야 하나 막막하던 와중. 수소문 끝에 마포구에 있는 한 작은 금은방에 연락이 닿았다. 20년 넘게 한 장소에서 금은방을 운영하셨다 하니, 혹시 그 이유를 아시지 않을까?
마포구 금은방 유금당
보통 예전 한 20년 전에는 금은방이라고 하면 시계랑 금은방, 안경 이렇게 세 개를 동시에 하는 게 금은방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하면서 시계랑 금은방만 하는데 요즘 나오는 제이에스티나나 스와로브스키, 로이드 이런 데는 금은 판매점이고. 동네 금은방 같은 경우에는 2, 30년 전에 시계 기술부터 시작하신 분들이 많아서 주가 시계고 부가 금은이었는데
과거엔 금은방을 시계 기술자들이 여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금은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종로에도 사실 금은방보다 시계 골목이 먼저 형성되어 있었다. 바로 예지동 시계 골목. 시계 기술자들이 모인 이곳은 1970년대 중반 예물 시계를 저렴하게 장만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전자시계, 90년대 삐삐와 휴대전화 보급으로 시계산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기울어가던 시계산업과 달리 귀금속 도소매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종로에는 장신구 관련 산업체들이 모여들었고, 예전과 같은 수입을 내기 어려웠던 시계 기술자들은 입지 좋은 공간을 귀금속점에 내어주거나 작은 규모로라도 시계와 귀금속을 함께 판매하여 수입을 보충했다. 고급 시계뿐만 아니라 판촉용 시계들도 생산해 수입을 늘리고자 한 것. 그렇게 벽걸이 시계는 금은방 벽 한쪽을 채우게 되었다.
마포구 금은방 유금당
88올림픽 이후에서부터는 자동시계가 많이 나왔는데, 전자식이라고 하죠. 약으로 가는 시계가 많이 나왔는데 그전에는 다 수동 시계여서 그때 이제 배우신 기술자분들이 벽시계도 만질 줄 알아서 벽시계 수리, 손목시계 수리, 플러스 금은방을 하시는 거고
정리하자면 예전에는 금은방이 금은보석뿐만 아니라 '시계를 취급하는 곳'이기도 했으니, 시계의 일종인 벽시계가 금은방에서 판매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주얼리와 시계를 취급하는 곳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벽시계를 판매하는 귀금속 판매점이 줄어들게 되었지만.
사단법인 한국귀금속판매업중앙회 차민규 전무
시대가 변하면서 시계가 점차적으로 금은방에서 판매를 안 하게 되게 된 거죠. 옛날에는 금은방에서 팔다가 지금은 잡화점에서 판매하는 쪽으로 가는 게 더 싸게 팔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밀려난 거고. 좀 연세 드신 분들은 금은방에 와서 시계를 사 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시골 같은 데서는
금은방에서 벽시계를 판매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귀금속 판매업이 자유업종이라는 배경도 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금은방은 허가나 등록을 해야 하는 업종이 아니다. 업종에 대한 관련 개별법이 없어서 사업자 등록증만으로 금은방을 열 수 있고, 판매업자의 재량대로 고객의 수요에 맞게 무엇을 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
사단법인 한국귀금속판매업중앙회 차민규 전무
금이나 보석류, 다이아몬드,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외국 같은 경우는 허가 업종이나 등록 업종으로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요. 쉽게 얘기하면 아무나 사업자 등록을 내고 귀금속점을 할 수가 있으니까 뭘 팔아야 된다는 제한도 사실 현재 법에 없어요.
그런데 벽시계가 잘 팔리긴 할까? 금은방 벽면을 다 메우고 있는데… 벽걸이 시계를 파는 금은방 몇 군데에 연락해 봤는데, 모두 잘 팔리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고장 난 벽시계를 고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벽시계가 금은방의 인기 상품은 아니지만, 시계를 고쳐주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지금은 벽시계를 파는 금은방을 쉽게 찾아볼 순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시간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갈 수 있었던 건 이들 덕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