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이라도 싼 물건 찾아라.. 고물가에 노량진· 동대문 도매시장 '북적'

이종현 기자 입력 2022. 6. 26. 06:01 수정 2022. 6. 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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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새벽 3시쯤.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고요한 시간이지만,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 1층 한구석에선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경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길쭉한 장화를 신은 이곳 중도매 상인들은 활어가 들어 있는 노란 바구니 주위에 둘러선 채 눈을 반짝이며 상품의 상태를 가늠하고 있었다. 화려한 말솜씨를 보이던 경매사는 높은 가격부터 시작해 조금씩 값을 깎아내려 가며 쉴 틈 없이 입찰을 유도했다. 상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자신이 원하는 가격이 불릴 때면 오른손을 잽싸게 들어 올렸다. 낙찰된 상품은 즉시 경매장 바로 옆에 있는 도매시장으로 옮겨졌다.

노량진 수산시장 새벽 도매시장은 신선한 해산물을 싼 가격에 사서 소매로 판매하는 상인들이 주로 찾던 곳이다. 하지만 유튜브,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새벽 도매시장 이용법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른 새벽부터 이곳을 찾아오는 일반 시민들도 많아졌다. 실제로 유튜브나 네이버 등에 ‘노량진수산시장 새벽시장 이용법’을 검색하면 도매시장의 위치, 가격대, 구매 방법 등을 상세히 소개한 영상이나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했다는 박모(54)씨는 “2년 전 한 유명 수산물 유튜버가 영상을 올린 뒤부터 거래처 상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시장에 많이 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오전 3시 반쯤,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노량진수산시장 안에 있는 경매장(왼쪽)과 도매시장(오른쪽) 풍경/정재훤 기자

이날 만난 대학생 송창균(26)씨도 작년 3월 유튜브를 보고 이곳을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저녁에 먹을 전복을 사러 왔다는 송씨는 “신선한 해산물을 구매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은 오는 것 같다”며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걱정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사면 마트보다 1킬로그램(kg)당 1만~1만5000원은 더 싸게 구매할 수 있어서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촬영 장비를 들고 다니며 동영상을 찍는 사람도 보였다. 이모(44)씨는 주말 낚시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낚시를 가지 않을 때면 이곳 새벽 도매시장에 와 물건을 사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올린다고 한다. 이씨는 “오늘은 소라장을 담그기 위해 참소라 10kg을 6만8000원에 샀다”며 “이곳에서 사면 보통 소매점보다 30% 정도는 저렴해서 새벽부터 발품을 들이는 보람이 있다”고 했다.

25일 오후 3시쯤,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동대문종합시장 5층 부자재상가 모습./김민소 기자

같은날 오후 3시쯤,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동대문종합시장 부자재상가는 원단과 의류, 악세사리 부자재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점들 앞에 서서, 매대에 올려진 물건들을 들춰보고 있었다. 매대 위에는 면, 인견, 비즈, 리본, 조개껍질 등 다양한 부자재들이 수북이 올려져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가득한 탓에, 통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교통체증이 심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악세사리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50)씨는 지난 4월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최근 물가까지 오르면서 도매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이번 달 들어서 손님이 확연히 늘었다”며 “올해 초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정도 증가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소매시장에서 사려면 가격이 3000원씩은 더 붙는데, 요즘은 너도 나도 물가에 허덕이다 보니 아무래도 저렴한 도매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씨 가게에서 흰색 끈과 하늘색 비즈를 구매한 정모(32)씨도 ‘저렴한 가격’ 때문에 부자재시장을 방문했다고 했다. 정씨는 “인터넷에서 마스크 스트랩을 사려했는데, 하나에 7000원씩 하는 걸 보고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기로 했다”며 “안 비싸진 게 없는 요즘에 도매시장이 있어 이렇게나마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정씨는 이날 이곳에서 끈과 비즈 한 묶음을 3000원에 구매했다.

이날 부자재 상가를 찾은 손님들 중에는 아르바이트로 악세사리나 각종 소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비즈 가게 앞에 서서 물건을 비교하던 이모(28)씨와 정모(27)씨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이씨는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시간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아서, 악세사리를 만들어서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정씨를 가리키며) 친구와 동업을 해서 주말마다 부자재 상가를 찾는데, 비슷한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또래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정오,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청량리종합도매시장 풍경(왼쪽)과 시장 내 주차공간을 기다리는 차들(오른쪽). /김수정 기자

같은 날 정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청량리종합도매시장. 이곳 시장에는 식품, 음료, 수입 식자재, 화장지 등 각종 물건을 파는 도매상가가 도로를 따라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30개 묶음의 물과 음료, 10kg 세제, 15kg 초고추장·간장 등 큼직큼직한 물건들이 매대에 적재돼 있었다. 가게 내부 뿐만 아니라 길가에도 물건들이 적지 않았다. 주말 때 이른 시간이지만 이곳 도매시장에는 물건을 보러온 수많은 차가 일렬로 서 마치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시장 한가운데 공영주차공간 외 마땅한 주차공간이 없어 손님들이 빈 주차공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조금이라도 저렴한 제품을 사고자 도매시장을 찾게 됐다고 했다. 이날 장거리를 사러 도매상가를 찾은 최경자(62)씨는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대형마트에서 소매시장으로 또 소매시장에서 도매시장을 찾게 됐다”며 “같은 제품이라도 마트보다 이곳이 3000~4000원정도 저렴하다”고 했다. 가족들과 함께 도매상가를 찾은 한동수(40)씨는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장보기가 무섭다”며 “생활비 줄일 수 있는 건 식비뿐이라서, 더 저렴한 제품을 찾기 위해 도매 유통 상가에 오게 됐다”고 했다.

실제 상인들은 올해 들어 청량리종합도매시장을 찾는 일반 손님이 많이 늘었다고 말한다. 청량리종합도매시장에서 33년째 유통 매장을 운영한 이모(68)씨는 “일반 손님의 경우 수기로 판매부를 작성하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에 20팀 정도 였다면 올해는 그 두 배를 더 적는다”며 “그러면서 가게를 찾는 일반 손님 비중이 도매 손님 비중을 추월했다”고 했다. 또다른 유통 상가에서 일하는 이종훈(28)씨는 “대부분 손님은 물가가 올라 싼 제품을 찾다가 알음알음 도매시장을 방문하고 있다”며 “도매시장 앞이 소매시장인데, 손님들이 소매시장을 방문하는 겸 도매시장에 왔다가 도매가가 더 싸니깐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고 했다.

반면 수입 식자재를 판매하는 상가는 고물가의 타격이 커 외려 손님이 줄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26년째 수입 식자재 상가를 운영하는 황모(63)씨는 “농산물, 청과 등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도매상가들은 타격이 덜한데 우리처럼 수입 식자재를 파는 곳은 도매라도 가격이 많이 올라 손님이 줄었다”며 “도매상들은 특히나 물건을 구매할 때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해야 하는데, 원자잿값 자체가 너무 올라 한달에 두 번 가격을 올리는 곳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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