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진정한 이해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진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 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고 타인이나 세상을 향한 이해력도 늘어나며 섣불리 판단하는 일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한 단계 더 지혜로워진다는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때로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떻게 해야 타인과 세상을 어른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 ‘진정한 이해’란 어떤 것일까?
나는 봤지만 걔는 못 봤어
샐리와 앤이 있다. 샐리는 가지고 있던 공을 바구니에 넣는다. 샐리가 자리를 뜨고, 앤이 그 사이 바구니에서 공을 꺼내 공을 상자에 옮겨 둔다. 샐리가 돌아와서 공을 찾는다. 샐리는 바구니와 상자 중 어디를 들여다볼까?
답은 '바구니'다. 샐리는 앤이 공을 상자로 옮겼다는 사실을 모른다. 샐리가 마지막으로 공을 본 곳은 바구니 안이었기 때문에 샐리는 당연히 바구니 안을 들춰보게 될 것이다. 혹시 상자라고 대답했다면 잠시 반성해보자.

비교적 간단한 과제이지만 4살 이하의 어린이들은 이를 잘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는 다른 시각, 생각,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샐리는 공이 상자로 옮겨진 것을 전혀 보지 못했지만 자신은 보았기 때문에 샐리도 왠지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으로 여긴다. 즉 어린 아이들은 자신에게 있는 정보가 샐리에게는 없다는 점, 샐리와 자신은 전혀 다른 지식과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때문에 샐리의 생각을 추론하려면 순전히 샐리의 입장, 샐리가 처한 상황에만 집중해서 그녀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지 못한다.
예컨대 같은 컵을 보더라도 컵을 옆에서 보고 있는 나와 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내 친구 눈에 보이는 컵은 완전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네 살 이하의 아이들은 내 눈에 비치는 광경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있게 샐리의 눈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모든 상황을 지켜본 내 눈에는 담긴 ‘상자’를 외친다.
이렇게 입장 차이가 존재함을 모르고 남들도 나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여기는 현상, 자신의 시각으로만 남들의 마음과 세상을 해석하려고 하는 이러한 모습을 자기중심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다들 눈을 가린채 코끼리를 만지면서 내가 아는 코끼리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이가 좀 들어야 비로소 '남들은 나와 입장이 다를 수 있구나'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를 마음 이론이라고 한다. 커가면서 사람들과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마음 이론을 습득함으로써 자기중심성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내 머리속 세상을 좀 벗어나 최대한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추론하게 될 때 제대로 된 이해라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애초에 자기중심적으로 태어난 인간이 자기중심성을 벗어나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시카고대의 심리학자 니콜라스 에플리의 실험을 하나 살펴보자. 양쪽으로 뚫려있는 책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앉았다. 책장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한 명은 이런 저런 물건을 집으라고 지시하는 지시자의 역할을, 다른 한 명은 지시에 따라 물건을 집는 역할을 맡았다. 그림에서 보이는 책장의 하얀 부분은 양방향으로 뚫려있는 부분이고(물건이 양쪽 사람 모두에게 보임), 어두운 부분은 가려져 있는 부분이다(물건이 집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만 보임). 왼쪽 사진은 물건을 집는 사람의 눈으로 본 책장의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특정 물건을 집으라고 지시하는 지시자의 눈에 비치는 책장의 모습이다.
지시자가 건너 편 사람에게 이런 저런 물건을 집으라고 지시하다가 '접착제(아래에서 두번 째 칸 중앙) 위에 있는 작은 차'를 집으라고 지시한다. 여러분이 직접 물건을 집는 사람이 되어 왼쪽 그림에서 집을 물건을 선택해 보자. 총 3대의 차 중 어떤 차를 골랐는가?
아래에서 세 번째 줄, 접착제 바로 위칸 제일 오른쪽에 있는 차를 골랐다면 미션 실패다. 왜냐하면 이 차는 지시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이기 때문이다. 지시자가 집으라고 주문한 차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차가 아닌 위에서 두 번째 줄 제일 왼쪽에 있는 차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시점에서 봤을 때 가장 작은 차인 접착제 바로 위칸의 차에 자동적으로 제일 먼저 시선을 둔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지시자가 이 차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시자가 말한 그 차를 바라본다. 이러한 경향은 어른이나 아이에게서나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다만 다른 점은 어른은 아이들에 비해 좀더 빨리 지시자가 이 차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고치니까 어른이다
그러니까 나이가 어리나 많으나 우리는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셈이다. 타인의 의도를 살필 때도 자신의 입장에 먼저 빠져 있다가, 그 다음에야 아뿔싸 라며 타인의 상황을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 사람들의 생각과 의도를 추론하는 일은 자신의 경험에 일단 닻을 내린 후 그 다음에 부랴부랴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자기중심적인 감에 의지해서 타인을 손쉽게 판단하는 경향은 커서도 없어지지 않으며 여기에 머무를 경우 우리의 이해력은 네 살 이하의 수준으로 남는다. 어른이 되고 더 많은 것들을 헤아리는 성숙한 시각 또는 이해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한 치열한 수정 과정'의 유무에 달려있다.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고치기 때문에 어른이라는 것이다.
결국 타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잘 읽으려면 ①처음의 감, 판단 같은 것에 의지하고픈 충동을 억제하고 ② 같은 상황에서도 나와 타인이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인식, ③ 내 상황과는 다른 그 사람의 상황 같이 제한적이지만 중요한 정보들을 수집해서 ④ 처음의 섣부른 판단을 고치기 같은 철저한 수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력과 패기만을 바탕으로 초고를 썼다가 다시 보면서 이상한 부분을 수정하고 결국에는 원고 전체를 다 뜯어 고치고 마는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때문에 마음 읽기의 시작은 타인에 대한 나의 판단에 대한 철저한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바라보는 그 사람의 내용이 사실과 완전히 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나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지 않고(나는 복잡하고 심오해서 알기 어려운 존재이지만 남들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성별이나 출신지역, 인종 같은 한 사람을 구성하는 수 많은 정보들 중 극히 일부인 무엇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타인과 세상의 모습’이라는 내뇌망상에 갇혀 살게 될 뿐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나이가 많아지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아는 것도 많아지지만 그만큼 사고력도 굳어져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옳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이해력은 떨어지고 '라떼'가 되어버리는 슬픈 현상이 나타난다. 모르는 것도 안다고 우기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야만 '으른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사실 네살 이하의 발달 수준인 것이고 진짜 으른스러운 행동은 빠른 '인정과 수정'이다.
또 한가지 더 안타까운 사실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감’이 높아질수록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려는 ‘동기’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대충 막 오해하고 윽박지르고 자기 고집만 부려도 큰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상사의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 머리털 빠지게 고민하며 눈치를 본다. 이런 점에서 권력은 곧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힘'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완고함은 별로 자랑거리가 아닌 것 같다. 결국 지혜로움, 현명한 판단력, 성숙한 이해 등은 (가치관이나 도덕관은 제외하고)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나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더 갈대처럼 푹푹 꺾일 때 나오는 것이 아닐까?
※참고자료
-Baron-Cohen, S., Leslie, A. M., & Frith, U. (1985). Does the autistic child have a “theory of mind”? Cognition, 21, 37-46.
-Epley, N., Morewedge, C. K., & Keysar, B. (2004). Perspective taking in children and adults: Equivalent egocentrism but differential correction.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0(6), 760-768.
-Epley, N., Keysar, B., Van Boven, L., & Gilovich, T. (2004). Perspective Taking as Egocentric Anchoring and Adjustm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7, 327–33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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