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의 세계]① 같은 사람, 다른 신점.. 무당마다 다른 말 하는 이유는
무당들 "신의 말씀 해석하는 건 인간이라 다를 수 있어"
지난 대선에서는 ‘무속 신앙’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굿을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초 신년 운세를 보기 위해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유명 무당을 만나려면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조선비즈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과 무속 신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보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무속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재조명했다. [편집자주]
지난 2월 서울 관악구의 한 유명 점집을 조선비즈 기자들이 찾았다. ‘부부가 곧 이혼할 것’이라는 등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해 입소문을 탄 무당이 있는 곳이었다. 이 무당은 오피스텔 안에 신당을 꾸려놓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이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과 인형, 피규어 등이 수십개 전시돼 있었다. 무당이 이른바 ‘아기동자’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 한편에 마련된 신당에는 소주·와인·맥주·막걸리 등 각종 주류와 담배, 과자, 과일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모두 손님들이 신(神)에게 놓고 간 것이라서 함부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기자들은 이곳에서 직접 신점(神占)을 봤다.

이 무당은 기자의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직업은 괜찮다”고 말했다. 회사 내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며, 무난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올해 5~7월 중에는 다른 회사로 이직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연애 상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던 또 다른 기자에게는 그와 결혼하면 평탄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서울 지역의 또 다른 무당을 찾았을 때는 같은 질문에 대해 정반대 답변이 나왔다. 이 무당은 기자의 직업에 대해 “본인 성격과 정말 맞지 않는다”며 “왜 이 길을 선택했냐. 정말 힘들 것이다”고 했다. 앞서 ‘연애 상대방과 결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던 기자에게는 “그와 결혼하면 절대 안 된다. 평생 고생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기자들이 만난 무당들은 질문을 할 때마다 오방기를 섞은 뒤 2개를 뽑아보라고 하거나, 타로카드 수십장을 펼친 채 2~3장을 선택하라고 했다. 선택을 마치면 뽑힌 깃발이나 카드가 어떤 의미인지는 설명해주지 않고 점사를 이어갔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방울을 흔드는 무당도 있었다. 아기동자를 모시는 무당은 어린아이 목소리로 말했고, 할머니·할아버지 조상신을 모시는 무당은 어르신들 말투로 말했다.
동일한 인물이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왜 점사 결과는 달랐던 걸까. 신내림을 받아 신점을 보는 무당들과 무속 신앙을 연구하는 교수 등 전문가들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공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무당 재량”
무당과 전문가들은 무당마다 점사 결과가 다른 이유에 대해 여러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신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인간인 무당마다 다르기 때문에 점사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신점은 일반적인 ‘사주풀이’와는 다르다. 사주풀이는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주역(周易)’에서 파생된 ‘명리학(命理學)’을 바탕으로 한다. 태어난 연·월·일·시의 ‘사주’와 사주마다 각 두 자씩인 ‘팔자’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다. 동일한 사주를 가지고 있다면, 미래 예측도 비슷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사주풀이는 무당이 아니더라도 관련 공부만 한다면 가능하다.

반면 신점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만 볼 수 있다. 신의 말을 점을 보러 온 손님에게 대신 전달하는 방식으로 점사가 이뤄진다. 신이 무당에게 말을 전하는 것을 ‘공수’라 하는데, 무당마다 공수를 해석하는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어 점사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현재 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모씨는 “공수는 구체적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며 “곧바로 ‘죽는다’ 혹은 ‘산다’ 이런 식으로만 온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왜 죽고 왜 사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인간인 무당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어 “죽는다는 게 정말로 목숨이 끊어지는 걸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며 “예컨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죽는다’는 의미를 시험에 떨어진다는 것으로 해석해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양종승 샤머니즘 박물관 관장은 신점을 영어 번역에 빗대어 설명했다. 똑같은 영어 문장을 두고도 번역가마다 다르게 해석하듯, 똑같은 공수를 받아도 무당마다 다르게 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관장은 “무당은 신의 메시지를 받고, 자기가 학습한 신력을 토대로 그 메시지를 해석하는 것”이라며 “무당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학습능력, 영험력, 신과의 소통 정도 등이 달라 점사 결과도 다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의 메시지는 똑같은데, 무당이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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