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 환경? 경제? 아니면 안보 문제? (상)
"석탄 줄이고, 재생에너지 늘리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전환
바이든 행정부 에너지 기후 정책 설계
존 번 델라웨어 대학 바이든스쿨 석좌교수 단독 인터뷰
휘청이는 글로벌 정세 속 흔들리는 에너지
공급은 불안, 가격은 급등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 OECD 최하위권
LNG만 리스크? 우라늄도 리스크!
우리나라의 우라늄 최대 수입국, 러시아
러시아산·중국산 비중 34% 달해
대선 과정에서 새로운 부처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이행에 있어 부처 간 흩어진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죠. 한 대선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고, 국회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기후변화라고 했을 땐 '환경 문제' 같다가도,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전환이라고 했을 땐 '경제와 산업의 문제' 같기도 합니다. '기후에너지부'라는 꽤나 구체적인 부처 이름까지 거론됐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을 겁니다.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만, 점차 '온실가스 40% 감축'을 달성해야 할 2030년과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할 2050년에 가까워질수록 이 문제는 더욱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결론은 크게 둘로 나뉘겠죠. 각 부처가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거나, 불협화음으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에너지전환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킨 큐브와도 같습니다. 이번 주 [박상욱의 기후 1.5]에선 에너지전환의 여러 이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하여 유럽의 에너지 안보는 심각한 위기를 직면했습니다. 유럽을 향하던 러시아의 에너지원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겁니다. 특히,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통제로 심각한 피해를 볼 처지에 놓인 독일은 아예 '조속한 재생에너지 100%'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선언이나 정부의 계획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80%, 2035년 재생에너지 비중 100%' 내용이 담긴 법안 패키지를 발표한 겁니다.
이런 가운데, 개별 국가를 넘어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바로 EU의 에너지 안보 계획 'RePowerEU'입니다. 유럽위원회는 이날,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끝내겠다며 여러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비중을 높이고, 재생가능 수소 프로젝트에 2억 유로를 투입한다는 것이 EU의 계획입니다. 또한, 2030년 재생가능 수소 1천만톤을 직접 생산하고, 나머지 1천만톤을 수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LNG 공급원의 다변화라는, 지극히 즉각적이고도 1차원적인 대책부터 글로벌 녹색전환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대외 에너지전략 수립이라는 장기적인 대책까지 모두 담겼습니다.
#에너지_빈국에서_에너지_위험국가로
이미 다른 나라나 지역보다 발 빠르게 재생에너지 확산에 나섰고, 북해에선 여전히 많은 양의 화석연료가 남아있는 EU마저 에너지 안보의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에너지 안보 취약 국가로 손꼽힙니다. 미국 상공회의소 글로벌 에너지 연구원이 2018년 전 세계 에너지 소비 상위 75개국을 상대로 매긴 '에너지 안보 리스크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453점으로 가장 위험도가 높은 나라로 분류됐습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의 점수는 미국(727점)의 2배에 달합니다.

또 다른 에너지 안보 평가에서도 한국은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습니다. WEC(세계에너지총회)는 해마다 각국의 에너지 안보, 에너지 형평성,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해 '에너지 트릴레마 인덱스'를 발표합니다. 연재 초기, 2019년 에너지 트릴레마 인덱스를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종합 점수 71.7점으로 세계 37위를 기록했었죠. OECD 회원국 중 31위로 최하위권이었습니다. 각 평가 항목별로는 에너지 안보 69위, 에너지 형평성 16위, 환경적 지속가능성 80위에 그쳤고요.

#숫자로_확인한_리스크
도대체 얼마나 취약하기에 모든 평가마다 최하위권에 머물렀을까. 각종 데이터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의 2021년 12월 기준 1차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4%에 달했습니다. 각종 통계의 기준 시점을 맞추기 위해 2020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92.9%로 상당히 높습니다. 거의 모든 에너지를 수입에 기대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을 따르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일 겁니다.
과연 달걀을 나눠 담았을지, 주요 에너지원별 수입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원유의 경우, 중동에 대한 의존도가 69%에 달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뿐 아니라 제철소 등 산업 분야에서도 쓰임이 많은 유연탄의 경우, 전체 수입량의 37%를 호주 한 나라로부터 들여왔습니다. 새 정부 들어 발전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원전의 연료, 우라늄은 어떨까요. 원자력발전뿐 아니라 우라늄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정치적, 외교적 이유로 미국 등 북미에서 수입할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리스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에너지원의 90%가 남중국해 항로를 거쳐 들어옵니다. 항행의 자유(미국)냐, 핵심 이익(중국)이냐. G2를 비롯해 인근 아세안 국가들까지 복잡하고 첨예한 갈등에 휩싸인 바다가 우리나라 에너지의 관문인 셈이죠.
#점점_깊어가는_리스크_복잡해지는_해결책
원전의 발전량을 늘리든, 원자로의 수를 늘리든 우라늄의 수요가 커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이제 탄소중립의 문제, 에너지전환의 문제, '탈원전 대 친원전'의 갈등으로만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죠. 국가 간 복잡한 외교관계가 뒤얽힌 고차방정식이 되는 순간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해 SMR 연구 등 원자력과 관련해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협력은 기술 개발 차원을 넘어 동맹 차원으로 진행되는 것이죠. 일각에선 미국과의 이러한 협력을 통해 '탈 탈원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라늄의 대러·중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당장 원전 발전량을 늘리거나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신기술 개발'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기후 정책을 설계한 존 번 델라웨어 대학 바이든스쿨 석좌교수는 JTBC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대해 “ 미국은 금세기 들어 중국이 다른 나라들에 미치는 영향과 역할에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의 우려를 덧붙였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지금의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우라늄의 주요 공급원이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문제 말입니다. 유럽은 이미 천연가스 전쟁을 치르고 있죠. 한국은 과거 석유파동 당시에도 이런 리스크를 경험했고요. 특정 자원을 다른 나라나 지역에 의존하는데, 그 나라에 안보 위협이 발생한다면 어려움을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수입원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부터의 수입량을 늘리는 것은 가능할까요. 2020년 기준, 미국의 원전 발전량은 789.9TWh로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입니다. 2위 중국(344.7TWh)의 배에 달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을 설계한 번 교수는 그 이유와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미국에서 원전의 입지는 그리 좋지 못 한 상황입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크고 작은 사고로 원전 운영과 폐기물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에 신규 원전을 유치하는 일이 어려워졌죠. 그렇다 보니, 원전을 새로 지으려면 지역사회와 상당히 떨어져있는 장소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공용지를 활용하는 것은 좋은 옵션이 못 됩니다. 여러 공공용지 정책들로 규제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우라늄은 대부분 원주민 보호구역에 매장되어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우라늄 채굴 등의 작업을 하게 되면, 해당 지역과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이 역시 원전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좋은 선택지 자체가 없는 상황인데, 또 다른 문제는 원전의 재정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겁니다. 원전의 재무 수익률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죠. 현재 미국에선 전력 수요의 증가세가 둔화한 상태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 효율이 개선된 덕분입니다.
그러면서 전력 수요 곡선은 거의 수평한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원전과 같은 대규모 발전소는 수익을 내려면 수요의 증대를 필요로 합니다. 결국 S&P와 같은 평가기관들도 원전에 대한 우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전과 같은 대형 발전소를 지으려면 대규모 자본을 조달해야 하는데, 과연 사업자가 채무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을 거둘 수 있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죠.
반면 재생에너지의 경우, 주정부와 지역사회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38개주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35년까지 평균 40% 정도로 확대하는 것을 추진 중입니다. 최근엔 20개 주가 '100% 재생에너지' 목표를 내세웠고요. 이러한 변화는 불과 최근 1~2년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관심이 더 커지고,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원전의 부지를 찾는 일도, 우라늄을 캐내는 일도, 새로 원전을 짓고서 돈을 버는 일도 쉽지 않은 반면, 재생에너지의 경우 단가 하락과 적극적인 호응이 따라오면서 자연스레 재생에너지 중심으로의 에너지전환이 자리잡을 수 있던 겁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산 우라늄의 수입을 늘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시,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 우라늄의 해외 의존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미국은 한국이 에너지 자립을 향한, 보다 더 안전한 길을 택하길 바랄 것”이라는 게 번 교수의 설명입니다. '더 안전한 길'이라는 것이 재생에너지를 의미하는 것인지 되물었습니다. 그는 “정확하다”면서도 “그 외에도 한국이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다른 것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너지의 자립도를 높임과 동시에 한국이 강점을 지닌 ICT와 데이터 사이언스 등을 활용해 건물을 넘어 지역사회 차원의 에너지 효율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가격_그_자체도_문제
에너지전환 측면에서, 그리고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가격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모든 것이 비싸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중간의 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리스크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죠.
우리나라 입장에서 향후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두 가지 에너지원의 가격을 살펴봤습니다. 우라늄과 LNG 모두, 최근 5년간 가격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아무리 국가 차원에서 장기계약을 통해 에너지원을 수입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추세의 영향을 피하긴 어렵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도 가격 상승세는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원전의 발전단가가 저렴할 수 있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관세입니다. LNG도, 우라늄도 모두 수입산이지만 LNG에 붙는 3%(동절기 2%)의 관세가 우라늄엔 붙지 않습니다. 무관세로 수입되는 것이죠. 세제를 이용한 가격 조정엔 언제나 리스크가 있습니다. 최근의 유가를 보더라도 알 수 있죠. 국내 주유소에서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이 역전한 상황 말입니다. 정부가 관세나 각종 세제를 통해 자의적으로 국내 가격을 통제한 상황에서 에너지원 자체의 가격이 요동치면. 그 요동이 국내에서의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커지면. 결국 배로 커진 충격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급격하게 요동치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속에서 새 정부가 부디 신중하고도 다학제적인 접근을 통한 에너지전환에 나서기를 바라봅니다.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