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cm의 대배우, 로맨스 뮤지컬 영화에 나섰다

▲ 영화 <시라노> ⓒ 유니버설 픽쳐스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시라노> (Cyrano, 2021)

글 : 양미르 에디터

시인이자 군인인 '시라노'(피터 딘클리지)는 불의에 참지 않는 성격을 지닌 남자다.

작은 키이기 때문에 누군가 '괴물(Freak)'이라고 흉보면, 단번에 결투로 상대를 제압해버리기도 한다.

10여 명에 가까운 자객들도 거뜬히 일당백으로 싸울 힘을 지닌 '시라노'에게도 고민이 있다.

오랜 시간 남매처럼 서로를 위해 왔던 '록산'(헤일리 베넷)에게 사랑하는 고백할 용기가 없어 뒤에서 바라보기만 한 것.

사람들은 혼기가 꽉 찬 고아라고 이야기하지만, '록산'은 돈 많은 남자에게 팔려 가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로맨스를 꿈꾼다. '록산'을 원하는 권력자, '드 기슈'(벤 멘델슨) 공작이 공을 들여도 소용없는 일.

그러던 어느 날, '록산'은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 '크리스티앙'(켈빈 해리슨 주니어)에게 첫눈에 반한다.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의 연대에 근위병으로 새로 합류했는데, 자신 역시도 '록산'에게 한눈에 반해버렸으나,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데 서툴러 고심이 많다.

'록산'이 원하는 재치와 낭만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한 '크리스티앙'은 대신 편지를 써주겠다는 '시라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시라노'의 글을 빌려 '록산'에게 마음을 전한다.

매일 같이 곱씹어왔던 사랑이기에, '크리스티앙'을 가장해 편지의 진심을 담아낼수록 '록산'에 대한 '시라노'의 괴로움은 깊어져만 간다.

<왕좌의 게임> 시리즈는 135cm(132cm로 표기된 곳도 있다)의 배우, 피터 딘클리지를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 됐다.

카리스마 있는 '티리온 라니스터' 역할로 그는 에미상과 미국배우조합상을 휩쓸었지만, 그는 이미 수많은 공연, 영화, 드라마를 통해 할리우드의 보이지 않는 벽을 뚫기 위해 노력했다.

차츰 시대가 변해서인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년)의 역발상 캐릭터 '에이트리'로 등장한 적은 있었으나,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첫 주연 작품이 다가왔으니, 그의 아내 에리카 슈미트가 쓴 동명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바탕으로 한 영화 <시라노>다.

그간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를 원작으로 한 많은 대중 매체 작품들은, 잘생긴 배우가 가짜 코 분장을 하고 나온 상황에서, 자신의 코가 섬뜩하다는 걸 설명해오곤 했었다.

장-폴 라프노 감독의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분한 <시라노>(1990년)도 그랬고, 국내에서 두 차례 공연됐던 프랭크 와일드혼 작곡의 뮤지컬도 그러했다.

'시라노'는 큰 코를 달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이 트라우마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고백도 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묘사됐다.

만약 고백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외면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이 작품의 주된 테마였기 때문.

그간 <오만과 편견>(2006년), <안나 카레니나>(2013년) 등 유명 작품을 영화화한 조 라이트 감독도 고전 희곡을 그대로 각색하기보다는, 현대적 해석 혹은 연출 방법(<안나 카레니나>의 경우는 연극식 구성을 위해, 수많은 세트를 연결해냈다)으로 보여주길 원했기에, 에리카 슈미트가 각색한 <시라노>는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역시 '시라노'의 '큰 코'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있었으나, 피터 딘클리지가 출연한 뮤지컬 자료를 보며 그 생각을 거둘 수 있었다.

오히려, 피터 딘클리지는 이 작품의 메시지를 달리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는 "<시라노>에 녹인 손편지들은 요즘 시대의 문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라면서, "SNS, 데이팅 앱에서 프로필을 보고, 실제로 만나고, 실망하곤 한다. <시라노>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고, 사랑은 영원한 난제"라면서 오늘날과 현재를 잇는 <시라노>의 접점을 밝혔다.

이는 '록산'에 대한 해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록산'은 독립적인 개인에 대한 노래로 자신의 서사를 풀어간다.

그저 결혼을 하고 싶은 여성이자, 자신을 찬양하는 예쁜 편지를 받고 싶어 하는 여성도 아닌 인물로 묘사된다.

단연, <시라노>는 피터 딘클리지를 위한 독무대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촬영 구도는 피터 딘클리지의 작은 키를 위해 보완해주는 형태로 이뤄졌는데, 이 구도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확장할 수도 있겠다.

특히 1대 다수로 싸우는 장면에선 최대한 롱테이크로 연출, 피터 딘클리지가 직접 칼을 휘두르거나, 액션 동작을 취하는 걸 관객이 온전하게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피터 딘클리지는 이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첫 후보 도전에 나섰고, 현지 예측 사이트인 '골드 더비'에서도 유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아쉽게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다만, '라이브 레코딩'으로 이뤄진 뮤지컬 구성에 대해선 호불호가 짙게 깔릴 수 있다.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나오는 한계는 있겠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분위기를 깨기도 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앙'의 일부 노래는 R&B 창법으로 흘러나와 작품의 전체 톤과 매너가 어긋나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클라이맥스의 장면에서 두 주인공의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을 오히려 노래가 망가뜨린 느낌도 받아 아쉬움을 줬다.

대사의 이어짐 속에서 갑자기 나오는 노래에 어색함을 평소에 많이 느끼는 관객이 본다면, 실망스러운 선택이 될지도 모르겠다.

2022/02/23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

시라노
감독
조 라이트
출연
피터 딘클리지, 헤일리 베넷, 켈빈 해리슨 주니어, 벤 멘델존, 바쉬르 살라후딘
평점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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