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FC-BGA 특집: 반도체 기판 리그 '현폼원탑' <1편>

강해령 기자 2022. 6. 2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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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BGA. 요즘 가장 인기 많은 반도체용 기판입니다. 사진제공=토판
[서울경제]

IT 시장에 관심이 많으신 독자 여러분. 최근에 'FC-BGA'라는 부품에 대한 기사 많이 보시지 않았나요?

이 부품 말이죠. IT 업계에서 정말 대세입니다. 삼성전기(009150)가 2조원 가까운 돈을 FC-BGA 라인에 쏟아붓기로 했고, LG이노텍(011070)은 이 제품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4000억원을 쓰기로 하는 등 국내 주요 부품 기업들의 투자가 잇따르고 있고요. 관련 회사들의 매출도 고공 행진을 기록 중입니다. 업계에서는 FC-BGA가 없어서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길래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요?

FC-BGA는 한마디로 성능이 끝내주는, '현재 폼 원탑(현폼원탑)' 초고성능 반도체 기판인데요. 이번 편에서는 FC-BGA 속 숨겨진 ‘하이엔드 테크’를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분량이 길어 총 2편으로 나눠 준비했습니다. 우선 반도체 기판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면서 최대한 알기 쉽게, 천천히 이 부품의 매력을 탐구해봅시다.

◇FC-BGA는 어떻게 대세가 되었나

만약 반도체용 기판이 사람이 돼서 MBTI 검사를 한다면 'INFP' 타입이 나올 것 같습니다. IT 기기 내에서 그의 역할은 '열정적인 중재자'거든요.

기판은 반도체와 전자 기기 내 메인보드 사이에 장착돼 이들을 중재합니다. 어떻게 중재를 한다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노트북 내부에는 메인보드가 있고, 핵심 칩은 FC-BGA 기판과 연결돼 있습니다. 사진 출처: 삼성전자, 앰코

반도체 칩에 속에는 각종 전기 신호가 왕래할 수 있는 수천~수만 개 도로(I/O, a.k.a. 인풋/아웃풋)가 있습니다. 수만 개 도로를 하나하나 메인보드에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일일이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낭비'입니다. 어느 세월에, 무슨 돈으로 회로들과 메인 보드를 한땀 한땀 연결하고 있느냐는 거죠.

사진= 앰코테크놀러지, 인피니언

그래서 나타난 중재자가 바로 기판입니다.

중요한 데이터가 오가는 도로 수는 동일하게 가져가더라도, 칩 동작을 위한 전력(파워) 공급선 만큼은 기판에서 더 널찍하게 만들어 메인 보드와 연결할 수 있다는 컨셉입니다.

이 파워 얘기는요. '고층 빌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빌딩 각 층에는 화장실이 있죠. 그런데 모든 세면대 파이프가 한국수자원공사 정수장과 연결돼 있지는 않잖아요? 정수장과 연결된 빌딩 지하의 거대한 파이프가 기판 속 배선이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이외에도 기판은 많은 일을 합니다. 칩이 너무 열심히 달려서 온도가 너무 올라갔을 때 진정하라며 열을 식혀주는 역할도 합니다. 각종 오염과 불량한 신호를 보호해주는 든든한 임무도 맡죠.

기판의 역할을 대략 이해했으니 이제 오늘의 주인공 FC-BGA 얘기를 해볼까요.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lip Chip-Ball Grid Array)라는 기판. 어려워 보이지만 풀어보면 쉽습니다.

먼저 플립칩부터 봅시다. '플립'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홱 뒤집다'라는 뜻이 나옵니다. 그럼 '볼 그리드 어레이'를 직역해 볼까요. '공 격자무늬 배열'이네요.

다시 한 걸음 더 들어가보겠습니다. 여기서 홱 뒤집힌 것은 '칩', 기판 위에 얹는 반도체를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반도체를 그려보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그리실 건가요. 많은 분들이 우물 정(井) 모양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각형 칩을 그린 뒤, 칩 속 I/O와 기판을 연결하는 배선(리드 프레임)을 표현한 거죠.

그런데 FC-BGA에 얹히는 칩은 조금 다릅니다.

플립칩 컨셉. 선에서 면으로 진화하면서 우측 하단 그림처럼 부피와 두께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성능과 생산성 개선은 물론이죠. 사진=삼성전기, 인피니언

①기존에 칩 가장자리에 있던 선들을 '볼', 즉 공 모양(솔더 볼·범프)으로 바꿨습니다.

②각 볼을 선이 연결돼 있던 단면에 격자 무늬로 배열합니다.

③이제 허공을 바라보던 볼 단면을 '홱' 뒤집습니다. 반도체와 기판이 이 솔더볼로 연결되었네요.

선들을 볼 모양으로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칩의 I/O 수 증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데이터 폭증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노트북 PC, 데이터센터의 서버 기기들은 SNS, 비대면 회의, 동영상 서비스 등에서 나오는 수많은 고용량 데이터를 처리합니다. 당연히 전기신호가 드나드는 I/O 수가 훨씬 많아지고 갈수록 회로 구조가 복잡해지겠죠.

자연스럽게 반도체 I/O와 기판을 연결하는 배선이 너무 많아져 골치가 썩기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방에 있는 멀티탭에 온갖 전선을 꽂아놓으면 지저분하고 공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딱 그 상황인거죠.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배선을 칩 단면에 반구(半球) 모양의 범프로 바꿔 밭에 작물 심듯 배열하는 방법을 택한 겁니다.

이렇게 하면 장점은 참 많습니다. 선은 1차원(D), 면은 2D죠. 단면에 범프를 압도적인 수로 장착할 수 있고요. 선 길이를 늘려 연결할 때보다 기판 크기가 줄어드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자연스럽게 생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또 기판과 칩을 배선으로 연결하다보면 선을 칩에 붙이는 과정에서 붕 뜨는 현상이 발생하는데요. 솔더 볼을 활용하면 두 부품을 밀착시킬 수 있어 두께가 줄어듭니다.

사진·자료 출처: 유니마이크론

우리는 한 가지를 더 봐야 합니다. 플립칩 기반 기판도 종류가 나뉩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FC-BGA와 FC-CSP(칩 사이즈 패키지)를 구분해야 하는데요.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용도와 성능, ‘크기’입니다.

FC-CSP는 용어 그대로 기판 크기가 칩 크기와 유사하다는 게 특징입니다. 따라서 CSP는 성능도 중요하지만 최우선 과제가 '경박단소'입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연결하는 데 주로 쓰입니다.

반면에 FC-BGA는 서버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신경망처리장치(N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사양 칩용으로 쓰입니다. 아무래도 서버, 슈퍼 컴퓨터 등에서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고사양 칩은 I/O 수가 모바일용 칩보다 수 배는 많겠죠.

FC-BGA는 이 I/O를 감당해야 하기에 CSP보다 면적과 두께가 상당히 넓고 두껍습니다. 범프 개수는 물론이고 기판 내 회로가 훨씬 많고 복잡하고요. 성능도 상대적으로 훨씬 좋습니다. '경박단소'보다는 고사양 칩을 안정적으로 잘 지원할 수 있는지가 FC-BGA 핵심 포인트입니다. 최근 데이터센터, AI 등 고사양 칩을 원하는 시장이 최대 기판 수요처로 떠오르자, 물만난 FC-BGA도 ‘현폼원탑’으로서 큰 인기를 얻게 된거죠.

마지막으로 FC-BGA 그려보기. 반도체 칩, 그 아래 놓인 범프, 기판, 배선 등이 핵심이죠. 기판 구조와 제조과정은 다음 편에서 자세하게 다뤄볼 예정입니다. 출처: 구글

대략적인 FC-BGA 기판의 컨셉을 살펴봤는데요. 이제 만약 누군가가 독자 여러분께 반도체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이제는 네모난 칩을 그리고 그 아래 몽글몽글 모인 반구(半球)들을 표현해보는 건 어떨까요. “좀 힙한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이어지는 2탄에서는 FC-BGA 내부 구조와 제조 과정, 국내 고성능 기판 생태계를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삼성전기, LG이노텍, 기판 소재 업계의 '현폼원탑' 아지노모토가 등장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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