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했던 2020년 수해 그 후, 국가는 대체 뭘 했나

산불과 홍수는 이제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2020년 여름 전남 구례 등 17개 지자체를 삼켜버린 홍수와 올봄 동해안 산불은 모두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혔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예측 불허의 재해가 언제 어떤 규모로 우리 일상을 무너뜨릴지 알 수 없다.
불행한 일이지만,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홍수나 산불 피해를 당했다고 가정해보자.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집과 가재도구는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급한 대로 공설체육관 등에 임시 거주시설이 마련되고, 여기저기서 구호품이 답지한다.
대통령은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다. 언론으로부터도 뜨거운 조명을 받았다. 재해 원인에 대한 조사협의회가 꾸려지고, 피해 주민을 대상으로 손해사정 평가도 이루어졌다. 모든 게 잘 해결될 줄 알았다.
2020년 여름 수해 이후 1년8개월이 지난 3월22일 환경부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2020년 수해 갈등, 환경분쟁조정으로 해결’이라는 제목이었다. ‘수해 배상책임을 둘러싼 갈등은 해소 국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라고 환경부는 밝혔다. 자, 환경부 발표대로 당시 수해 참사는 이제 완전히 해결된 것일까. 공식 보도자료에도 언급될 만큼 적잖은 ‘갈등’이 있었던 모양인데, 이는 어떻게 ‘해소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 것일까. 시계를 2020년 8월로 돌려보자.
8월8월은 구례읍 장날이었다. 손님맞이 준비로 아침부터 분주하던 장터를 덮친 건 파도 같은 강물이었다. 구례읍 시가지 전체가 물에 잠겼다. ‘침수’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읍내 오일장 장터에는 어른 키보다 높은 물이 들이닥쳤다. 구례에서만 이재민 1149명이 발생했고, 주택 711동, 상가 597동, 시설하우스 509동, 축사 49동이 훼손되거나 아예 못쓰게 됐다. 소 785두, 돼지 1900두 등 가축 피해만 해도 2만2824두에 달했다. 구례군이 공식 집계한 재산 피해액은 1807억원에 달했다.
수해는 전남 구례를 비롯해 전북 남원, 경남 하동, 충남 금산, 충북 영동 등 5개도 17개 시군에서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피해를 당한 이들이 8000가구가 넘고, 전체 피해액은 38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구례가 이재민 수나 피해 규모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2020년 수해 원인을 설명할 때, 두 가지 대립하는 키워드가 있다. 먼저 집중호우다. 유례를 찾기 힘든 긴 장마(수도권의 경우 54일)가 이어졌다. 장마철 강수량도 관측 이래 역대 2위를 기록할 만큼 많았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댐이다. 피해 지역 17개 시군마다 댐이 등장한다. 섬진강댐, 합천댐, 남강댐, 용담댐, 대청댐 등 5개 댐이다.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섬진강댐의 경우 구례, 순천, 광양, 곡성, 남원, 임실, 순창, 하동 등 8개 지자체와 얽혀 있다. 전체 피해 시군의 절반에 달한다. 집중호우와 댐, 이 두 가지 키워드가 당시 수해 원인뿐 아니라 이후 피해 복구 문제를 설명한다. 이 문제는 뒤쪽에서 짚어보자.

■ 특별할 것 없는 특별재난지역
‘NDMS’라는 게 있다.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ational Disaster Manage-ment System)의 약자다. 당신이 자연재해를 입었다면 이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한다. 피해 발생 열흘 안에 이 시스템에 접속해야 피해 내역을 신고할 수 있다. 2020년 수해처럼 심각한 피해가 났을 경우에는 현장에서 작성되기도 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규정에 따라 행정기관의 확인 조사 후 재난지수가 결정된다. 재난지수가 높을수록 더 많은 금액을 지원받는다.
2020년 수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구례군을 보자. 재난지수 300 이상으로 피해가 심각했던 1473세대에 총 63억9000만원이 지급됐다. 한 세대당 평균 433만원이 지급된 셈이다. 재난지수 300 미만으로 피해가 덜한 72세대에게는 한 세대당 14만9000원이 지급됐다. 대통령이 특별재난지역까지 선포했는데 설마 이게 전부일까.
더 있기는 하다. 특별재난지역이 되면 주택 침수 200만원, 반파 800만원, 전파 1600만원이 지급된다. 집에 물이 차면 200만원, 집이 완전히 부서지면 1600만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철거 비용을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소액의 생계지원비, 건강보험료, 상하수도요금 감면 또는 유예 등 자잘한 ‘간접’ 지원이 있다. 이것이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민간이 받는 정부 지원의 사실상 전부다. 올해 사상 최악의 산불로 특별재난지역이 된 동해안 지역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특별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쪽은 따로 있다. 공공부문이다. 구례군 공공시설 총 피해액이 346억원인데, 복구 금액은 3360억원이 책정됐다. 피해액의 열 배 가까운 액수다. 민간시설 피해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공시설의 복구와 민간시설의 복구는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간시설의 경우 당장 입은 손실에 준하는 만큼 지급되지만, 공공시설의 경우 앞으로 위험 가능성까지 고려한다. 예컨대 홍수로 하천제방이 10m 유실됐다고 치자. 피해액은 제방 10m만큼이지만, 복구 예산은 제방 전체를 원래보다 훨씬 높이는 쪽으로 잡힌다. 그 결과 구례군의 하천 피해액은 34억원이지만, 복구 예산은 무려 1118억원이다. 공공시설 복구 예산의 대부분은 토목 및 건설사업이다. 지자체로서는 예산을 많이 따왔다는 자랑거리가 된다. 재해 때마다 각 지자체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목을 매는 이유다. 구례군청 관계자조차 “(공공에 비해) 민간 지원이 너무 부족한 게 사실이다”라고 토로할 지경이다.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피해 주민에게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정부나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든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환경분쟁조정 제도다. 대기 및 수질오염, 소음·진동, 일조 방해 등으로 불거진 분쟁에서 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조정 결정을 내려주는 제도다. 층간소음부터 지하철 공사 진동, 먼지 피해까지 조정 대상이 된다.
환경부 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이 제도의 장점으로 “적은 비용으로 피해 사실 입증을 대신 해주고, 절차도 간단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도움 없이도 조정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 수해 원인, 그리고 수자원공사
그런데 환경분쟁조정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홍수 피해는 뜻밖에도 분쟁조정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환경분쟁조정법은 ‘사업활동, 그 밖에 사람의 활동’에 의해 발생한 환경 피해로 분쟁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산불 역시 조정의 대상이 아니다. 결국 2021년 3월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나서야 홍수(‘하천 수위의 변화’)가 조정 대상으로 들어왔다. 수해 발생 7개월 만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피해 주민들은 분쟁조정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몰랐다.
환경분쟁조정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피해 원인 조사가 필요했다. 물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 조명래 장관은 홍수 피해 일주일 만인 8월16일 현장을 찾아 “수해 원인 진단과 함께 책임 규명도 확실하게 하겠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수해 직후만 해도 원인 진단과 책임 규명을 확실히 하겠다는 장관의 말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수해 원인 조사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환경부는 2020년 9월 피해 주민을 배제한 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피해 주민의 반발이 잇따르자 진통 끝에 그해 12월에야 주민대표를 포함한 ‘댐 하류 수해 원인 조사협의회’를 가동시켰다. 수해 이후 4개월을 허비한 뒤에야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 쟁점은 앞서 말한 두 가지 키워드였다. 수해의 원인이 자연재해인가, 아니면 댐 관리 부실로 인한 인재(人災)인가. 집중호우가 수해의 배경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호우 자체를 수해의 원인이라고 짚는 건 다른 문제다. 자연현상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건 피해자 처지에서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다툴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자원공사가 등장한다. 섬진강댐의 관리주체인 수자원공사는 ‘물’로 수익을 내는 공기업이다. 댐에 가둔 물을 지자체 등에 판매해 수익을 창출한다. 현재 가정에서 쓰는 광역수도 요금은 ㎥당 432.8원, 공업용 등에 쓰이는 댐용수 가격은 ㎥당 52.7원이다. 2020년 수자원공사의 매출은 약 3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5600억원이었다.

피해 주민들은 수자원공사가 섬진강댐의 물을 과다 방류한 탓에 하류지역인 곡성, 구례, 하동 등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수자원공사는 홍수가 발생한 8월8일 새벽 급격히 방류량을 늘리면서 댐 관리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댐의 수문을 열어 물을 내보내려면 방류 3시간 전에 관계기관에 통보해 인근 주민이 대비하도록 해야 하는 규정이었다. 수해 당일 오전 6시23분에는 겨우 7분 뒤인 6시30분에 방류량을 초당 1000㎥로 늘리겠다고 통보했다. 7시52분에도 8분 뒤인 8시에 초당 1868㎥까지 방류량을 늘린다고 늑장 통보했다. 사실상 ‘과다+무단’ 방류였다. 2020년 9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구례 수해 현장을 찾아 ‘섬진강댐 무단 방류에 의한 인재’라고 표현했다.
무단+과다 방류는, 거꾸로 보면 그 전에 지나치게 방류를 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댐에 물을 계속 가둬뒀다는 이야기다. 섬진강댐 수위는 수해 발생 8일 전인 7월31일에도 이미 195.66m를 기록했다. 홍수기 제한 수위(196.5m)보다 고작 1m 여유도 없었다. 홍수 전날인 8월7일에는 195.34m, 당일인 8월8일에는 197.42m로 치솟았다. 홍수기 제한수위를 훌쩍 넘기자 새벽부터 방류량을 급히 늘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왼쪽 그림 참조).
2020년 장마는 6월부터 시작됐다. 긴 장마로 인한 댐 수위 상승이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홍수에 대비해 미리 예비방류 계획을 세우고 댐의 물그릇을 키워놓았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수자원공사가 ‘물 욕심’에 빠져 예비방류에 나서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장마철 이후 비가 내리지 않는 갈수기에 안정적으로 물 공급을 하기 위해 홍수기에도 물을 가둬두려다 인재를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환경부는 안정적 용수 공급을 위해 ‘홍수기말 저수량 100억t 확보’를 국가 물관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황은 점점 의심스럽게 흘러갔다. 피해 주민들은 수해가 정부의 물관리 정책과 수자원공사의 댐 관리 실패로 인한 인재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정부와 수자원공사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수해 발생 1주년을 앞둔 2021년 7월26일 드디어 ‘댐 하류 수해 원인 조사협의회’가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조사용역을 맡은 수자원학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이 조사 결과를 수자원공사에 먼저 제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표 전부터 여론이 험악해졌다.
진짜 문제는 발표 내용이었다. 조사협의회는 ‘수해 원인은 복합적이며, 국가(중앙정부·하천관리청·수자원공사 등)가 홍수 피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모호한 결론을 냈다. 수해 원인도, 책임 주체도 뚜렷이 밝히지 못한 조사였다.

김창승 구례군 수해피해주민대책위원회 대표에 따르면 과정 역시 문제가 많았다. 당초 조사협의회의 약속은 용역 수행이 50% 정도 진행되면 중간보고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간보고는 최종 발표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7월2일에야 열렸다. 이 자리에서 복합적인 수해 원인 등 모호한 결론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고, 협의회 측은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종 발표 내용은 위와 같았다. 김창승 대표는 “7개월 동안 조사해놓고 맹탕 결론을 내놨다”라고 말했다. 피해 주민 전체가 분노했지만, 일주일 뒤인 지난해 8월3일 환경부는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이상한 결정
남은 것은 환경분쟁조정 절차에 들어가는 길뿐이었다. 2000명에 달하는 구례 주민 등 5개 댐 지역의 17개 시군 주민 8430명이 총 3763억원의 배상금 지급을 신청했다.
이 또한 전쟁 같았다. 환경분쟁조정을 신청하려면 손해사정 평가 등을 통해 피해 내용을 입증해야 한다. 감가상각은 그렇다 쳐도 문제는 가재도구였다. 아무리 큰 피해를 당해도 손해사정 평가 상한액이 1000만원까지였다. 이에 대한 피해 주민들의 항의로 환경분쟁조정 신청 접수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수해 참사 1주년’을 맞는 시점이었다.
또다시 해가 바뀐 2022년 1월3일. 마침내 환경부 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중조위)의 조정결정서가 도착했다. 주민들은 경악했다. ‘섬진강댐 피해 배상 비율 48%’라는 내용이었다. 구례군 등 섬진강댐 지역 피해 주민이 신청한 피해배상액의 48%만 배상금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피해 배상금 1000만원을 신청한 이에게는 480만원이 지급된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중조위의 내부 기준에 따라 피해배상 신청액에 대해 감액이 이뤄졌다. 결국 실질 배상률은 40%도 안 된다는 것이 주민들 지적이다.
형평성도 큰 논란이었다. 환경분쟁조정을 신청한 5개 댐의 피해액 대비 배상 비율이 모두 달랐다. 합천댐 72%, 용담댐 64% 등 제각각이었다(24쪽 그림 참조). 가장 큰 피해를 본 섬진강댐의 배상 비율이 오히려 48%로 가장 낮았다. 섬진강댐 8개 지자체 피해 주민으로서는 강력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중조위는 왜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조정 결과를 발표했을까. 앞서 말한 3월22일 환경부 보도자료에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당초 5개 댐의 배상 비율은 모두 60~69.3%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감액 요소’가 있었다. 수해 당시 비가 많이 내린 지역은 액수를 깎았다. 그 결과 섬진강댐이 20%, 용담댐이 10% 감액당했다. 자연재해가 심각할수록 배상액을 줄이는 이상한 선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섬진강댐의 홍수 조절 능력이 ‘100년 빈도(100년에 한 번 내리는 큰 비에 견딜 수 있다는 뜻)’로 200년 빈도인 다른 댐에 비해 취약하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수자원공사 등에 대해서는 ‘관리 미흡이 드러났다’고 지적했지만, 그에 따른 명확한 책임 소재는 밝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배상금은 정부, 수자원공사, 지자체가 분담하라고 결정했다. 지역마다 배상금 분담 비율도 다른데 구례군의 경우 환경부 60%, 한국수자원공사 25%, 구례군이 7.5%씩 부담한다.
구례군 피해 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중조위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배상액이 너무 적고 타 지역과 형평성도 맞지 않았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중조위 결정은 거부하는 순간 ‘원천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김봉용 섬진강수해참사 피해자 구례군비상대책위원장은 “억울하고 분노가 일지만 48% 조정 결정에 찬성토록 할 수밖에 없었다. 갈등이 해결됐다는 환경부의 주장은 주민들 가슴에 또 못을 박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또 있다. 홍수관리구역(하천 인근 홍수 피해가 염려되는 곳)에 살고 있는 주민 문제다. 이들은 애당초 위험한 곳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로 아예 조정 대상에서 배제됐다. 홍수관리구역으로 지정되기 한참 전부터 터를 잡고 살던 이들이다. 전체 신청인 8430명 중 697명이다. 지난한 소송 절차를 밟는 길 말고는 이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난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2019년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재난피해 지원제도 현황과 재정소요 분석’에 따르면 2020~2060년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난 피해액의 최대값이 연간 11조원까지 추정된다. 현행 특별재난지역 지원제도 따위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기후위기가 전가의 보도인 것도 아니다. 2020년 수해는 기상이변을 배경으로 벌어진 인재라는 의혹이 무성한 재난이었다. 중조위는 자연재해에 책임을 미루고, 인재 부분은 얼버무렸다. 중조위의 이번 결정이 앞으로 벌어질 무수한 자연재해 분쟁의 ‘해결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까. 중조위는 이번에 ‘흑역사’로 남을 가능성이 큰 선례를 남겼다.
4월11일 구례에서 소식이 들려왔다. 2020년 수해 피해 주민들이 돈을 걷어 울진 산불 피해 주민에게 성금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피해 배상금 수령 절차가 다 끝나지 않은 형편인데도 재난 앞에서 함께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성금을 전달한 김창승 주민대책위 대표는 “수해를 겪고 보니 자연재난을 대하는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미약한지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 스스로 돕는 길밖에 없음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재난 앞에서 작동해야 할 국가의 자리를, 이렇듯 피해자의 자력구제와 연대가 대신하고 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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