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기수·서열 파괴 인사에 항명 2012년 중수부 폐지 두고 내홍 빚어 16개월 전 秋, 檢 총장 직무배제 때도 갈등
김오수 검찰총장이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정부 말기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 움직임에 검찰이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과거 ‘검란’(檢亂)으로 비친 사례들에 관심이 쏠린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그간 조직의 명운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 검찰총장 사의 표명, 고위 간부들 줄사표, 직급별 또는 검찰청별 회의, 성명서 발표 등과 같은 조직적인 집단행동으로 거세게 반발하며 저항해 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집단 이기주의’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왼쪽), 추미애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뉴시스
2020년 11월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하자 검사들이 들고일어난 사태가 가장 최근의 검란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평검사는 물론 고검장들까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실명으로 잇따라 글을 올려 윤 총장에 대한 직무 정지 명령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평검사 회의와 성명서 발표 등도 뒤따랐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님들이 검란을 통해 지키려는 것은 진정 무엇이냐. 없는 죄도 만들고 있는 죄도 덮는 무소불위 권력으로 죄를 덮어 부를 얻고, 죄를 만들어 권력을 얻는 잘못된 특권을 지키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2년 말 한상대 검찰총장의 불명예 퇴진을 부른 사태는 대표적인 검란으로 꼽힌다. 검찰권의 상징과도 같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촉매제가 됐다. 당시 한 총장이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자 전국의 일선 검사들이 잇따라 회의를 열고 총장 퇴진을 요구했다. 최 중수부장이 뇌물 수수 혐의를 받던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게 표면적인 감찰 이유였으나, 그가 한 총장의 중수부 폐지안에 반대한 것이 진짜 이유라는 것이 당시 검찰 안팎의 해석이었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결국 한 총장은 그해 12월 검란에 책임지고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스스로 물러났다. 한 총장은 퇴임사에서 “제게 가장 어려운 싸움은 우리 (내부의) 오만과의 전쟁이었다. 저는 이 전쟁에서 졌다”는 말을 남겼다. 이듬해 후임인 채동욱 검찰총장이 취임하기까지 검찰은 수장 공백 사태를 겪어야 했다. 대검 중수부도 같은 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 간 대화 전후로 불거진 일련의 사태도 검란으로 꼽힌다.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11기 아래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 임명이 시발점이 됐다. 검사들은 기수·서열 파괴 인사에 집단 반발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 권위는 스스로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자 김 총장은 사표를 던졌다. 그 뒤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도 공직자인 검사가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집단 항명하는 것처럼 비치는 처사는 온당치 않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