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표지판 사라지고 외국 교과서도 금지..중국, 민족주의 물결에 '문화적 탈세계화'?

김혜리 기자 2022. 2. 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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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톈진 빈하이 국제공항’ 지하철역명이 중국어 병음을 그대로 적은 ‘빈하이궈지지창’으로 바뀌었다. | 웨이보 캡쳐


베이징 기차역은 베이징잔(Beijing Zhan), 톈진 빈하이 국제공항은 빈하이궈지지창(Binhai Guoji Jichang).

중국에서 영어 표지판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중국 지하철 역무원들은 지난 두 달 동안 영어로 표기된 역명과 노선도를 철거했다. 영어 표기 대신 중국어 병음을 알파벳으로 적은 역명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한국을 가정한다면 ‘Seoul Station’이라 표기된 서울역 표지판을 드러내고 그 자리에 ‘Seoul-yeok’이란 표지판을 대신 내건 셈이다.

외국 교과서들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20년 초·중학교에서 외국 교과서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안을 발표했다. 중국 밖에 있는 외국인 교사들이 온라인 영어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금지됐으며, 국제 커리큘럼이 있는 학교들에 대한 감시는 강화됐다.

SCMP는 이를 두고 중국이 서방에 등을 돌리는 ‘문화적 탈세계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까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전 세계에 선보이기 직전에 이러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비평가들은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개최했을 때의 우호적인 분위기와는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세계화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는 꾸준히 보여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월17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에게 “냉전 시대의 정신”을 버릴 것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고립과 배타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며 “다른 이들을 고립시키고, 위협하고, 분열시키려는 시도는 세계를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넣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중국 내에서는 민족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발호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서방 세력과의 관계는 반목과 대립으로 치달으면서다. 지난 2018년 7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악화된 미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기술, 군사, 이데올로기, 코로나19의 기원 등을 두고 서방 강대국들과 계속 충돌을 빚은 것도 국내에서 민족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지난해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91%로, 지난 10년 동안 실시한 설문 결과 중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폐쇄적인 코로나19 방역수칙도 민족주의 배양에 기여했다. 조지 매그너스 옥스퍼드대 중국학 센터 연구원은 “제로(0) 코로나 정책으로 강도 높은 폐쇄조치가 이뤄지면서 중국 내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이들의 공포와 피해망상은 커져가고 있다”고 SCMP에 말했다. 옌쉐퉁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도 중국 청년들이 인터넷으로 접한 음모론에 영향을 받아 “중국만이 정의롭고 결백하며, 서방 국가들은 사악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자연스러운 증오를 품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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