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원도 의사입니다] '도계의 등불' 사명 32년간 한 자리.."힘 닿는 한 진료 계속"
아픈 아버지 보며 의사 꿈꿔
1990년부터 도계 병원 운영
"돈 있건 없건 치료 최우선"
오지마을 의료봉사 활동도
"의료취약지 의사역할 중요"
한 순간도 병원 비운 적 없어
"한센인 돌보다 생명 다한
다미안 사제처럼 끝까지 봉사"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인 삼척 도계읍은 과거 석탄산업이 호황기였던 1980년대만 해도 인구가 4만~5만명에 달할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당시 삼척시 전체 인구가 13만~14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3분의 1 정도가 도계읍에 거주했다. 하지만 국내 석탄산업 특성상 산간오지에 광산들이 집중해 있는 탓에 주변 도시와 연결되는 도로 등 교통망이 열악한데다 폭설이나 폭우가 쏟아지면 꼼짝없이 갇히기 일쑤였다. 지금은 30~40분이면 갈 수 있는 삼척시내와 태백시내도 당시에는 1~2시간은 족히 걸리고, 그 마저도 자가용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버스나 철도를 이용해야 했다. 이처럼 교통편과 도로가 불편하면 생활도 덩달아 불편해지지만, 무엇보다 응급 의료상황이 발생했을 때 발 빠른 대처가 문제가 된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 의료상황에서 얼마나 빨리 최초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가 사람의 생명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도계에서 30년 넘게 의사로 활동중인 김홍(68) 고려의원 원장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본격화 된 1990년 도계에 병원 문을 연 김 원장은 “당시만 해도 탄광 사고는 물론, 뱀과 벌에 물리거나 출산을 앞둔 만삭 산모 등 한시가 급한 환자들을 응급 치료하고 아이까지 직접 받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2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의대에 진학하고 33세에 의사 면허를 취득한 김 원장은 1987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응급실 의사로 근무하다가 이듬해 태백성심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직접 병원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에 1989년 정선 나전에 의원을 개업했지만 인근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폐업하고 곧바로 도계에 자리를 잡았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32년동안 도계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김 원장이 갖고 있는 신념은 ‘병원 문턱을 넘은 사람은 돈이 있건 없건 치료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입원·치료비가 없어 애를 태우는 환자들을 보면 그냥 내보내는 경우가 적지않아 빠듯한 병원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사무장과의 가벼운 언쟁도 예삿일이다. 지금은 다소 힘에 부쳐 자주 못하지만 주변 오지 마을에 대한 의료봉사활동은 빼놓을 수 없는 김 원장의 주요 일과 가운데 하나이다.

김 원장 덕분에 목숨을 건진 환자는 물론, 크고 작은 병을 진단·치료하며 쌓인 주민과의 정은 매 계절마다 양손 가득 성의로 이어졌다. 주변 광산이 대부분 문을 닫고 이제 단 2곳만 남은 탓에 사람들도 많이 떠나가 지금은 예전의 4분의1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30년 넘게 쌓인 동네 병원과의 끈끈한 정은 여전하다. 병원을 오가는 주민들은 지금도 사시사철 갓 수확한 고로쇠 수액에서 부터, 토종 벌꿀, 두릅, 대추, 떡, 송이 등을 가져와 그동안의 고마움에 감사를 전하고 있다.
김 원장은 “도계처럼 의료여건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의사들의 역할이 그 어떤 지역보다도 중요하고 필요하다”며 “조금 부끄러운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도계의 등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의료활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김 원장은 의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병원을 비운 적이 없다. 거의 매일 의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느라 그 흔한 골프와 낚시 등은 아예 할 줄 모른다. 다만 앉아서 환자를 기다려야 하는 직업 특성상 앉아서 하는 취미인 바둑은 수준급이다.
전남 해남 출신인 김 원장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목포로 갔다. 목포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중학교를 진학했지만 또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서울로 학교를 옮겨 그 곳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힘겹게 회복은 하셨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단에 서는 것을 보면서 의사의 꿈을 키웠다. 다만, 학창시절 공부가 조금 모자른데다 동네 교회를 다니면서 쌓은 신앙심을 믿고 대학은 신학대로 진학했다.(지금은 가톨릭 신자이다.) 그러다 포병부대로 군입대를 했고 나름 짬밥(?)이 쌓인 상병 시절, 어린시절 꿈이었던 의사의 꿈이 다시 피어났다고 했다. 그 때부터 부대에서 쉬는 시간은 물론, 보초 서는 시간에도 남의 눈을 피해가며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본격적으로 의대 진학을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서 부터이다. 군 제대 이후 26세의 늦은 나이에 서울의 입시학원에 등록하고 하루에 3~4시간씩 잠을 자면서 공부를 했고 결국 1년만에 부산 고신대 의대에 합격했다. 27세에 입학한 의대에서 나이어린 동창생들과 경쟁하며 예과 2년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그 어렵다는 본과에서도 능력을 발휘해 함께 입학한 동창 104명 가운데 졸업한 48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나이가 적지 않기에 전문의 수련보다는 일반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는 김 원장은 이제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물론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도계지역 주민들을 위해 진료 활동을 이어가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직도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싶어한다. 1800년대 후반 하와이 몰로카이에서 생활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결국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생명을 다한 다미안 사제처럼 자신도 누구를 끝까지 돕고 싶다는 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구정민 koo@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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