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쉬운 중독

중독의 경계에 선 사람의 이야기

중독은 발자국도 없이 찾아온다. 적어도 내가 아는 중독은 그렇다. 전문가들은 중독이 뇌 기능 손상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통제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작고, 쾌감에 집착하는 시상 부분이 활성화되어 있기에 중독에 취약하다고.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통제 기능이 손상되어서 무언가에 자꾸 중독되는 것인지 자주 풍덩 빠져들다 보니 통제를 할 수 없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중독의 시작을 아는 일은 어렵다.

낯선 것에 끌리는 마음

최근 몇 년 사이, 술을 마셔야 머리가 돌아간다고 느끼는 순간이 잦다. 평소엔 흐물흐물하다가 술을 마시면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을 아시는가. (모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단 한번도 틀린 적 없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술 마신 후 세 번이나 틀렸다. 이름이나 숫자를 기억하는 단순 기억에 강하다고 자부하는 자아가 짜부라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가 자괴감이 들다가도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2년 전 심리 상담을 받다가 MMPI 검사[1]를 했기 때문이다. 그중 ‘자극추구’[2] 성향을 알아보는 항목에서 백분위 98%, 즉 상위 2%라는 진단을 받았다. 숙고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고 질서보다 자유를 선호하는 성향이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딱히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자극과 쾌감의 추구는 내 인생의 궤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중 한 장면.

탐닉의 대상인 알코올, 게임, 사람은 계속해서 갱신된다. 처음 맛본 술, 처음 만난 사람, 처음 해보는 게임. 처음의 짜릿함에 사로잡힌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 때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다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멸하는 주인공 블랑쉬 드보아의 대사 “Whoever you are, 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rs.”(당신이 누군지는 몰라도, 난 언제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기대어왔어요.)가 마음 깊숙이 박힌 건 다 이유가 있을 터. 블랑쉬가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이방인의 신선함과 관대함에 탐닉한 것처럼 새로운 사람에게 눈을 빛내고 곧 흥미를 잃는 습성은 위험한 구석이 있다.


중독을 피하는 방법

중독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면 찾고 싶은 동시에, 왜 이게 문제인가. 되묻고 싶어진다. 최근 부쩍 힘이 달려서 찾아간 심리 상담에서도 의사는 뭔가를 예전처럼 즐길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니라고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반문하게 된다. 술을 많이 마시지만, 운동도 그만큼 하고, 방구석에서 미친 듯이 게임을 하지만, 사람과의 연결도 탐닉하는 편이니까 나름 균형이 맞는다고 자위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마음 한구석에선 현실을 잊기 위해 쾌락을 탐닉하는 나의 이드(id)에게 정신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 중용의 규범을 지키라고 슈퍼에고가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말이다. 때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컵에 물을 붓다가 표면장력을 넘기는 시점에서 콸콸콸 넘치고 마는 바로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일단 두고 보기로 한다.


[1] 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다면적 인성검사
[2] 새롭거나 신기한 자극, 흥분을 추구하며 행동이 활성화되는 경향

글. 양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