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PR의 대모' 김한경 KPR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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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커뮤니케이션 그룹 케이피알앤드어소시에이츠(이하 KPR) 설립자 김한경 회장이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국내에 홍보(PR)산업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인 1989년 'PR은 공익과 사회의 선(善)을 추구한다'라는 신념을 토대로 KPR을 설립했다.
장례는 3일간 KPR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신성인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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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미국으로 유학해 뉴욕주립대, 뉴욕 프랫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12년간 극동담당 책임자로 근무하며 미국 조야에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 미측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도 맺었다. 이 시절 쌓은 경험과 인맥을 토대로 훗날 한미우호협회 창립회원이 되었고, 이 단체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미 양국의 관계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미국에서 약 30년간 생활한 고인은 1980년대에 귀국을 택했다. 국내에 홍보(PR)산업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인 1989년 ‘PR은 공익과 사회의 선(善)을 추구한다’라는 신념을 토대로 KPR을 설립했다. 한국PR협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대학에서 홍보학을 강의하는 등 국내 PR산업과 PR학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한국 PR의 대모’로 불렸다.
장례는 3일간 KPR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신성인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유족으로는 미국에 거주하는 자녀 임유진·유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발인은 10일 오전 11시다. 유족은 “고인의 뜻과 엄중한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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