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대문 새벽시장, '딜리셔스'로 잃어버린 밤 찾다
장홍석 공동대표 "일본 등 글로벌 진출할 것"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늦은 밤 관광버스에 올랐다. 동대문에서 옷을 떼오는 이른바 '사입'을 하러 간다. 작은 옷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의 '같이 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옷 구경 생각에 신이 났다. 감히 그곳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지 못한 채 굽이 있는 신발을 신었다. 이 신발에 어울리는 옷 한 벌 얻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도착한 '동대문 패션타운'은 그야말로 백야(白夜)였다. 대낮의 번화가 보다 북적거렸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패셔너블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게 아닌데'. 흥정하는 소리, 미싱 돌아가는 소리, 옷이 가득 담긴 천 가방이 툭툭 던져지는 마찰 소리. 그곳에서 구두 굽 소리를 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지금도 뒤꿈치에 반창고를 붙일 때마다 동대문 생각이 불현듯 난다. 15년 전, 친구를 따라간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다. 검색해보니 서울 중구 광희동부터 을지로, 신당동까지 58만㎡, 17만평 크기다. 어쩐지 발에 불이 나더라니. 원래라면 꿈속을 헤매는 시각, 미로 같은 그곳을 쉬지 않고 누비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곳에서의 새벽은 유난히 짧았다.

백야의 동대문 시장에 밤이 찾아온 건 2011년 딜리셔스가 등장하면서다. 딜리셔스는 2013년 '신상마켓'을 통해 동대문의 밤낮을 서서히 정상 패턴으로 바꾸고 있다. 신상마켓은 시장에 옷을 판매하는 도매와, 그들의 옷을 사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소매를 연결하는 B2B(기업 간 거래) 플랫폼이다. '새벽에 시장을 방문하는 수고로움을 어떻게 하면 덜 수 있을까'로 출발한 회사다.
도매상이 옷 사진을 찍어 신상마켓에 올리면 소매상은 이를 보고 온라인 쇼핑몰처럼 주문한다. 새벽 시장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현재 동대문 도매 사업자 80% 이상이 가입했으며, 지난해 거래액은 5723억원을 기록했다. 사입, 검수, 재고관리, 고객 직배송까지 제공하는 풀필먼트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원석 같은 50년 치 동대문 역사를 어떻게 바꾼 걸까. 3만개가 넘는 도매상을 무슨 수로 설득했을까. 신상마켓에 대한 많은 물음표가 쌓였다. 장홍석 딜리셔스 공동대표는 "이미 상인들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금과 흥정을 고수하던 동대문 시장의 시스템을 움직이기란 분명 쉽지 않았다.
장 대표는 네이버에서는 콘텐츠 모니터링·SNS 기획·콘텐츠 서비스를, 쿠팡에선 물류 사업 PO(제품 기획 총괄)를 맡아온 인물이다. 코로나19가 막 시작된 2020년 3월 딜리셔스에 합류했다. 그의 등장 이후로 딜리셔스는 카드사, ERP 솔루션 운영사 등과 협업하며 성장 폭을 넓히고 있다. 올 하반기엔 일본에 진출한다. 그는 신상마켓을 동대문 패션타운과 글로벌 시장을 연결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쿠팡 등에서 근무하다가 2020년 3월에 딜리셔스에 합류했는데, 패션 관련 스타트업으로 이동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그동안 경험했던 것들은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였는데 이곳은 B2B(기업 간 거래)다. 예를 들어 '생수'는 공산품이자 생필품이고, 정보 자체가 표준화돼 있다. 반면 패션은 개인을 표현하는 도구로써 사용되다 보니 취향이 각자 다르고, 트렌드도 계속 변화한다.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여러 과정과 소매 단계를 이해하지 못해 초반에 어려움을 겪었다.
딜리셔스의 고객이 '소비자'가 아닌 '사장님'이라는 점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판매자들은 사업 배경, 규모, 카테고리 등이 전부 다르다.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상상으론 전부 알기 어렵다. 실제로 만나고 물어보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직접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온전히 체감할 수 없는 만큼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동대문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장부를 수기로 작성하는 아날로그 시스템이었다. 이곳을 어떻게 디지털화했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룰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동대문 시장은 이미 50년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시장이다. 기획과 디자인, 원단, 부자재, 물류, 판매 등 모든 것이 한 공간에 있는 거대한 생태계다.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도 많고 현금밖에 안 되는 등 관행도 많다.
'룰'은 남기고 불편한 점만 디지털화하는 게 처음 목적이었다. 동대문 시장의 문제점은 도소매 모두 새벽에 일한다는 점이다. 동대문에서 옷을 사서, 각자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소매 역시 밤이나 새벽에 움직여야 한다. 이들은 낮에도 본업을 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하지만 상품을 실제로 보려면 동대문에 와야만 했다. '최소한 시장에 안 가도 상품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첫 시작이었다.
새벽에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이들은 꽤 있었다. 다만 그들은 직접 도매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플랫폼에 게시하는 구조를 떠올렸다. 그러나 트렌드는 자주 바뀌고 옷은 매일 새로 생산되기에 하나의 플랫폼이 모든 도매 상품을 게시하기란 어려웠다.
우리는 행거에 있는 의상을 소매상이 보고 구매하는 '동대문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갔다. 도매분들에게 행거에 있는 의상을 사진으로 찍어 신상마켓에 올려 달라고 전단지를 돌렸다. 소매가 보고 전화나 카톡 등으로 거래를 청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단지에 담았다. 지하상가와 온라인 등 소매업체도 연락처를 수집해 '신상마켓에 접속하시면 도매분들이 직접 올리는 상품을 볼 수 있다'고 알렸다. 소매 판매자의 가입이 늘자 도매분들도 의상 사진을 계속 올리면서 성장했다.

-도매와 소매가 중개플랫폼을 사이에 두고 거래하는 것이 전부인가?
이전에는 도매에게 옷을 받으면 소매 판매자가 직접 포장해서 소비자에게 보내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모든 서비스를 한번에 해결한다. 바로 '딜리버드'라는 서비스다. 주문이 발생하면 딜리버드에서 직접 상품을 사입해 검품, 재고관리, 고객 배송까지 제공하는 풀필먼트 서비스다.
요즘에는 '택배박스를 사용해주세요', '손편지 넣어주세요', '사은품을 넣어주세요' 등 소매 판매자들로부터 커스터마이징 된 요구사항도 많다. 이런 것까지 제공한다. 소매 판매자들이 콘텐츠 제작과 고객 소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동대문에 '사입삼촌'이라는 분들이 있다. 도매와 소매 사이 실물 상품 이동을 지원해준 유통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화 돼가고 있는 동대문 시장에서 사입삼촌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
딜리셔스 물류센터 내에 사입하는 전문 팀이 상주하고 있다. 소매 판매자가 오후 10시까지 결제하면 다음 날로 넘어가는 새벽에 전문팀이 사입을 마친다. 다년간 업계에 종사한 분들로 사입삼촌으로 근무하셨던 분들도 많다.
동대문 시장에서 사입삼촌 자리를 완전히 대신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 많은 밸류체인을 기술로 연결해서 동대문 패션 생태계 가치 자체를 높일 수 있을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동대문 시장의 디지털화를 반대하는 이들과의 충돌은 없었나
신상마켓은 배달 플랫폼이나 택시 모빌리티 서비스처럼 판매자와 구매자 양쪽을 연결해 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같은 플랫폼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행히 동대문 시장의 위기의식은 도소매 판매자들 사이에서도 계속 존재해 왔다. 언젠가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들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지역 간 이동이 불편해지고 실내에서 다수가 모이기 어려워지면서 신상마켓이 사입의 유일한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 플랫폼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를 해주시는 사장님들이 늘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신상마켓이 유효할까.
재택근무를 전혀 하지 않았던 기업들도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재택근무의 순기능을 알게 된 것과 비슷하다. 카카오톡이나 라인을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소통이 불편하듯, 신상마켓도 도소매끼리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다. 신상마켓 이전의 불편함으로 완전히 회귀하는 분들은 없지 않을까. 다행히 라이벌 플랫폼도 아직 없는 상태다.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첨단 기술이 도입된 것도 있나.
물류센터에서 무인반송차(AGV)를 도입해 입고와 출고 과정에서의 상품 분류 및 재배치 작업을 자동화했다. 이를 통해 실시간 재고 파악과 방대한 물동량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첨단 기술로 근무자의 업무 강도를 낮추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신상마켓 누적 상품수는 7700만개 정도로 패션 상품 개수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회사라 생각한다. 패션 데이터를 통해 도소매 판매자의 매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레포트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부 시작했다.
현재 패션업계 현황 정도를 제공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서비스를 고도화해 상품 조회수나 구매를 분석해 큐레이션 한 데이터를 사장님들께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소비자 선호도를 확인하고 수요를 예측하면, 재고에 대한 불확실성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지난 1월 신상마켓이 신한카드와 협업한 '신마신한카드'를 출시했다. 물류센터 자동화 등을 비롯해 회사가 큰 보폭으로 나아가는 분위기다.
결국 패션산업 밸류체인 전체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이 생태계에 있는 다른 분들과 협업을 통해 더 나은 가치를 만드는 관점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
신상마켓 앱 내에서 채팅 서비스도 그런 관점에서 도입했다. 신상마켓을 통해 옷을 주문하더라도 도소매 사장님들끼리 구체적인 대화는 카카오톡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옷을 캡쳐해서 주고받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발생하는 만큼 앱 자체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채팅 기능을 구축했다.
수백개 단톡방을 하나하나 관리할 필요 없이, 신상마켓 내 채팅창에서 제품 이미지와 재고 확인까지 가능하다. 주문과 결제도 채팅창 안에서 할 수 있다.
현금이 오고 가던 동대문 시장에서는 거래 기록이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경우도 간혹 발생해왔다.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화를 통해 이 같은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있다.

-일본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있다.
일본 판매자와 동대문을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일본 셀러가 동대문을 통해 사입해, 해외 배송까지 처리하는 형태의 사업을 준비 중이다.
동대문 같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패션 도매 시장이 전 세계에 몇 없다. 일본 시장에서 옷을 살 때는 라쿠텐이나 아마존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이곳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대부분 브랜드다. 모든 사람이 다 브랜드 옷만을 좋아할 순 없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기회라고 판단했다.
또 한국 콘텐츠가 일본에서 흥행하고 있는 만큼, 한국 관련 아이템에 대한 니즈가 생기고 이는 결국 커머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일본에 있는 소매 셀러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
-일본 진출 외에 또 계획하고 있는 서비스가 있을까.
궁극적으로 소매분들을 창작자이자 마케터라고 생각한다. 트렌드에 맞는 옷을 콘텐츠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핵심 활동이다. 셀러들이 지금보다 쉽게 창업하고, 성공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글로벌 시장은 꾸준히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국내는 인구가 어느 정도 한정돼 있다. 해외 수요가 늘어나면 동대문 도매 판매자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본다. 관세와 통관, 환율 등 여러 가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사실상 거의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수준이다. 이에 글로벌 진출을 위한 작업에 더 집중하고자 한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는데, 일할 때 차이점이 있었나?
개인적으로 일할 때 '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납득이 되면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는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좋았지만, 가끔 '왜'가 사라진 채 일하는 경우가 있었다.
스타트업은 적은 인원으로 시작을 하니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조직이다. 프로세스는 부족하지만 업무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왜 하는지, 어떻게 할 건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
불확실성이 크지만 그 이유 때문에 스타트업을 한다고 생각한다. 리스크는 크지만 문제를 해결했을 때 더 나은 성장과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딜리셔스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나.
이 시장의 가치를 높이고 도소매를 비롯한 관련된 모든 분들이 사업적으로 성장하며 함께 커가는 회사가 되면 좋겠다. 기업이기 때문에 건강하고 안정적인 수입 모델을 통해 재무적인 성장도 일어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이 생태계 가치를 올려 시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이상적이기는 하나, 높은 형태의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limhj@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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