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큐대로 기부천사가 된 스롱 피아비

정완주 기자 2022. 3. 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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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선수 스롱 피아비가 2일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피아비큐 당구장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주간한국 정완주 국장] ‘마슨 그레이 소먼클라이 지어 까 픈’은 캄보디아어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궁핍한 삶을 벗어나고자 머나 먼 타국인 한국으로 시집 온 ‘캄보디아 새댁’ 스롱 피아비(32. 블루원엔젤스) 선수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여자 프로당구 LPBA의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한 피아비는 한국에서 당구를 통해 자신의 꿈을 성취했다. 그의 성공은 캄보디아의 ‘김연아’를 탄생시켰다. 그가 캄보디아로 귀국하면 취재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군 고위장성이 직접 마중을 나올 정도로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던 피아비. 의사가 되어 가난한 이웃들의 병을 고치겠다는 꿈도 접었다. 부모님을 도와 감자밭을 일구다 보니 손톱에 물든 풀물이 지워지지 않았다. 감자를 캐던 피아비의 손은 이제 큐대를 움켜쥐고 당구계를 호령하고 있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당구선수 스롱 피아비가 2일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피아비큐 당구장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자괴감으로 한 국제결혼이 ‘신의 한 수’가 되다

피아비는 이모의 권유를 받은 국제결혼이 “처음에는 너무 창피했다”고 술회한다. 꽃 같은 20세 나이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내키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국제결혼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사진을 촬영하러 갔더니 젊은 여성 20여명이 대기하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든 감정은 너무 창피하다는 것이었어요. 자괴감이 몰려들었죠. 조금 있다가 보니 그 자리에 모인 그 여성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나도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데 말이죠.”

사진을 세 번 찍고 만난 이가 지금의 남편 김만식(60)씨이다. 28살의 나이 차이가 났지만 하얀 피부에 말끔한 생김새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점은 선한 눈매였다. 이모가 부추겨 시작된 국제결혼은 아버지가 반대했다. 이모의 영향인지 어머니는 그닥 반대 하지 않는 눈치였다. 평소 의지를 많이 했던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난다”며 힘을 실어주면서 용기를 얻었다. 피아비는 한국행 결혼이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막상 결혼을 결심하니 막연한 두려움도 생기고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그 당시 저는 못 다한 학업의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면 이 길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였어요. 물론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어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픈 마음도 있었죠. 결국 제 인생의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넘어 온 겁니다.”

설레임을 안고 한국에 첫 입국한 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웅장하고 화려한 시설에 압도 당했다. 막연하게 그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솟아났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남편이 충북 청주시에서 작은 복사 가게를 운영했는데 살림집이라는 게 작업장 뒤편의에공간을 마련한 곳이었어요. 제대로 된 집 구조가 아니라서 너무 초라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국 드라마에서 본 깔끔하고 세련된 아파트를 연상했던 상상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처음에 많이 당황한 것은 사실이에요. 캄보디아 가족과 지인들이 집 사진을 올려달라고 했지만 창피해서 보여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바로 이사를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우자고 제 스스로 다짐을 했죠. 실망은 했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사진제공=스롱 피아비 선수

◆ 운명적인 당구와의 만남...그만 둘 위기도 수차례 찾아와

지금의 피아비를 만든 일등공신은 전적으로 남편 김씨였다. 결혼 이듬해인 2011년 당구가 취미인 김씨가 어느 날 당구장에 피아비를 데려갔다. 기다리기 지루할테니 혼자서 공을 굴리면서 놀고 있으라고 기본 자세를 알려줬다. 피아비의 재능은 순간적으로 개화했다. 남편이 알려준 방식을 바로 스펀지처럼 흡수하면서 성공을 하자 재능을 한 눈에 알아 본 남편의 눈빛이 달라졌다. 바로 다음 날 남편은 피아비에게 3만원짜리 큐대를 사주면서 당구의 길로 인도했다.

“모든 게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남편을 만나 알게 된 당구가 너무 재미있고 다행히 소질도 있어 보였어요. 남편의 든든한 외조도 힘이 됐죠. 살림은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당구만 열심히 치라는 거예요. 처음 한국에 와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뭘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답답했는데 길을 찾은 셈이죠.”

처음 당구에 입문한 피아비는 그날부터 연습벌레가 됐다. 하루로 거르지 않고 매일 12시간 연습에 매달렸? 당구장 문을 여는 시간에 가장 먼저 나와 문을 닫을 때까지 큐대를 놓지 않았다. 입문 초기에는 연습한 만큼 실력이 쑥쑥 늘어 재미를 만끽했다. 힘이 든다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늘기 시작하면서 그의 당구 생활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밤낮 없이 연습에 몰두하다 보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화창한 날이면 또래 젊은이와 연인들이 어울려 다니는 모습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 캄보디아의 가족이나 친구들도 그리웠다. 처음에 재미로 시작한 연습이 어느 순간 고역으로 느껴졌다. 남편의 잔소리가 심해지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점점 더 남편이 서운해지고 싸우는 일도 잦아졌다.

“마음을 터놓고 하소연 할 친구가 없다 보니 연습이 힘들고 남편과 싸우고 나면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는 게 문제였죠. 연습을 마치면 차를 운전해 강가에 세운 뒤 펑펑 울거나 소리를 크게 지르는 일이 반복됐어요. 남편과 감정이 격해지면 ‘그만 두겠다’, ‘이럴 바에 그만둬라’는 식의 말다툼으로 이어졌어요. 하지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당구 밖에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큐대를 손에 놓으려다가도 지금까지 버틴 것은 그래도 제 처지에 당구에 전념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너무 감사하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죠.”

한 때는 남편의 잔소리가 부부싸움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구에 대해 상대방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서로를 존중한다. 경기장에는 남편이 참관하지 않는 것이 이제는 불문율이 됐다. 간혹 남편의 조언이 잔소리처럼 들려도 ‘나를 위해서 하는 충고’라고 여기며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해 듣는다.

주변 사람들의 많은 도움도 피아비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버팀목이다. 연습하러 찾아간 당구장 사장은 돈을 받지도 않고 장소를 제공해줬다. 이웃 아주머니들은 운동을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며 수시로 밥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각오를 다시 다지는 계기가 됐다.

당구선수 스롱 피아비가 2일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피아비큐 당구장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세계 1위 크롬펜하우어 넘어서는 게 목표

피아비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입문한 지 3년만인 2014년부터 전국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다녔다. 2016년 정식으로 선수에 등록하고 2년 뒤인 2018년에는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2019년에는 여자3쿠션 아시아선수권까지 제패해 국내 정상급 여자 당구선수로 떠올랐다. 세계캐롬연맹(UMB) 여자랭킹 2위까지 올라갔고 대한당구연맹(KBF) 여자랭킹은 당연히 1위를 유지했다. 캄보디아의 이름 모를 시골 출신인 그가 한국에서 당구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이룬 것이다.

캄보디아 정부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피아비는 당초 국제대회를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3쿠션을 의미하는 캐롬 종목이 캄보디아에는 없었다. 해당 국가의 캐롬 연맹이 존재하고 그 소속 선수만 국제대회 출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피아비의 잇따른 승전보에 고무된 캄보디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자 캄보디아 정부가 나섰다. 피아비를 위해 캄보디아당구캐롬연맹을 설립한 것이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의 아들이 큰 관심을 갖고 밀어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마추어 대회를 평정한 피아비는 2021년 2월 전격적으로 LPBA에 뛰어들었다. 더 나은 성공과 도전을 위한 선택이었다. 프로 무대로 데뷔한 초기에는 적응에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적응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출전한 그해 6월 2021-22시즌 개막전(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김가영을 꺾고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6개월 후인 2021년 12월 '에버콜라겐 LPBA 챔피언십 태백대회‘에서는 결승전 풀세트 접전 끝에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큐대를 잡은 지 딱 10년 만에 프로리그 정상 자리를 두 번이나 꿰찬 것이다.

거침 없이 정상을 질주하는 피아비에게도 목표가 있다. 명실상부한 부동의 UMB 세계 여자 랭킹 1위인 네덜란드의 테레사 크롬펜하우어(39)를 뛰어 넘는 일이다. 크롬펜하우어는 남자 선수들과 함께 대회에 참가하는 등 남성 선수 못지않은 파워와 실력을 갖춘 네덜란드의 스타 당구선수다.

2018년에 이어 2019년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도 크롬펜하우어에게 패한 피아비는 2년만에 다시 맞대결 기회를 맞았다. 프로로 넘어오기 직전인 2021년 1월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 여자 개인전이었다. 국내 팬들도 큰 괌심을 갖고 지켜봤다. 피아비가 크롬펜하우어를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빅매치’였다. 결승전까지 올라온 피아비는 크롬펜하우어에게 설욕을 노렸지만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넘사벽' 크롬펜하우어의 벽을 결국 넘지 못한 것이다.

“그 때 결승에서 제 스스로가 너무 위축되고 긴장된 점을 확실이 느낄 정도였어요. 평소 연습 때 무난하게 성공했던 배치도 놓치기 일쑤였고요. 당시 크롬펜하우어 선수를 보니 모든 공을 이해하고 공략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아직도 정립하지 못한 공 배치를 너무 쉽고 확실하게 공략하는 것을 보고 실력 차이를 인정했어요. 아직 제가 배우고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점도 알았습니다.” 이후 크롬펜하우어 선수와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주 소통하고 있다. LPBA 우승을 할 때도 잊지 않고 ‘축하한다’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줄 정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크롬펜하우어를 뛰어 넘기 위한 새로운 목표가 정해졌다. 대대 기준 40점으로 수지를 올리는 일이다. 남자 선수들의 경우 평균 대대 기준 40점 이상을 놓고 있다. 현재 피아비의 수지는 32점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제가 운영하는 당구클럽에서 35점으로 올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스스로 아직은 35점을 놓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40점 목표를 향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우선 키스가 많이 나는 것을 개선하려고 해요. 다양한 스트로크를 통해 1목적구의 분리각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계속 탐구하는 중이에요. 일반적인 시스템 대신 저한테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정리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지금 비밀이에요. 하하.”

사진제공=스롱 피아비 선수

◆ ‘기부천사’ 피아비를 위해 캄보디아행 택한 남편

피아비는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신의 꿈을 말한다. 캄보디아 어린이를 위한 학교 설립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3000평 규모의 땅도 사들였다.

그는 캄보디아 어린이는 물론 가난한 캄보디아 동포를 위해 기부를 아끼지 않는다. 캄보디아 어린이를 위한 구충제, 학용품, 마스크 등을 지원하는 식이다. 기부 활동을 더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사단법인 피아비한·캄사랑재단’을 설립했다. 소소하지만 주위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서 용기를 냈다.

이제는 피아비보다 남편이 더 적극적이다. LPBA 대회를 마치고 오는 4월이면 피아비 부부는 잠시 아름다운 이별에 나선다. 남편 김씨가 피아비의 기부 및 자선사업을 위해 직접 캄보디아로 가서 현장일을 맡아서 하겠다는 의지를 굳힌 것이다. 기한을 딱히 정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아내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의욕이 강하다. 피아비의 권유도 아니고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남편은 본업을 그만두고 청주에 피아비 이름을 건 당구장을 차리는데 매달렸어요. 구장을 설계하고 인테리어를 꾸미는 작업을 남편이 다 맡아서 했어요. 오픈을 하고 나서 남편이 당구대를 청소하고 손님들한테 음료수를 서비스 해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죠. 당구장 일에 치이다 보니 남편은 허리까지 다쳐서 지금도 고생하고 있어요. 남편 때문에 지금의 피아비가 존재하는 것인데 또 나를 위해서 캄보디아로 직접 가서 일을 하겠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남편을 만난 게 저한테는 가장 큰 행운인 것 같아요.”

남편 이야기를 할 때 피아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만큼 감사하고,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든 것 같았다. 캄보디아의 가족들을 떠올리면 마찬가지로 눈물이 맺힌다. 피아비 입장에서는 아직도 부모님한테 죄송한 마음이 너무 크다고 자책한다. 가족들을 풍족하게 지원하지 못하면서도 기부활동을 하는 죄책감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 와서 5~6년 동안은 생색만 낼 정도의 용돈을 부치는 것 외에 경제적 지원을 전혀 못했다.

“저는 맛있고 비싼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사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제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고 잘 해줄 수 있다면 그 부분에 더 행복을 느껴요. 그래서 부모님께 특히 죄송하죠. 부모님 이웃들은 피아비가 한국에서 성공했는데 왜 집을 새로 장만하지 않고 옛날 낡은 집에서 사느냐고 매번 묻는다고 해요. 말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왜 섭섭한 마음이 없겠어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항상 이해해 주시는게 너무 감사하죠.”

피아비는 블루원리조트의 블루원엔젤스 팀원들을 만난 것도 축복으로 여긴다. 윤재연 구단주와 김춘수 단장, 엄상필, 홍진표, 강민구, 다비드 사파타, 서한솔 선수 등 팀원들이 모두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팀원들이 이동할 때는 열외 없이 다 함께 움직인다. 주장인 엄상필 선수의 특명(?)이다. 그는 그런 모습이 너무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혈혈단신 한국에 와서 남모를 외로움을 겪었던 그에게는 팀원들이 또 하나의 가족처럼 다가오는 듯했다. 지금처럼 남편과, 가족과, 팀과, 늘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기에 피아비의 꿈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지 않을까.

당구선수 스롱 피아비가 2일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피아비큐 당구장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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