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의 산 이야기] 미국엔 인디언이 살지 않는다

글 신영철 산악문학가 사진 정임수 시인 2022. 3. 1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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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캐니언
LA 인근 '산 하신토San Jacinto(3,302m)'산 인디언계곡
인디언계곡을 따라 3km쯤 오르자 나무가 없는 수목 한계선이 나왔다. 멀리 해발 3,302m의 ‘산 하신토’ 정상이 보였다.
콜럼버스는 흔히 아메리카대륙 발견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아메리카는 원주민들이 바글대던 땅이었다. 따라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다는 건 유럽인 시각일 뿐이다.
그런 착시 현상은 콜럼버스가 더 심했다. 죽자 사자 70여 일 대서양을 건너 온 콜럼버스는 고대하던 ‘인도’ 땅을 만난다. 그는 그 땅이 원래 자신이 목표했던 인도로 착각했던 것.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끝도 틀리는 법. 우리와 같은 몽골리언 원주민을 만나자 ‘인도인Indian’으로 확신했다. 그리하여 인도가 어딘지 상상도 못 했을 원주민들이 졸지에 인디언이 되었다. 졸지에 창씨개명을 당해 미국 인도인이 된 웃픈 역사.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를 인도로 알았다.
“사막 속 오아시스 보러 갈래요? 팜 스프링스Palm Springs에 있는 인디언 캐니언인데 놀라운 풍경을 보여드릴게요.”
정임수 시인이 말한 팜 스프링스는 모하비사막에 건설된 인공 휴양도시. LA에서 동쪽으로 180km 정도 떨어진 곳. 끔찍하게 더운 도시라는 기억. 여름엔 평균 40℃를 웃도는 뜨거운 땅이었다. 사막에 가공된 팜 스프링스의 해발은 겨우 146m. 그 도시 뒤로 ‘산 하신토San Jacinto’ 산맥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다.
최고봉 산 하신토(3,302m)는 LA 인근에서 두 번째로 높다. 고도가 높아 정상부는 숲도 있고 시원했다. 산행 외엔 아는 게 없었는데, 정 시인과 길을 떠나며 이곳 원주민 인디언 역사기행도 되었다.
팜 스프링스가 가까워 왔다. 갈색 황량한 사막 위에 하얀 눈을 쓰고 있는 산 하신토 봉이 멋지다. 1박2일에 걸쳐 오르는 게 일반적인 등산이었다. 그러나 에어리얼 트램웨이Aerial Tramway라 불리는 케이블카를 이용할 때도 있었다. 세계 최대 회전식 케이블카라는 말답게 승객실 자체가 360°로 회전하며 오른다. 80명 승차 가능한 케이블카는 2,595m 높이까지 올라가는데 명물답게 늘 만원이었다.
햇볕에 달궈진 사막의 갈색 대지에 자리 잡은 오아시스. 오아시스 계곡을 따라 팜트리 숲이 뻗어 있다.
등반 루트 8,000개 넘는 암벽등반의 메카
시내로 진입하기 전 우람한 모롱고 카지노 빌딩Morongo Casino Resort & Spa이 보인다.
“저 엄청난 카지노 소유주가 인디언 모롱고 부족입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인디언 캐니언을 소유한 주체는 카우일라 부족이고요.”
정 시인은 인디언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드라이브 내내 그가 들려준 인디언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인디언 부족들은 미국 정부가 인정한 자신들의 광대한 보호구역에서 독자적 경제계획을 세울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목장, 농업, 관광, 그리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만 허가가 나는 카지노. 캘리포니아에는 200여 개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는데, 이 중 50여 개 보호구역에서 자체 리조트와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럼 애초 미국 땅엔 인디언 부족이 몇 개나 있었다는 거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콜럼버스 시대엔 대략 560개의 부족이 있었다는군요. 미국 대륙에 살던 원주민 수가 1,500만 명에 달했다고 하고요.”
원주민 카우일라 부족이 거주했던 전통집을 재현했다.
당시 원주민 수는 콜럼버스 시절의 전 유럽 인구와 맞먹었다. 그런 아메리카를 ‘발견’된 신대륙이라 부르는 유럽인들은 겁도 없다. 그건 유럽 중심적 편견에 치우쳐 있는 생각일 뿐이라는 정 시인의 단호한 주장.
“10여 년 전 웃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LA에서 로마 공항으로 여행한 아메리카 인디언 이야기입니다. 오지브와족 추장인 ‘아담 노드웰’이라는 사람이었지요. 그는 로마에 도착하자 얄궂은 인디언 추장 복장으로 갈아입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외쳤습니다.”
“그래요? 뭐라고 했는데?”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나도 따라한다. 이미 수천 년 동안 원주민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권리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가? 나도 우리 부족 최초로 이탈리아에 왔으므로, 동일한 권리로 이탈리아의 발견을 선포한다. 이제 이탈리아에 대한 소유권을 차지하였음을, 아메리카 인디언의 이름으로 공표한다. 그렇게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어요.”
이번에 안 것이지만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으로 스페인에 귀화한 인물이었다.
겨울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인디언계곡 탐방에 나선 사람들. 팜트리 숲은 생각보다 넓고 길었다.
신기루 같은 인디언 캐니언
사막이므로 분명히 인공으로 만든 녹색의 다운타운을 지나고 있다. 사람은 물이 있어야 한다. 모하비사막에 이런 녹색도시 팜 스프링스를 건설할 수 있었던 건 산 하신토산맥 덕분. 산이 내려준 물이 있기에 사람이 살 수 있다.
도심을 벗어나자 다시 나무 한 그루 없는 갈색의 사막이 시작된다. 이런 곳에 오아시스가 존재한다니 눈으로 보기 전에 못 믿겠다. 인디언 캐니언 입구에서 돈을 받는다. 얼굴을 보니 인디언이다. 미국에선 차량 한 대당 입장료를 받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에선 성인 1인당 12달러씩 받는다. 이곳을 통과하면 3군데의 오아시스가 있다.
“이 구역을 자치하는 카우일라 부족 인디언 마음대로입니다. 아주 예전 원주민이 그랬던 것처럼 공동체가 운영합니다. 이 부족도 시내에 세 개의 대형 카지노를 소유하고 있다더군요.”
입구를 통과해 먼저 팜 캐니언으로 차를 몰았다. 아무리 살펴도 황량한 바위산과 뜨거운 사막뿐이다. 물이 흐르는 오아시스가 있을 지형이 아니다. 구불구불 언덕길을 올라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언덕 아래로 시야가 열리자 거대한 팜트리 숲이 내려다보인다. 계곡 따라 수십m 되는 우람한 팜트리가 도열하듯 울창하다.
그 나무 사이 계곡엔 물이 흐르고 있다. 완벽한 반전反轉.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한낮의 사막은 무덥다. 땀을 흘리며 계곡 바닥에 내려섰다. 팜트리 숲에 도착해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키가 더 크다.
“이 팜트리 학명學名은 캘리포니아 부채꼴 야자수Washingtonia Filifera라네요. 20m까지 자라고요. 잎이 부채처럼 생겨서 그런 모양인데 저기 보이지요? 잎사귀로 만든 움막이.”
정말 야자수 그늘에 몇 개의 움막이 보인다. 카우일라 인디언이 살던 집을 복원해 놓은 것.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암갈색 천지인데 이 계곡만 녹색이다. 건조하고 황폐한 땅에 녹색 팜트리가 무성하다니. 팜트리가 즐비한 계곡을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남가주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 3,302m의 ‘산 하신토’ 정상에 선 필자.
주변 계곡에 물 흔적은 없다. 그러나 맑은 물이 흐르는 게 참 신기하다. 샘 덕분. ‘사막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던 생텍쥐페리 주장은 옳다. 인디언 부족이 살던 흔적은 암각화에서도 만날 수 있다. 능히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기에 카우일라 부족의 고향이 되었을 터. 땀 흘려 한 시간여를 거슬러 오르니, 역시 물이 마른 계곡이었고 팜트리 숲도 끝난다.
차를 돌려 다른 오아시스를 찾았다. 물이 철철 넘치는 안드레아스계곡 역시 하나의 녹색 선. 이곳에는 반경 0.5마일(800m) 내 150종의 식물을 품고 있다고 안내한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사막식물원. 물길 따라 만들어진 짧은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팜트리 그늘 곳곳엔 피크닉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막 속 오아시스에서 먹는 햄버거 맛이 유별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미국이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어 카지노 같은 이권 챙겨 주는 걸 보니 정치 잘하고 있네.”
한 입 가득 햄버거를 우물거리던 정 시인이 뜨악한 표정으로 눈을 흘긴다.
“자신들 언어도 있었던 카우일라 인디언은 이제 몇 백 명 안 됩니다. 1,500만 명 이상이던 미국 원주민 총 인구도 500만 명이 될까 말까 하고요. 그것도 많이 번성해 그런 거지요. 자칫 멸종될 뻔한 흑역사가 존재합니다. 지금도 원주민 보호구역 내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미국 평균의 4배예요.”
물론 인디언을 유해동물인 곰처럼 취급한 백인의 어두운 역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인디언의 대량 사망은 총질보다 바이러스 때문. 요즈음 맹위를 떨치는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그 꼴일 것이다. 처음 맞닥뜨린 유럽형 전염병에 인디언들은 속수무책.
콜럼버스 탐험대를 처음 마주한 인디언 부족은 알 수 없는 역병으로 3년이 지나기 전 70%가 사망했다. 말, 돼지 같은 동물이 아메리카 대륙에는 원래 없었다. 유럽에서 사람들과 살아오면서 면역력을 높인 동물까지도 인디언들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겼던 것.
바짝 마른 사막에서 유일하게 생명수가 존재하는 오아시스. 오아시스를 기반으로 원주민 카우일라 부족이 오랫동안 거주했다.
타퀴즈 바위와 협곡을 헷갈리다
“미국 발견으로 국경일로 지정된 ‘콜럼버스의 날’이 있어요. 바이든 대통령이 작년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원주민의 날’이라고. 신대륙 발견이라는 허상은 인디언들에게 악몽이었을 겁니다. 인디언 멸망의 서곡이었으니까요. 콜럼버스는 이제 영웅에서 재평가를 받는 중입니다. ‘나를 부르는 숲’을 쓴 빌 브라이슨 아시지요? ‘콜럼버스처럼 몰락하려면 대단한 무능과 오만이 필요한데, 그는 그 두 가지 모두를 갖추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썼더군요.”
아무래도 정 시인에게 콜럼버스는 극혐 인물인 듯. 1차 항해 때 선원이 없어 죄수를 고용했다든지, 재물을 획득하면 10%는 자기 것이고, 빼앗은 땅에서는 자신이 총독이라는 왕과 짬짬이 계약서 이야기까지, 알기도 많이 알고 있었다.
“아까 리플렛을 보니 ‘타퀴즈 록Tahquitz Rock’이라는 곳도 있던데 거긴 안 가나?”
“거기가 어딘데요?”
길라잡이 정 시인도 모르는 곳이 있다니, 이건 콜럼버스 담론에서 빠져 나올 기회다 싶었다.
“타퀴즈 바위를 몰라? 미국식 클라이밍의 원조 격으로 유명한 곳이지. 세계 현대 암벽등반사의 한 중심지로도 알려져 있고. 클라이밍 난이도를 유럽식이 아닌 요세미티 10진법으로 바꾼 발상지가 바로 타퀴즈 록이네요.”
아웃도어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취나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인수봉에 취나드 길을 낸 사람으로 한국산악계에서도 유명한 사람. 그는 1957년부터 타퀴즈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말했었다. 벤추라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타퀴즈 록 등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인수봉이나 선인봉에 모여 들던 한국의 바위꾼처럼 남가주 클라이머들에게 그곳은 성지였다. 이본 취나드, 로열 로빈슨, 릭 리지웨이, 존 롱 등 당대의 바위꾼들은 이 바위에서 기량을 닦았다. 그런 후 이들이 요세미티 거벽 시대를 활짝 열었다. 신이 나서 이어가는 설명에도 정 시인은 리플렛 지도를 열심히 보고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깔깔 웃는다.
“콜럼버스처럼 착각하셨네요. 타퀴즈 록은 이 산 반대편에 있어요. 여긴 타퀴즈 캐니언이고요.”
뭐라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카우일라 부족 최초의 무당 이름이 ‘타퀴즈’였단다. 이곳에선 흔한 인디언 말이 타퀴즈인 것. 계곡을 뜻하는 캐니언은 수평이고, 타퀴즈 바위는 수직. 수직과 수평을 헷갈리다니. 공연히 아는 척 했다가 졸지에 콜럼버스가 되었다는 생각이 설핏 스쳤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3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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