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만들기', 누가 가짜 상속녀를 만들었나?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애나 델비. 본명은 애나 소로킨. 2017년 부유한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뉴욕 사교계를 발칵 뒤집었던 실제 인물이 넷플릭스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애나 만들기'는 애나 소로킨 사건을 취재한 '뉴욕 매거진' 기자 제시카 프레슬러의 기사를 기반으로 제작한 9부작 시리즈다. 애나가 맨해튼을 속인 사기꾼 범죄자인지 '영리하고 흥미로운 여성' 로빈 후드인지 시청자에게 판단을 맡긴다.
비비안 켄트.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 이름이다. 기자 제시카 프레슬러를 모델로 한 캐릭터로 재판까지 라이커스 섬에 구금된 애나를 찾아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다. 드라마에서는 '맨해튼 매거진'의 기획 기사 담당 기자로 등장하며 이전에 쓴 기사가 문제를 일으켜 잡지사 내에서 나이 든 기자들의 유배지라 불리는 '기베리아'에 좌천되다시피 한 신세다. 애나가 흥미로운 기삿감이 될 것을 직감한 비비안은 데스크의 반대와 임신 막바지 상태임을 무릅쓰고 취재를 강행한다.
'애나 만들기'는 비비안이 애나를 설득해 인터뷰 허락을 받아내고 변호사, 검사, 애나의 친구, 동료들을 만나 2주 안에 기사를 완성하기까지 과정을 취재기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들 중에서 애나의 변호사 토드 스포덱은 조연 캐릭터 중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다. 변호사로 성공하고 싶은 사적인 목적과 애나를 진심으로 변호하려는 복잡한 심정으로 사건에 임하는데, 재판을 위해 비비안과 공조 관계를 맺는다. 재판 과정에서 말썽을 부리는 애나 때문에 골머리를 썩지만 충실한 변호인 역할뿐 아니라 애나의 보호자, 주요 남성 캐릭터 역할까지 도맡는다.

인스타그램 스타, 패션 아이콘, 워너비, 뉴욕 사교계의 샛별로 불리던 주인공이 벌이는 사기극을 다룬 만큼 드라마엔 화려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비사의 호화 유람선에서 모로코의 최고급 리조트, 100달러 팁을 뿌리며 사치를 일삼는 애나의 고급 호텔 생활까지 엿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자극의 수위를 높이려면 얼마든지 양념을 치고 과장할 수 있는 소재인데 이 드라마는 단순한 오락물에서 한 발 더 담가 진득한 인물 드라마의 자세를 취한다.
드라마에선 매 화마다 등장인물 한 명이 부각된다. 발로 뛰는 비비안의 인터뷰, 사무실 책상에서 취재원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추리능력을 발동하는 '기베리아' 원로 기자들의 지원 사격이 더해져 꼼꼼한 탐사 보도 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이는 이 드라마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빈틈없는 구성으로 한 편 한 편이 개별적인 완성도를 보장하지만 9화 결말까지 한 호흡으로 달리기에는 각 화의 균일한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7개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사진적 기억의 소유자에 수학 천재고, 뛰어난 사업적 재능을 지닌 천재"라고 소개하는 애나의 수상한 사기 행각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뉴욕 사교계 클럽인 애나 델비 재단(ADF)을 만들겠다는 굳은 신념은 대형 은행, 자산관리사, 헤지펀드, 로펌, 부동산 개발업자, 자선가 등 뉴욕의 엘리트들을 움직인다. 스물여섯 살 애나는 거액의 신탁자금을 받을 상속녀라는 가짜 신분과 어린 여성이라는 점을 약점으로 이용해 이들을 마음과 돈을 마음껏 주무른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는 남 탓, 자신이 얻은 건 내 노력의 결과라는 애나의 궤변은 뻔뻔함을 넘어 때론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 드라마에서 애나가 겁 없고 당돌한 MZ 세대 악녀의 이미지로만 그려지지 않은 건 주연배우 줄리아 가너의 연기 덕분이다. 넷플릭스의 인기 범죄 드라마 시리즈 '오자크'(2017~2022)로 2년 연속 에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력이 뒷받침하듯 애나라는 인물의 양면성을 예리하게 꿰뚫는 연기를 선보인다. 누구에게든 자존심을 세우고 당당하게 행동하다가 신용카드 승인이 거절되거나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눈꺼풀을 파르르 떨면서 불안과 분노에 휩싸이는 연기는 고소하면서도 측은한 감정을 일으킨다.
비비안 켄트를 연기한 안나 클럼스키는 중년 시청자에겐 '마이걸'(1992)의 꼬마 소녀로 익숙한 얼굴이다. 평범한 서민, 일하는 여성, 투철한 기자 정신을 가진 비비안 캐릭터에 적격인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며 시청자와 친근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애나의 친구들로 등장해 5화부터 본격적으로 활약을 펼치는 케이티 로스, 라번 콕스, 알렉시스 플로이드의 열정적인 연기도 시리즈 후반부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 넣는다.

'애나 만들기'는 스타 프로듀서 숀다 라임스가 이끄는 제작사 숀다랜드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 넷플릭스와 계약을 체결한 숀다 라임스는 로맨틱 시대극 '브리저튼' 시리즈를 흥행으로 이끌었고, 누구보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애나 소로킨을 2022년 드라마 주인공으로 소환했다. 드라마가 범죄자를 미화했다는 일부의 평가도 있지만, 범죄를 저지른 한 사람의 배경을 파고 들어가 이민자, 성공주의, 아메리칸드림 등 미국 사회의 허상을 끄집어내는 실력은 인정할 만하다. 숀다랜드 드라마의 특징인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가 주요 캐릭터로 활약하는 것은 물론,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 또는 승자와 패자로 선 긋지 않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다층적 관계로 그려 드라마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두텁게 만든다.
2019년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애나 소로킨은 2021년 2월 11일에 출소했다. 드라마 공개 시점이 출소한 지 딱 1년이 된 날이어서 넷플릭스의 영악한 혹은 영민한 홍보 전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시카 프레슬러의 기사로 애나는 유명해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잊히는 듯했으나 넷플릭스 드라마로 그의 이야기가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애나 만들기'를 본다면 애나 소로킨의 이름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평가는 나의 몫이지만 드라마 마지막 장면까지 애나라는 인물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가십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애나 만들기'는 비하 대신 존중을 택하는 드라마다. 그래서 고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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