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우크라이나 우주전쟁

이병철 기자 입력 2022. 6.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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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주항공우주국 제공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으로 시작된 전쟁이 100일을 넘기고 있다. 유엔과 서방 통계를 종합해보면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양측에서 5만명 이상 숨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800만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국민이 집을 잃고 피난길에 올랐다.  전쟁은 인류사에, 또 개인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남겨왔다. 하지만 한편에선 급진적인 변화를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막대한 물량과 과학기술이 투입되면서 수~수십년 후 상용화될 기술을 미리 엿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민간 기업을 필두로 한 우주기업의 기술은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결정적 장면에 등장했다.

결정적 장면 ①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전쟁 참상 알리다

러시아는 본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 통신시설과 방송국을 공격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를 비롯해 전역에서 인터넷과 방송 등 외부와의 연결이 끊길 위험에 처했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일론 머스크에게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론 머스크는 곧장 우크라이나로 안테나와 셋톱박스를 보냈다. 우크라이나에서 스타링크 접속이 가능해졌다.

스타링크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 우주기업인 스페이스X에서 운영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다. 위성 인터넷은 지구 저궤도에 통신위성을 띄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안테나와 셋톱박스 등 간단한 장비만으로도 장소와 상관없이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크라이나가 스타링크를 사용하면서 과거 전쟁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참상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방공호에 대피한 시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온 비참한 모습이나, 침략에 맞서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스스로 촬영해 세상에 알렸다.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범죄도 드러났다. 4월 4일 뉴욕타임스는 민간기업인 맥사 테크놀로지의 위성사진을 분석해 키이우 외각에 민간인의 시신으로 보이는 물체가 수주 간 방치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크라이나는 꾸준히 러시아가 전쟁범죄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가 부정하면서 양국의 신경전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정책연구2팀장은 “국가가 소유한 정찰위성과 통신위성 등은 한정적이고 폐쇄적으로 활용됐다”며 “민간 기업의 정보는 공개적인 만큼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어 선전전이나 여론전에서 활용된다면 침략국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쟁은 대중들이 가졌던 민간 우주기업의 기술력과 활용성에 대한 인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 올 전망이다. 상용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던 우주기술이 실제 전쟁에 활용되며 우려를 불식하는 기회가 된 덕이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과거 위성 통신 서비스 이리듐 프로젝트가 높은 비용과 낮은 품질 등으로 실패한 사례를 두고 스타링크도 마찬가지로 상용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부각된 스타링크의 효용성 덕분에 관련 산업이 대중들의 관심과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흰 원반 모양의 스타링크 셋톱박스 주변에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모여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스타링크는 간단한 장비로 어디에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다. 미하일로 페로도프 트위터캡쳐

결정적 장면② 모스크바함은 왜 침몰했을까

4월 14일 러시아 흑해 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이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침몰했다.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4월 15일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국방부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미사일2기가 명중하면서 모스크바함이 침몰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군은 미사일 생산 공장을 포격하기도 했다. 정황상 모스크바함의 침몰에 대한 보복 공격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미사일로 바다에 떠 있는 군함을 맞추기 위해서는 표적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한다. 흑해에 해군 전력이 없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모스크바함의 위치를 알아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함을 침몰시킨 게 맞다면, 무슨 방법으로 위치를 알아낸 걸까. 모스크바함 침몰 이틀 뒤인 4월 16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스타링크의 요격을 지시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스타링크 위성의 도움을 받아 미사일로 모스크바함을 명중시켰다”며 “그에 대한 보복성 지시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러시아의 스타링크 요격 계획은 정부사이트를 흉내낸 가짜 홈페이지에서 시작한 가짜뉴스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위성 자료를 이용해 모스크바함을 침몰시켰다는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위성을 활용한 전략은 우크라이나가 군사력이 열악한데도 장기간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무인 드론을 활용해 이동중인 러시아의 군사 전력과 물자를 공격해 진격을 늦추는 전략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이때도 우주기업에서 제공하는 위성사진이 러시아군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안 팀장은 “그간 통제되던 정보가 널리 활용되면서 전쟁의 개념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며 “이런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전력과 물자의 이동 계획을 수립한 게 러시아군의 패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성 서비스 기업 맥사 테크놀로지에서 공개한 4월 9일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의 위성 사진. 민간 우주기업은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개하거나 군사 정보를 제공하는 등 전쟁의 판도를 좌우하고 있다. 막사 테크놀로지 제공

결정적 장면 ③  우주정거장서 떠나는 러시아

미국은 러시아를 국제 결제망에서 퇴출시키는 등 고강도의 경제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에는 군수품을 제공하는 등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번 전쟁이 러시아와 미국의 대리전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두 국가가 협력하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우려의 시선이 쏠렸다.

ISS는 1998년 본격적으로 착공해 러시아와 미국 등 주요국에서 제작한 모듈을 조립해 완성됐다. 현재까지 운영되는 유일한 우주정거장이다. 우주비행사들은 이곳에서 오랜기간 머물며 인간의 신체변화를 관찰해왔다. 또 무중력 상태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각종 과학실험을 진행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2월 25일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연방우주국 국장은 트위터로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고 하자 “미국인 우주비행사가 소유즈에 탑승하지 못할 것이며, ISS에 장착된 러시아의 추진 제어 모듈을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러시아의 추진 제어 모듈이 사라진다면 동력을 잃은 ISS가 지구로 추락하게 된다.

러시아는 유럽이나 미국과의 우주협력을 철회하는 조치도 내놨다. 유럽우주국(ESA)과 프랑스 기아나 국립우주연구센터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러시아 직원들을 철수시켰고, 그간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을 통한 영국 위성통신 서비스기업 원웹의 위성 발사를 중단시켰다. 미국 기업에 판매하는 로켓엔진의 수출도 막은 상황이다.

5월 2일 러시아 관영통신사 타스와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가 미국과의 ISS 사업에서 철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에 가해진 경제제재가 가장 큰 이유다. 안 팀장은 “ISS는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개발 협력의 상징이자, 인류의 과학기술 유산으로서의 의미가 큰 만큼 러시아의 철수는 앞으로 우주개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자체적인 달 탐사 계획을 수립하는 등 우주를 무대로 한 냉전이 열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촬영한 국제우주정거장(ISS) 승무원들의 모습. ISS는 러시아와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가 협력해 우주개발을 하는 협력의 상징이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협력 중단 소식으로 우주냉전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NASA 제공

한국도 ‘우주사령부’ 수립 계획 발표

이번 전쟁 전부터 우주는 안보에 중요했다. 미국 국방부는 전통적인 전장으로 꼽히는 육지와 해상, 공중을 넘어서 우주를 제4의 전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당분간 적극적인 우주의 전장화는 어려울 전망이다. 유엔은 1963년 우주법, 1967년 우주조약, 1979년 달협약 등을 선언하며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대전제를 제시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미래 분쟁에 대비해 우주 군사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은 우주임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창설했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군도 최근 대기권 밖에서 오는 위협에 대처하는 ‘우주작전사령부’를 2030년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안 팀장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우주안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이라며 “다만 군사적 목적의 우주개발은 주변국을 자극할 수 있어 외교와 안보 사이에서 균형 있는 우주안보 정책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한국의 우주개발 방향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주에서 지구를 관측한 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주기술 개발을 위해서 투자되는 분야를 보면, 한국은 지난 30년간 발사체, 인공위성 등을 만드는 하드웨어 기술에 집중해 성과를 내고 있다”며 “이번 전쟁은 우주에서 지구를 관측한 데이터의 확보 및 활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나이티드론치얼라이언스(ULA) 아틀라스V 로켓. ULA 제공

※관련기사
과학동아 6월호, [프리미엄 리포트] 우크라이나 우주전쟁

[이병철 기자 alwaysa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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