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과 소서노- 고구려 건국신화 다시 읽기(5)
[고구려사 명장면-151]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기록에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은 매우 간략하다. 주몽 건국 신화의 상당 부분이 주몽 탄생 이전 해모수와 유화, 해부루와 금와왕 등과 관련된 내용이고, 주몽 탄생 이후에도 부여에서의 시련을 겪다가 탈출하여 신이한 능력으로 엄시수를 건너고 졸본천에 이르는 과정이 나름 풍부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졸본천에 도착하여 건국하는 내용은 매우 소략하다. 그 대목을 들어보자.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과 강이 험하고 견고함을 보고 마침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고(高)로써 성을 삼았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였다. 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이처럼 졸본에 도착하여 나라를 세우는 과정은 싱거울 정도이다. 요새식으로 말하자면 비류수 강가에 고구려라는 깃발을 꽂는 수준이다. 위 기록대로라면 졸본천 일대는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하여 도읍을 삼을 만한 곳이었으니, 마땅히 먼저 자리 잡고 있는 세력이 있을 법한데, 위 기록은 마치 무주공산에 나라를 세운 듯한 분위기로 읽힌다.
아마 옛사람들도 의당 이런 의문을 가졌나 보다. <고구려본기>에는 위와 같은 본문 기록 외에 또 다른 전승을 전하고 있다.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이에 따르면 주몽이 도착한 곳은 '졸본천'이 아니라 '졸본부여'라는 나라였고, 그 나라에는 이미 왕도 있었다. 주몽은 그 나라의 사위가 되어 장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것이지, 나라를 세운 게 아니다. 왕이 되어 나라 이름을 졸본부여에서 고구려로 바꾸었는지 여부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이 기록대로라면 주몽이 아무것도 한 게 없기 때문에, 나라 이름이라도 고구려 바꾸었다고 보아야 고구려 건국 시조로서 체면이 설 듯싶다.
이 두 전승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주몽이 직접 나라를 세운 전승은 창업 시조로서 나름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위가 되어 이미 세워져 있는 졸본부여의 왕위를 계승했다고 하면 엄시수를 건너면서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라고 큰소리친 모양새와 앞뒤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건국 시조로서의 권능과 권위가 영 보이지 않은 전승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과연 이 전승이 고구려의 전승이었을까? 만약 고구려 전승이라면 고구려 사관들이 건국 시조의 이미지와 무관하게 역사적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기록하는 솔직함을 보였을까? 설마 그럴 리는 없지만, 어쨌든 답하기 쉽지 않은 의문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고구려본기>에 이설로 기록된 졸본부여의 사위가 된 전승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바로 <백제본기>에 이와 매우 비슷한 전승이 전해지고 있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은 그 아버지는 추모(鄒牟)인데 혹은 주몽이라고도 하였다. 북부여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부여 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둘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주몽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沸流)라 하였고, 둘째 아들은 온조라 하였다."
백제 건국설화의 첫머리인데, 후일 백제를 세운 주인공이 온조이기 때문에 온조 시조 전승이라고 한다. 보다시피 위 <고구려본기>의 이설과 내용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다른 점은 주몽이 북부여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졸본부여 왕의 딸이 셋 있는데 그중 둘째 딸과 혼인하였다는 점, 그리고 비류와 온조를 아들로 두었다는 점 등이다. 백제 건국 시조인 비류와 온조를 빼놓고 위 이야기를 간략하게 줄이면 <고구려본기>의 이설과 거의 같은 내용이 된다. 심지어 일부 문장까지 똑같다.
앞서 본 <고구려본기>의 이설은 <백제본기>의 온조 건국 전승에 의거한 것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고구려로부터 내려오는 전승 자료에는 이러한 졸본부여와 관련된 전승은 없었다고 보아도 좋겠다. 그런데 <백제본기>에는 또 다른 전승이 전한다. 온조 시조 전승 중에 세주로 이설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몽이 졸본에 도착하여 월군(越郡)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두 아들을 낳았다."
졸본부여 왕의 딸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월군의 여자(越郡女)'를 아내로 맞았다고 한다. 이 월군이 지명인지, 혹 인명인지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본래 이 전승이 이렇게 매우 간략했는지, 아니면 백제본기 편찬자가 앞뒤를 생략하고 본문과 다른 내용만 간추린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두 전승에서는 모두 주몽이 졸본 지역의 선주 세력과 혼인을 맺고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백제본기>에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과정에 대한 또 다른 전승을 전하고 있다. 아마도 독자분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전승일 게다. 이른바 비류 시조 전승이다.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그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 왕(北夫餘王)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이었고,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로 졸본 사람 연타발(延陀勃)의 딸이었다. [소서노는]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 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이는 비류이고 둘째는 온조이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뒤에 주몽이 부여(扶餘)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전한(前漢) 건소(建昭) 2년[서기전 37년] 봄 2월에 남쪽으로 도망하여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소서노를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주몽은 그녀가 나라를 창업하는 데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총애하고 후하게 대접하였고, 비류 등을 자기 자식처럼 대하였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禮氏)에게서 낳은 아들 유류(孺留)가 오자 그를 태자로 삼았고, 왕위를 잇기에 이르렀다."
위 비류 시조 전승은 해부루와 우태, 연발타와 소서노, 주몽 등 등장인물이 많고 이야기 요소가 풍부해서 서사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고구려본기> 주몽 전승의 밋밋한 내용과 비교된다. 특히 소서노의 존재가 눈길을 끈다.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우고, 나중에는 아들 비류, 온조와 함께 백제를 세웠다. 즉 소서노는 고구려와 백제라는 두 나라의 건국에 깊이 개입한, 아니 실질적으로 숨은 건국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소서노라는 여주인공이 갖는 이미지가 현대인들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외에도 이것저것 따져볼 게 많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주몽이 과연 졸본에 도착해서 졸본부여 왕의 둘째 딸이든, 아니면 월군녀(越郡女)이든, 아니면 소서노이든 졸본 지역 선주 세력과 혼인해서 손을 잡고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이런 전승의 실체가 무엇인지만 짚어보기로 하자.
먼저 이 세 전승이 모두 <백제본기>에 등장하는 전승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으로서 당당한 혈통을 자랑하는 고구려 건국 시조라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듯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이런 전승은 고구려에서 전해져 내려온 전승이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백제 건국 설화의 주몽을 고구려 건국 설화의 주몽과 동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구려 주몽 전승과 백제 비류 전승을 합하면 해모수와 해부루, 금와왕과 우태, 유화와 주몽, 소서노와 비류·온조 등이 얽히고설키는 하나의 장대한 서사가 만들어진다. 고대의 신화와 설화 등이 별로 전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주몽을 둘러싸고 앞뒤로 이어지는 이런 역사 내러티브에 솔깃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려면 먼저 다음과 같은 의문에 대해 가능한 답들을 찾아가야 한다. 백제 건국 설화에 왜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이 등장하는 것일까? 백제의 시조인 온조, 비류가 주몽의 친아들이든, 의붓아들이든 주몽이 세운 고구려에서 남하한 인물이기 때문일까? 주몽과 온조·비류를 실존 인물로 보아도 좋을까? 그렇다면 주몽 전승과 온조, 비류 전승을 하나의 역사 내러티브로 통합하는 이야기가 역사상 가능할까?
주몽과 소서노가 설화의 주인공이냐 아니면 역사상 인물이냐를 따져보는 물음이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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