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슈머, 크라우드펀딩으로 브랜드를 키우다

조유빈 기자 2022. 4. 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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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크라우드펀딩은 대세가 됐나
신제품 만들고 브랜드 키우는 펀딩의 힘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팬(Fan)은 힘이 세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심사위원의 판단도 존재하지만, 국민투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팬들은 스타성이 보이는 참가자에게, 좋아하는 팀에 투표를 한다. 내가 뽑은 참가자가 무대에 오른다. 팬들은 그 스타의 노래를 듣거나 무대를 보고, 콘서트에 가고, 굿즈를 산다. 팬이 스타를 만든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소비한다. 이들이 바로 '팬슈머(Fansumer)'다.

이제 팬슈머의 영역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팬들이 제품을 만들어내고 브랜드도 키워낸다. 과정은 비슷하다. 여러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플랫폼 속에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품들의 스토리가 있다. 유용해 보이는 것, 나에게 필요할 것 같은 제품,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상품, 그 어떤 것에도 '펀딩'할 수 있다. 목표금액이 모이면 제품은 탄생한다. 소비자가 상품을 만든다. 그리고 소비한다. 이제 팬슈머들은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는 손'이 됐다. 바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다.

소비권력이 생산에 미치는 영향

크라우드펀딩은 생산자의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수요자들이 투자를 하는 개념이다. 기존에는 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대부분 전문 투자자나 금융권의 힘을 빌려 사업을 진행했다. 크라우드펀딩은 소비자의 힘을 빌린다.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펀딩을 통해 초기 고객을 확보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국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를 통해 살펴보자. 펀딩에는 두 가지가 있다. 보상형 펀딩과 투자형 펀딩이다. 보상형은 펀딩 금액에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것이고, 투자형은 펀딩에 대한 보상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소비자 혹은 해당 브랜드의 잠재적 팬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지지해 미리 투자한다는 개념에서 그 결은 같다. 핵심은 이제 소비권력이 생산 과정에까지 미치게 됐다는 점이다.

얼마나 많은 제품이 소비자들을 통해 탄생할까. 지난 한 해 동안 1만1000건의 프로젝트가 열렸고, 165만 명의 서포터(수요자)가 펀딩에 참여했다. 와디즈 플랫폼 내 누적 펀딩액은 6580억원(2022년 3월 기준)을 돌파했다. 크라우드펀딩이 가장 활성화된 분야는 패션·잡화다. 17개 카테고리 중 가장 많은 프로젝트(3000건)가 열렸다. 푸드(2000건), 홈리빙(1800건)이 그 뒤를 잇는다. 펀딩 모집액을 기준으로 보면 패션·잡화(337억원), 테크·가전(298억원), 홈리빙(227억원) 순이고, 뷰티와 푸드 분야도 5위 안에 들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빛을 보게 된 제품과 브랜드도 많다. 군의관들이 훈련 때마다 탈수 증상을 보이는 군인들을 위해 만들어낸 링티는 1만 명으로부터 6억원의 펀딩을 받아 탄생한 제품이다. 오비와 하이트에 이어 77년 만에 등장한 국내 토종 맥주기업 세븐브로이는 2016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회사를 열었고, 강서맥주에 이어 서울, 한강, 양평 맥주까지 출시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리워드형 펀딩을 통해 소고기를 성공적으로 선보인 프리미엄 한우 브랜드 설로인은 외식 자회사인 삼정하누의 투자형 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7억원이 넘는 자금을 모았다.

팬덤을 결집시킨 로보트 태권브이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위)와 한정판 옥스퍼드 근정전 블록(아래) ⓒ와디즈

팬덤의 결집이 이뤄지는 이유

펀딩 프로젝트는 투자유치의 발판으로도 기능한다. 현재까지 펀딩을 선보인 메이커(생산자)는 2만 팀에 달하는데, 이들 중 100팀이 4000억원이 넘는 후속 기관 투자유치에 성공하면서 시장성이 검증된 스몰 브랜드 시장을 만들어냈다. 펀딩을 통해 푸드테크 스타트업으로서의 저력을 보여준 설로인은 지난해 7월 16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명품 커머스 플랫폼 트렌비 역시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대중의 자금을 모아 후속 투자유치에 성공한 사례다.

최근의 크라우드펀딩 시장을 움직이는 키워드를 보자. 3년간 카테고리별 펀딩 모집금액 성장률을 살펴보면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분야가 있다. 캐릭터·굿즈(5.6배)와 게임·취미(2.4배) 분야다. 특히 캐릭터·굿즈 분야는 펀딩 모집금액과 참여자 수, 오픈 프로젝트 수 3개 항목에서 모두 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 '팬덤'을 주축으로 하는 카테고리의 성장은 곧 팬슈머가 크라우드펀딩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경은 스토리다. 펀딩에 참여하는 이들은 프로젝트의 스토리에 주목한다. 캐릭터나 게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스토리와 프로젝트의 의미가 더해지면서 팬슈머를 이끈다.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자발성과 연결된다.

완구사 옥스퍼드와 협업한 한정판 옥스퍼드 근정전 블록은 광화문 블록에 이어 1억원이 넘는 펀딩 금액을 모았다. 태권브이 '찐팬'이 디지털 변환과 영상 복원 작업을 통해 선보인 로보트 태권브이 전편 블루레이 패키지는 환갑이 된 고객에게도 환영을 받았다. 메이커가 모으지 못한 개정판 판본을 서포터가 기증해 태권브이 만화책 복원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사례도 있었다. 이 외에도 추억의 만화 캐릭캐릭체인지 굿즈, 펭수 굿즈와 같은 캐릭터 제품부터 코카콜라 굿즈 등 브랜드 로고를 입힌 아이템, 인기 아이돌 굿즈까지 다양한 분야의 팬덤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결집한다.

이런 '취향 소비'에 발맞춰 IP프로젝트도 등장했다. 플랫폼이 IP를 정식으로 확보한 후, 다양한 메이커에 이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메이커들은 유명한 IP를 활용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고, 팬슈머들은 좋아하는 캐릭터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잔망루피, 메이플 스토리 등 팬덤이 존재하는 캐릭터·게임을 활용한 상품 프로젝트가 와디즈에 연이어 오픈되는 이유다.

환경을 생각하는 그린메이커의 프로젝트도 펀딩을 통해 이뤄진다. 쓰레기를 수집해 작품으로 만드는 이티씨 블랭크의 오브제 ⓒ와디즈

'가치소비' '상호 소통'이 MZ세대 모아

서포터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가치소비'다.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에 응원을 보내는 MZ세대의 미닝아웃 성향은 크라우드펀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크라우드펀딩은 브랜드의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기까지 의미 있는 스토리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는 이 스토리에 주목한다. 환경의 가치가 담긴 프로젝트에 대한 팬들의 응원이 이를 증명한다. 와디즈의 친환경 관련 프로젝트 오픈 수는 2014년 대비 38배 증가했고, 총 펀딩 금액은 63억원(2021년 8월 기준)에 이른다. 이면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리패드는 세 번의 펀딩에 연이어 성공했고, 해안가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집해 오브제로 만드는 프로젝트는 2800%가 넘는 펀딩 달성률을 기록했다.

업사이클링, 재활용, 유기농 등 환경을 생각하는 프로젝트들이 가치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나의 '필요성'이 아닌,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응원도 펀딩을 통해 이뤄진다. 시각장애인용 기타 교재를 만드는 펀딩, 유기동물 보호소를 대중화하기 위한 프로젝트 등 소셜·캠페인 분야에서도 '착한 펀딩'이 모이고 있다. 진행 과정을 공개한다는 점, 서로 소통하면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MZ세대가 크라우드펀딩을 선호하는 배경이다. 더메디닥터의 바를참스킨은 고객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단일 제품으로 5억원이 넘는 펀딩 금액을 모았다. 필요한 점과 개선점을 소통하며 더 나은 제품 제작에 참여한다는 것에 대한 호응이 이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펀딩을 통해 성공한 프로젝트는 그 스토리와 제품력을 인정받는다. 성공한 프로젝트는 앵콜 펀딩을 통해 소비자들을 다시 만난다. 제품에 만족한 소비자들은 프로젝트 재오픈을 직접 요청하기도 한다. 와디즈가 펀딩으로 성장하고 검증된 제품을 모아 운영하는 '팬집샵'은 이렇게 제품을 발굴하는 팬슈머의 힘과 그들이 발굴한 제품의 가치를 인정한 결과물이다. 소비자가 직접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경험하고, 입소문을 낸 제품은 플랫폼 MD가 골라 진열한 제품들과 차원이 다른 힘이 있다. 그래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의 영역은 본격적으로 확장된다.

펀딩 플랫폼은 홍보 채널이 없는 스타트업, 자금 수혈이 필요한 작은 기업들의 발판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기업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진입한다. 단기간에 시장성을 검증할 수 있고, 소비자의 피드백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특히 MZ세대 고객들에게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려는 대기업의 TF팀, 사내 벤처들이 신규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채널로 펀딩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삼양식품, 대상, 농심, 풀무원 등 국내 대표 먹거리 기업들이 이미 신제품을 들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진출했다.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기까지의 스토리를 전하고, 그 스토리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의 팬심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산업의 불완전성, 어떻게 해결할까

크라우드펀딩은 메이커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투자 또는 후원 목적으로 시작된 비즈니스다.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펀딩'하는 개념이다 보니, 투자자가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다. 특히 킥스타터나 인디고고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도 일명 '먹튀'나 제품 배송이 연기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투자에는 리스크가 존재하며, 메이커들의 자율성을 해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환불 규정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빛을 볼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가 존재하는 반면, 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이나 이미 다른 쇼핑몰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 제품으로 펀딩 금액을 모집하는 사례가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펀딩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시제품이 갖춰진 프로젝트에 펀딩하라' '오픈마켓에 동종 제품을 검색해 보라' '회사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라' '앵콜 펀딩 제품을 주로 선택하라' '제품의 원산지 표기를 살펴보라'는 팁이 공유되기도 한다.

실제 크라우드펀딩에는 전자상거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크라우드펀딩 산업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에는 전자상거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바 있다. 와디즈는 심사 과정 중 제기된 펀딩금 반환 기간 연장 및 중개업체의 책임 규정 등 권고 사항을 자진 수용해 리워드 수령 후 단순 하자가 발견되거나 배송이 지연됐을 경우 펀딩금 반환을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을 14일로 확대하고, 글로벌 펀딩의 경우에는 전자상거래법을 적용해 7일 내 단순 변심에 의한 반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프로젝트 중 고객의 평점이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는 와디즈 스토어를 통해 판매되는데, 와디즈 스토어 상품은 크라우드펀딩 리워드와 달리 전자상거래법의 적용을 받는다.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단순 변심에 의한 환불이 가능하다. 와디즈 측은 "산업이 가진 불완전성에 대한 책임중개를 강화하기 위해 펀딩금 반환 정책, 메이커 이력 관리 등을 통해 자정 작용을 강화하고, 펀딩 생태계를 건강하게 키워나갈 장치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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