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헤어질 결심', 영원히 잠들지 못할 불면증 같은 로맨스

강효진 기자 2022. 6. 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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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질 결심. 제공ㅣCJ ENM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영화 '헤어질 결심'이 마침내 박찬욱 감독을 긴장하게 만드는 국내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21편의 경쟁작 중 압도적인 평론가 평점 1위를 기록한 이 영화. 못 봤을 땐 미치게 궁금하고, 보고 나면 잠 못 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 투자·배급 CJ ENM)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수사와 로맨스, 의심과 관심이 같은 비중,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긴장과 설렘 중 어느 감정에 집중해서 보느냐는 관객의 마음에 달렸다.

▲ 헤어질 결심 스틸. 제공ㅣCJ ENM

스토리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엔 중요한 포인트가 많다. 벽지, 색감, 음악까지 구석구석 '박찬욱 냄새'를 '폴폴' 풍기지만 예고편만 봐서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뭔가 섬세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인데 왠지 잔혹하고 충격적일 것도 같은 예감을 받았다면 정답이다. 박찬욱 감독의 주특기를 총동원한 스타일과 노하우의 결정체다. 까다로운 한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화려하지만 심플하고,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매혹적인 영화를 완성했다.

피 튀기는 박찬욱 표 잔인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관객이라면, 이번엔 안심하고 봐도 좋을 만큼 시각적으로는 순한 맛이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지독하게 폭력적이고 잔혹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곱씹을수록 빠져나오기 힘든 감정의 덫이다.

이번 작품은 모호필름에서 만든 가장 '모호'한 영화이기도 하다. 대사, 소품, 캐릭터, 작품의 모든 상징적 요소가 미묘한 경계에 놓인 것들로 채워졌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얼핏 보면 '헤어진다는 건가' 싶지만, '헤어질'은 아직 헤어지지 않은 상태, '결심'은 아직 실행하지 않고 마음에 품은 상태다. 어떻게 될진 모를 일이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서래의 의상은 초록색으로도, 파란색으로도 보인다. 서래의 집 벽지는 파도처럼 보이기도, 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눈에 띄게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건 해결에는 최첨단 전자기기들이 핵심이 된다.

▲ 헤어질 결심 미장센 스틸. 제공ㅣCJ ENM

'모호한 언어'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다. 한국어를 '적당히' 할 줄 아는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삼아야 했던 이유다. 서래의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라는 대사처럼 번역 어투를 듣는 순간 튀어나오는 미묘한 이질감을 의심의 씨앗으로 삼았다. 해외 관객들보다 한국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와닿을 포인트다.

'서래'라는 캐릭터는 보기 드물게 독특하고 종잡을 수 없는 복합적 인물이다. 비밀스럽고, 거침없고, 때로는 '짠'하고, 치명적으로 매혹적이다. 대놓고 의심스러운 사망자의 아내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극적인 로맨스의 설득력을 위해서는 누가 봐도 아주 아름다운 주인공이 필요한데, 탕웨이는 모든 조건에 적격이다. 눈빛, 목소리 등 배우가 가진 본연의 매력도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서래 대사의 중요도가 상당함을 파악하고 문법부터 한국어를 공부한 보람도 엿보인다. 글자 그대로 발음을 외우지 않고 의미를 이해한 뒤 감정을 실은 덕에 더 애틋하게 와닿는다.

▲ 헤어질 결심 탕웨이(왼쪽), 박해일. 제공ㅣCJ ENM

외신에서 '칸 여우주연상' 가능성이 거론됐을 만큼 영화 속 탕웨이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지만, '해준'이 맡은 밸런스는 눈에 띄지 않게 완벽하다. 지독한 불면증을 앓고, 살인 사건을 사랑하고, 깔끔하고, 친절하고, 예의 바른 형사라는 흥미로운 설정의 캐릭터가 겪는 극적인 감정선을 섬세하게 컨트롤한다. 해준이 중심을 잡고 단단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이에 서래의 매력이 물안개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잠식한다. 정신 차려보면 갇혀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느낌과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이 동시에 드는 엔딩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그리고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처럼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을 잠 못 들게 할 강렬하고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오는 29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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