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 소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어딘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는 여인.

주인공을 드러내는 배경이나 특정 사물 없이 그려진
매우 단순한 그림인데요.
사실 이 그림이 등장했을 당시 작품은
공포스런 소문에 휩싸였습니다.

그림이 발표되기 2년 전,
작가 윌키 콜린스의 <흰옷을 입은 여인>이라는 공포소설이 유행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 그림을 그렸던 화가가
시름시름 앓다 생을 마감하며 크나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요.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이 작품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흰색 교향곡 1번>입니다.

미국 출신 화가 휘슬러
이 작가는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대 많은 화가들은 물감의 발달, 표현의 발달과 함께
더 많은 색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는데요.

휘슬러는 반대로 색이 없는
무채색에 관심이 많았죠.

검은색과 흰색
사실 색이라기보다 명암에 가까운 이 요소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요.

그가 그린 <검은색과 회색의 구성: 화가의 어머니>라는 그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어머니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 듯
작품의 주요 요소를 이루는 검은색과 흰 색에 대한
탐구가 더 중요했죠.

캔버스 안에서 검은 색과 흰 색이
인물과 배경에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실험한 것이죠.

하지만 화가의 의도와는 달리
이 그림은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 담긴
어머니의 초상화로 유명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주로 검은색과 회색을 사용해 연구했다면
이 그림은 좀 다릅니다.

이 초상화는
이전보다 훨씬 밝은 흰색으로 그려냈는데요.

이 여인의 이름은 조안나 히퍼넌
바로 휘슬러의 연인이자 뮤즈입니다.

조안나는 휘슬러의 정식 부인이 아니었음에도
스스로 휘슬러의 성을 따와
애벗 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휘슬러는 그를 하얀 드레스 색깔처럼
청순하고 순결한 분위기로 그려냈는데요.

이와 반대로 발 밑에는 사나운 동물의 얼굴이 달린 모피를 그려넣었습니다.
순백의 옷 속에 내재한
정열과 동물적 야성을 나타내려 했죠.

조안나를 매우 사랑했던 휘슬러는
그를 모델로 하여 여러 걸작을 남겼습니다.

조안나의 정면 모습을 나타낸
<흰 색교향곡 1번>외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조안나에 대한 사랑을 담아냈죠.

휘슬러는 이 그림을 통해 사랑하는 대상을 담으면서
무채색인 ‘흰 색’에 대한 연구를 담아냈습니다.

휘슬러는 한 가지 색으로 다양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톤하모니 기술을 시도하고자 하였죠.

19세기 말에는 인상주의자들을 비롯
당대에는 색은 빛에 의해 변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는데요.

휘슬러는 달랐습니다.
휘슬러는 빛 뿐만 아니라 사물의 질감에 따라서도
색이달라질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의미한 질감에 의한
하얀색의 변주였습니다.

같은 검은 색상의 옷을 입어도
면 재질과 벨벳 재질, 가죽 재질의 블랙이 모두 다른 것처럼

흰색 또한 위치와 크기, 이웃한 색상에 의해
느낌이 달라지는 지점을 포착한 것이죠.

하지만 그의 <흰색 교향곡>은
그림 자체도 너무 밋밋하고 차분하다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습니다.

특히나 당시 유행한 공포 소설과 엮이며
흰색 신드롬에 편승하는
그림으로 간주되어 혹평을 받았죠.

<흰색 교향곡 1번>은 당시 권위있는 기관이었던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서는 물론
파리 살롱전에서도 거부되었는데요.

살롱전은 기존의 고전주의 작가들이 심사를 장악하고 있어
도전적인 작품들이 선정되기 힘들었죠.

1863년 살롱전에 떨어진 자들의 작품을 모아
‘낙선전’이 열렸는데요.

이 그림은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등
다른 진보적인 예술가들의 작품과 함께
<하얀 옷을 입은 소녀>라는 제목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은
이 낙선전을 통해 주목받게 되는데요.

유명 공포소설과 제목이 비슷해 주목받은 동시에
세계적 월간 미술지의 비평가가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비평가는 이 작품의 풍부한 흰 색 표현에 감탄했고
이 작품을 “흰색의 교향곡”이라 평했죠.

휘슬러는 이 표현을 마음에 들어했고,
이후 그리는 작품에도 야상곡, 편곡, 교향곡과 같이
음악 용어를 차용한 제목을 붙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이내
그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휘슬러는 당시 유명세를 타던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와 친분을 쌓게 되는데요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는 그들의 철학이
서로 맞닿았기 때문이죠.

먼저 유명세를 탄 쿠르베는 휘슬러의 후견인으로서 아꼈는데요.
하지만 흰 색 교향곡 속 주인공
‘조안나’를 두고 둘의 사이는 갈라서게 됩니다.

휘슬러는 존경하는 선배 쿠르베에게
자신의 연인 조안나를 자랑하며 소개했습니다.

문제는 쿠르베도 그녀에게 끌리게 된 것이었죠.
어느 날, 휘슬러가 국외로 떠나야 할 일이 생겨
조안나에게 잠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였는데요.
휘슬러가 여행을 다녀온 사이에
쿠르베가 한 그림을 발표합니다.

바로 <잠>이라는 작품입니다.
두 여자가 서로 나체로 엉켜 잠든 모습을 그린 것인데요.

한 여인은 붉은 머리이고 다른 여인은 금발이지만,
몸매와 얼굴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두 여자는 모두 조안나를 모델로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안나의 붉은 머리카락 색깔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로, 곧 그녀를 의미했기 때문이죠.

이후에도 쿠르베는 <조의 초상화>, <아름다운 아일랜드 여인, 조> 등
조안나의 애칭인 조를 사용해
작품 속에 조안나를 그려냈습니다.

휘슬러는 결국 이 문제로 쿠르베와 조안나 모두와 갈등을 빚게됩니다.
1869년, 결국 7년의 연애가 끝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흰색의 여운은
휘슬러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는데요.
흰색 교향곡 시리즈를 그리고 난 후
그는 몸져눕게 됩니다.

바로 백색 안료 때문이었죠.
휘슬러는 흰색 안료 중
특히 연백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연백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은처럼 빛이 나는 특성이 있어 실버 화이트,
작은 조각처럼 번쩍인다고 하여 플레이크 화이트라고도 합니다.

매우 밝은 흰색을 내는 이 연백은
많은 납 성분이 들어있는 발암 물질이었습니다.
휘슬러는 흡족한 색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는데요.

그가 원했던 완벽한 흰색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색이었습니다.
때문에 연백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흰색의 매력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이 납에 중독되어 병들어가는 도중에도
연백을 계속해서 사용하였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물감이 풍부하지 않아
작가가 직접 물감을 만들어 사용해야 했는데요.

가루를 따뜻한 항아리에서 꺼낼 때
납 증기가 한번에 나오며
이를 마신 화가의 신경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죠

흰색 배경 위에 흰색 옷을 입은 여인
작품을 완성한 화가는 몸져눕습니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연백에 노출된 휘슬러는
말년에 10여년 동안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납니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납 중독 때문이라 예측하고 있죠.

연백은 화학반응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검게 변색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현재 그의 작품을 보면 이미 많은 부분에
검은 변색과 손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그의 작품에선
그가 나타내고자 했던 순백의 여인을 만나볼 수 없습니다.

휘슬러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색에 대한 연구를 놓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추상회화를 비롯해
현대의 수많은 화가들은 그의 색과 질감표현에서
영감을 얻었다 말하기도 하죠.

순백의 흰색을 사랑했던 제임스 맥닐 휘슬러.

흰색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그의 그림 속에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