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86] 기장 말미잘탕
말미잘을 먹는다고?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말미잘을 먹는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십전대보탕이나 용봉탕처럼 보양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해서 ‘말미잘탕’으로 유명한 기장군 일광면 학리마을을 찾았다. 마을 앞 물양장에는 곳곳에 붕장어를 잡는 주낙틀(낚싯바늘을 끼운 큰 함지박)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붕장어는 긴 몸줄에 많은 낚시를 매달아 청어, 정어리, 고등어 등을 미끼로 잡는다. 이 주낙에 간간이 올라온 불청객 말미잘을 20여 년 전부터 식탁에 올리기 시작했다. 말미잘은 주낙만 아니라 통발이나 그물에도 곧잘 잡힌다. 식용으로 사용하는 말미잘은 학리, 칠암, 신암 등 기장군 동쪽 바다의 수심 깊은 곳에서 잡히는 해변말미잘이다.
수산물이 그렇듯 잡아온 말미잘은 씻지 않고 수족관에 넣어야 신선도가 유지된다. 조리하기 직전에 흐르는 물에 바락바락 문지르고 닦아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내장을 빼낸 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생각한 것보다 커서, 물을 품고 있을 때는 어른 주먹만 하다. ‘자산어보’에는 말미잘을 ‘석항호’, 속명으로 ‘홍말주알’이라 했다. 그리고 ‘형상은 오래 설사한 사람의 삐져나온 항문과 같다’고 했다. 아주 직관적인 표현이다. 덧붙여 ‘뭍사람들은 국을 끓여 먹는다고 한다’고 했다.
학리마을에는 대여섯 집이 말미잘탕을 내놓고 있다. 두 명이 먹기 적당한 말미잘탕에는 말미잘 두 마리에 붕장어 한 마리가 들어간다. 붕장어탕은 국물 맛이 좋지만 식감은 부족하다. 반대로 말미잘은 육수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좋다. 서로 보완하며 완벽한 탕을 이루는 찰떡궁합이다. 여기에 채소와 방아잎을 넣어 비린내와 잡내를 잡았다. 말미잘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탕만 아니라 수육으로 내놓기도 하고, 건조해 양념구이로 내놓는 곳도 있다. 그냥 붕장어탕이라면 누가 구석진 목에 자리하는 마을까지 가겠는가. 붕장어탕보다 ‘말미잘탕’이라 하니 일부러 식객들이 찾아온다. 장어와 가자미를 잡는 낚시에 눈치 없이 올라와 마을을 살리는 효녀 노릇을 하는 셈이다. 마을 당할매가 현신한 것인지 고맙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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