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일본 도쿄도 시나가와구의 한 보건소.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늘자 천장까지 테이프를 붙인 수제 그래프가 등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금은 2022년이고, 이거 그냥 엑셀 작업하면 되는 건데… 실제로 일본 공공기관에서는 코로나 감염자 수를 팩스로 받아 수기로 직접 집계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고 한다. 유튜브 댓글로 “일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날로그를 좋아할까”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일본 사람들은 왜 아날로그를 사랑할까

일본이 온몸으로 디지털화를 거부한다는 건 사실일까. 세계 1등 버츄얼 유튜버(V-Tuber)의 나라이고 게임회사 닌텐도와 세가의 본고장인데? 믿기지 않아 그 이유를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이게 레거시(Legacy·유산) 시스템이죠. 팩스라든지 유선 전화 같은 거.”
여기서 잠깐, 레거시 시스템이란 현재까지 사용되는 과거의 체계를 뜻한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이 레거시 시스템이 일본이 갖춰진게 80년대거든요. 전국적으로 가정마다 팩스가 설치되고 시스템이 갖춰졌는데 이후에 90년대 버블 붕괴한 이후에 후속 투자가 안 된 거예요.”

그러니까 교수님 설명은 80년대 일본이 한창 호황일 때 전국적으로 팩스 시스템을 갖춘 후 아직도 그때 그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

고도성장기를 이끈 건 전후 1947~1949년 출생한 이른바 ‘단카이(덩어리라는 뜻) 세대’. 이들이 구축해놓은 일본사회 시스템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한다는 건데,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30년’이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듯 하다.

비유하자면 인프라가 오래된 서울 종로구에는 1차로 길이 많고 90년대 개발된 강남구에는 5차로 길이 많은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다. 1차로로 깔아놨으니 못 바꾸겠다! 이런 셈.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분위기는 초고령화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고 한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고도 성장기를 지나서 가장 일본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일본의 세대들이 이제 고령화, 초고령화 이렇게 되면서 예전에 사용하던 시스템이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하겠죠. 이분들은 바뀌기 어려우니까요."

이건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지난해 7월 보도인데 고노 다로 행정규제개혁상이 ‘팩스를 폐지하고 메일을 사용하라’고 지시하자 들어온 항의 서한만 400여건이었다고 한다. 이유도 다양했는데 ‘메일은 사이버 공격에 의한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 ‘지방 기관에서는 통신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 ‘국회에서는 여전히 팩스를 사용한다’ 등.

결국 참다못한 일본 정부가 칼을 꺼내 들었으니 지난해 9월 일본 디지털청을 설립한 거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국회도서관이 작성한 ‘일본의 디지털청 주요사업 진행현황’ 보고서를 확보했는데 디지털청의 핵심은 이렇다.

첫째, 2025년까지 정부 클라우드 서비스인 ‘Gov-Cloud’를 구축해 팩스와 수기로 서류를 보내는 걸 금지.

둘째, IC칩이 내장된 카드에 얼굴 사진과 이름, 주소, 생년월일, 마이 넘버 등 정보를 기재한 ‘마이 넘버 카드’를 전 국민에게 보급. 예를 들어 일본인 A씨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으면 마이 넘버 카드에 증명서가 기록되고 그 기록은 보건소와 중앙 정부에 실시간 집계된다.

언뜻 보면 그렇게 대단하게 바뀌는 것 같지는 않은데 정~~~말 쉽지 않은 문제라고 하니… 마이 넘버 카드에 가입하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최대 20만엔(195만원)까지 주겠다고 당근책도 제시했지만 보급률은 1월 기준 41%에 그쳤다.

일본 정부가 디지털청에 책정한 올해 예산은 4720억2600만엔(4조5963억원)에 달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일본의 아날로그 사랑은 80년대 일본 황금기에 갖춰진 레거시 시스템이었다는 것. 하지만 일본을 아날로그밖에 모른다고 놀리는 건 좀 위험할 수 있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지금은 일본에 비해서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디지털화나 이런 부분들이 앞서있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사실 이거는 금방 또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예컨대 중국 같은 경우에는 현금을 쓰다가 카드 안 쓰고 바로 QR코드 이렇게 넘어가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