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또 다른 재미, 공인구의 변천사

배진경 2022. 5. 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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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안과 밖] 축구공의 역사는 곧 축구의 역사다. 조 추첨, 유니폼 발표와 함께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여는 신호탄으로 공인구 공개 행사가 꼽힌다. 1970년부터 아디다스가 공인구를 공급한다.
3월30일 FIFA가 공개한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공인구 ‘알 리흘라’. 아랍어로 ‘여행’이라는 뜻이다. ⓒAFP PHOTO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다. 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경기를 할 수 있다. 규칙도 간단하다. 상대 골문에 공을 먼저 (혹은 더 많이) 넣으면 이긴다. 프랑스 작가 장 지로두는 “공이 지닌 최대 능력을 실현”하는 데 축구의 비밀이 있다고 했다. 소유하거나 빼앗기거나. 공이 중심이다. 둥근 형태의 물체를 차고 놀았던 축구의 기원부터 첨단소재와 기술이 결합한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축구공의 역사는 곧 축구의 역사였다.

축구공은 월드컵에서도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다. 조 추첨, 유니폼 발표와 함께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여는 신호탄으로 공인구 공개 행사가 꼽힐 정도다. 이번에도 축구공이 가장 먼저 베일을 벗었다. 3월30일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2 월드컵에서 쓰일 공인구 ‘알 리흘라(Al Rihla)’를 공개했다. 아랍어로 ‘여행’이라는 뜻이다. 본선 32개국이 공 하나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상징한다.

처음부터 공인구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 월드컵에서는 대부분의 팀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공을 활용했다. 팀마다 쓰던 공의 크기와 재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축구사에는 이와 관련한 신경전이 몇 차례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사건의 무대는 1930년 월드컵 결승전이다. 결승에 오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서로 자국의 공을 쓰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의 공을, 후반전에는 우루과이의 공을 사용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이 역사가 되었다.

실전에서 쓰는 시합구는 196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 독일 스포츠용품 브랜드 아디다스가 선도한 작업이었다. 이에 맞춰 월드컵에서 사용할 공의 규격에 관한 규정도 생겼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이 규정을 적용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FIFA와 독점 파트너십을 맺은 아디다스가 공인구를 공급하고 있다.

1970 월드컵의 공인구 ‘텔스타’는 여러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축구공의 형태라는 점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갖는다. 흰색이나 오렌지색, 노란색 등의 외피였던 기존 축구공과 달리 검정 오각형(12개)과 하얀 육각형(20개)의 패널(가죽 조각)로 이어진 공이었다. ‘텔스타’는 ‘텔레비전(TEL) 속의 별(STAR)’이라는 뜻이다. 월드컵은 1970년대 들어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인의 축제가 되었다. TV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기 시작했다. 세계는 작아지고 시장은 더 커졌다. 흑백텔레비전이 상용화된 당시, 흑백 조각들로 만든 축구공은 화면 속에서 시선을 잡아끌었다.

역대 월드컵의 공인구.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텔스타(1970), 트리콜로(1998), 피버노바(2002), 자블라니(2010). ⓒWikipedia

4년 주기로 흑백을 변주하던 공인구의 디자인은 21세기를 앞두고 과감해졌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최초의 원색 공인구가 등장했다. 이름은 ‘트리콜로’인데, 세 가지 색깔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국기의 3색을 활용해 프랑스 전통을 표현했다. 2002년부터는 축구공의 전통적 이미지인 흑백 패널이 사라졌다. 대신 개최국의 전통이나 고유 컬러를 활용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2002년 ‘피버노바’에는 한국과 일본의 특성이 포함된 골드와 레드를, 2010년 ‘자블라니’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1개 부족과 11개 공식어, 축구팀의 11명을 상징하는 11가지 컬러를 적용했다. 이번에 공개한 ‘알 리흘라’는 무지갯빛을 형상화한 컬러가 특징이다. 카타르 전통 진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쯤이면 눈치 챘을 것이다. 월드컵 공인구에는 개최국의 문화와 특성 혹은 시대상을 담은 이름과 디자인이 반영된다. 역대 공인구 이름만 훑어도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월드컵 공인구 소재와 기술의 진화

디자인 혁신은 기술의 진화와 맥을 같이한다. 초기 월드컵부터 1982 월드컵까지 공인구는 가죽 공이었다. 가죽을 자른 조각들을 이어 붙였다. 문제는 악천후였다. 특히 비가 내리면 공이 물기를 흡수했다. 가죽이 늘어나거나 무거워졌다. 발로 차거나 헤더를 시도하면 통증이 생길 정도였다. 공의 체공 시간도 길었다. 1986년 공인구 ‘아즈테카’는 또 다른 기원이라 할 만하다. 인조가죽으로 만든 첫 번째 공이었다. 가죽 공에 비해 한층 가볍고 방수 처리도 쉬워졌다. 당시 월드컵이 열린 멕시코는 고지대, 습한 기후, 딱딱한 그라운드 환경 등 여러 변수를 안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기능성’이라는 공인구의 진보를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스포츠에서 용품의 경량화는 속도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가벼워진 축구공은 엄청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뿐 아니라 새로운 궤적을 만들었다. 가죽 공이 묵직한 직선에 가까웠다면, 인조가죽 소재의 공은 탄성과 반발력 때문에 예측 불허였다. 1994 월드컵에서 “퀘스트라 때문에 선수들의 실수가 많아진다”는 말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공의 소재도 진화했다. 형태는 ‘완벽한 구’를 지향한다(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공은 완전한 구가 아니다). 예컨대 1970년 32개이던 공인구의 패널 숫자는 2014년 6개로 줄었다. 패널 개수가 적다는 것은 봉제선 같은 ‘굴곡’이 줄었다는 의미다. 2022년의 ‘알 리흘라’는 20개의 패널로 다시 늘었지만, 폴리우레탄으로 처리한 표면으로 질감의 안정성과 정밀도를 확보했다고 한다. 기술과 소재의 진화는 축구공 하나에도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안정적으로’라는 모순된 욕망을 담는다.

공에 대한 통제력이 뛰어난 팀이 경기를 주도해온 역사는 자연스럽다. 특히 월드컵처럼 압박의 수준이 높은 무대에서는 좁은 공간이나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 공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자블라니(2010)’와 ‘브라주카(2014)’에 이르러서는 ‘마구를 지배하는 법’이라든가 ‘공인구에 대한 골키퍼의 반응’ 같은 화두도 등장했다. 2010년 월드컵 무대였던 남아공에서는 9개 경기장 중 5개가 고지대에 위치했는데, 자블라니는 고지대에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규칙한 바운드와 궤적 탓에 불평을 쏟아내는 선수들이 많았다. 프리킥으로 연달아 득점을 올린 한국의 박주영은 자블라니 통제 능력으로 외신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우루과이·스페인 등 상대적으로 기술이 뛰어난 선수들이 강세를 보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공을 지배하는 선수들은 월드컵의 주인공이 되었다. 펠레의 유희와 마라도나의 드리블을 지나오던 시절부터 그랬다. 구르고, 튀고, 골 망을 찢는 공에 지네딘 지단이 환호했고 호나우두의 셀레상(브라질 축구대표팀)이 웃었다. 차비 에르난데스의 정교한 감각, 킬리앙 음바페의 번뜩임도 ‘축구공을 지배하는 자가 월드컵을 얻는다’는 승자의 법칙에 충실했다. 이제 곧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언제나처럼 ‘알 리흘라’를 통제하는 선수가 최후의 승자로 기억될 것이다.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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