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 피해액 1년새 5배 늘어.. 경찰 수사 어려워 피해자들 발만 '동동'
피해자 "용의자 특정·계좌 정지 어려워 수사 지연"
"주범 잡기 어려워.. 대포통장 주인 정도만 처벌 가능"
“너가 사업 자금을 빌려주면, 내가 틀림없이 갚겠다”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A(38)씨는 지난해 3월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미프(MEEFF)’라는 채팅앱을 통해 중국 국적의 한 남성을 만났다. 해당 남성은 자신의 얼굴로 추정되는 사진을 걸고 미국에서 보석업자로 일하고 있다며 A씨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두 사람은 줄곧 영어로 대화했고, 남성은 “11월에 한국에 들어간다”고 말하며 A씨를 안심시켰다.
이 남성은 A씨와 두 달 정도 친밀감을 형성한 뒤 A씨에게 사업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사기를 의심하면서도, 해당 남성의 프로필 사진과 그가 일하고 있다며 보낸 사진들이 도용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친밀하게 대화하던 남성이 안타깝게 부탁하니 동정심이 들어 송금까지 했다. 그렇게 보낸 돈이 31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남성의 프로필 사진은 물론, 모든 신상이 거짓이었다. 신종 사기 수법인 ‘로맨스 스캠’이었다.
뒤늦게 사기를 알아챈 A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해당 남성은 오히려 조롱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낼 뿐이었다. A씨는 인근 경찰서에 신고를 접수했지만 경찰 수사는 6개월 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A씨는 무기력증과 상실감에 빠져 있다.
A씨는 “상대방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접근했고, 대화도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다 보니 사기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로맨스 스캠을 당한 뒤로 어떻게 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몰두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경찰에서 피의자 특정이 어려워 수사가 반년 가까이 멈춰있다”고 하소연했다.

신종 사기 수법인 ‘로맨스 스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피의자 특정이 어려워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로맨스 스캠은 채팅앱이나 데이팅앱, 소셜미디어(SNS)에서 이성의 호감을 산 후 결혼 등을 빌미로 돈을 갈취하는 수법을 의미한다.
15일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111콜센터에 접수된 로맨스 스캠 피해 건수는 28건으로, 전년(9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피해액은 20억7000만원으로, 전년(3억7000만원)보다 5배 넘게 늘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채팅앱이나 데이팅앱 사용량이 늘어난 영향이다.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걸 감안하면 피해 사례는 더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 사례는 늘고 있지만, 경찰 수사는 난항이다. 용의자 특정이 어렵고, 범죄에 사용되는 각국 해외 은행계좌의 지급정지 제도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인터폴에 일괄적으로 계좌 동결과 피해금 환수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수사 지연이 발생한다고 판단하고, 주요국 해외 은행계좌 관련 지급정지 제도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로맨스 스캠 수사와 관련해 “로맨스 스캠 사건이 대부분 해외 앱을 이용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사진을 도용하다 보니 용의자 특정이 어려워 수사가 쉽지 않다”며 “사건을 접수해도 해외 앱이 협조하지 않거나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피해자들도 답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가 어렵다 보니 피해자들에게 다시 접근해 2차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기꾼도 있다. 로맨스 스캠 피해자 450여명이 모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박모(42)씨는 “피해자에게 사기당한 돈을 되찾아주겠다며 수수료를 받고 잠적하는 사람이나, 변호사나 흥신소를 사칭하며 접근하는 사람이 많다”며 “심지어는 같은 피해자인 척하며 접근해 같이 소송하자고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이 ‘멍청하다’는 식으로 질책하는 경우도 있어 피해자들이 상처받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로맨스 스캠으로 피해를 입어도 주범을 잡는 경우는 드물다. 가짜 신원이나 가짜 계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경찰 수사가 마무리돼도 피해 금액이 입금된 대포통장 계좌주 정도만 처벌이 가능한 실정이다.
하진규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변호사는 “로맨스 스캠이 대부분 해외 앱과 대포통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범을 잡기는 어렵다”며 “인스타그램처럼 유명한 앱을 사용해도 가짜 계정인 탓에 본범을 잡는 것은 보이스피싱과 마찬가지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현금 인출책이나 대포통장 계좌주들은 사기 방조 혐의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할 순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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