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쿠스코에서 차로 한 시간쯤 가면 만년설 봉우리들이 펼쳐지고 그 앞의 계곡에는 강을 따라 자그마한 마을들이 자리한다. 강의 이름은 잉카의 젖줄이라 부르는 우루밤바Urubamba. 우르밤바강은 피삭, 우루밤바, 오얀타이탐보를 거쳐서 마추픽추를 지나 흐른다. 쿠스코를 중심으로 약 50km 반경 안에 있는 우루밤바강 유역을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이라고 부른다.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은 쿠스코, 마추픽추와 함께 잉카제국의 심장을 형성했던 지역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고대 도시 흔적과 수많은 유적지가 있고, 잉카의 전통문화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오래된 마을들이 있다.
투어버스 대신 콜렉티보를 타다
이른 아침 여행사의 투어버스가 아닌 콜렉티보를 탔다. 남미에서 미니버스에 해당하는 콜렉티보는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해서 가격도 저렴하다. 패키지여행을 하지 않고 콜렉티보나 로컬버스를 이용해서 여행하면 현지의 문화를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자유롭고 여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서 좋다. 더불어 현지인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다.
쿠스코와 마추픽추 사이의 안데스 고산지대인 마라스 평원으로 향한다. 마라스 평원에는 전통마을 친체로, 모라이, 살리네라스 등이 있다. 쿠스코 시내를 벗어나니 벌써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안데스산맥이 끝없이 펼쳐지고, 초원에는 말, 양, 라마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스쳐지나가는 모든 풍경이 너무나 선명하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쿠스코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무지개마을, 친체로Chinchero이다, 고대 잉카 전설에 친체로는 무지개가 탄생한 곳이라고 한다. 우기에 방문하면 친체로 하늘에 뜬 무지개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잉카시대 전통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직물을 짠다. 1607년 만들어진 스페인시대 성당에는 인디오의 검은 피부를 가진 예수 그림과 알록달록한 내부 벽화가 인상적이다. 시장에서는 원주민의 수공예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고 만드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하늘이 잉카인들에게 선물한 소금밭, 살리네라스 소금광산.
진흙 벽돌로 만든 집들 사이로 만들어진 골목을 느릿느릿 돌면서 이웃동네 마실 온 사람처럼 주민들 사는 모습을 엿보다가, 잠시 눈길을 준 할머님의 정성스런 설명에 필요하지도 않은 모자를 기분 좋게 샀다. 이런 작은 마을이 자연스런 모습 그대로 오래도록 남아 있길 바란다.
그런데 친체로에 새로운 공항이 건설된다고 한다. 새 공항이 들어서면 마추픽추 접근성이 좋아지고 일자리도 늘어나겠지만 잉카 유적에 큰 영향이 없을지 걱정된다.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서 깊은 산골짜기의 황토색 계곡에는 바둑판처럼 생긴 염전에 온통 소금이 깔려 있다. 해발 3,000m의 깊은 산중에 염전이 있다니? 하늘이 잉카인들에게 선물한 소금밭, 살리네라스Salineras이다. 바다였던 곳이 융기된 소금 광산이다. 암염이 녹은 염분이 많은 물이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흘러간다. 물이 증발하면 하얀 소금이 남게 되고 그 소금을 채취한다. 1,000년이 더 된 페루의 마지막 소금 광산으로 전통방식 그대로 소금을 만든다. 2,000개가 넘는 계단식 소금밭은 넓이가 4㎡, 깊이는 30cm를 넘지 않고 모두 다각형으로 생겼는데 이는 물이 쉽게 내려가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살리네라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라이Moray는 해발 3,400m 석회암 지대에 만들어진 잉카의 계단식 밭인 안데네스Andenes이다. 언뜻 보기에는 우주선 착륙장 같아 보인다. 크고 작은 4개의 원심형이 모두 계단식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다. 산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만든 계단식 농작지이다. 이곳에서 여러 작물들을 시험 재배했다고 한다. 24개의 계단으로 구성되며 각 층의 높이는 1.5~2m 정도, 가장 아래층에서 맨 위층까지 거리는 140m나 된다. 높이에 따라 온도가 15℃까지 차이 난다고 한다. 계단 간 온도 차이를 이용해 잉카인들은 주식인 옥수수, 감자 등의 품종을 개발했다. 감자는 3,000여 종, 옥수수는 70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척박한 토지에서 곡식을 재배하고 품종을 개발했던 잉카인들의 과학적인 탐구정신이 놀랍다.
작은 마추픽추라고 불리는 오얀타이탐보의 잉카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놀라운 석공술
모라이에서 콜렉티보로 쿠스코로 돌아가기 위해 마라스Maras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때가 한참 지난 시간. 그때 눈에 띈 길거리 식당. 식당 이름도 없다. 몇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다가가니 반갑게 맞아주며 먹고 있던 음식을 설명해 준다.
그런데 길가에 진흙으로 만든 화덕이 있다. 그곳이 주방이다. 어떻게 길가에 큰 화덕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화덕에 있는 음식들을 구경하고 치차론과 튀김을 주문한다. 치차론은 튀긴 돼지고기인데 짭짤하고 찐 감자와 함께 먹으니 잘 어울린다. 튀김은 피망 안에 콩과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튀겼는데 아주 매콤하다. 음식 값은 5솔, 우리 돈으로 2,000원쯤.
작은 마추픽추라고 불리는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는 마추픽추로 가는 많은 관광객들이 거치는 도시이다. 잉카제국에서 오얀타이탐보는 쿠스코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중심지에만도 약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잉카시대 마을 모습도 가장 잘 남아 있다. 구시가지는 ‘칸차’라 부르는 블록으로 나눠지고 각 칸차에는 정문이 하나씩 있고 그 안에 주택들이 있다. 가파른 산비탈에는 계단식 경작지인 테라스가 있고, 거대한 돌로 만든 태양의 신전, 관개시설, 곡식 저장창고까지 있다. 태양의 신전 언덕에 서니 오얀타이탐보 마을뿐 아니라 성스러운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내려다보니 마을 내부를 통과하는 관개시설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당시의 관개용 수로와 하수도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도시를 건설하는 데 사용한 돌은 우루밤바강 반대편의 채석장에서 옮겨왔다. 강물의 흐름을 새로운 수로로 돌리고 강물이 마른 후에 강바닥을 가로질러 이동했다고 한다. 이렇게 가져온 거대한 돌을 다듬어서 신전의 석축으로 쌓아올렸는데 단 한 치의 틈도 없다. 잉카인들은 돌의 마법사임에 틀림없다.
쿠스코 거리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조각수박은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엔 더 없이 좋다.
요새에서 5년간 항거한 잉카인들
오얀타이탐보는 스페인에 맞서 최후까지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이 페루를 정복하는 동안 잉카인들은 오얀타이탐보를 더욱 강한 요새로 만들었고 5년 동안 스페인에 항거했다.
성스러운 계곡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유적지가 피삭Pisac이다. 잉카인들이 살았던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적지이다. 그들은 산비탈을 자르고 돌담으로 고정시켜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테라스를 만들었다. 테라스가 만들어낸 곡선의 물결이 참 아름답다. 거친 들에 뾰족뾰족 솟아오른 선홍색의 선인장 꽃들이 잉카인들처럼 보인다. 산 전체가 하나의 도시였던 곳이니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는 신전, 집 등의 유적지가 산재한다. 망루를 지나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무척 급한 경사길이다. 등산한다고 하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마을에서 전망대까지 거리가 약 4km이다.
전망대에 서니 피삭마을 전체뿐 아니라 우르밤바 강줄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전망대를 지나니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인티와타나가 있다. 인티와타나는 태양을 묶어놓은 돌로 잉카인들이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오니 잉카인들이 거주했던 집터들이 보인다. 이곳의 밭이나 집의 규모로 보아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삭은 입구가 두 곳이다. 피삭 전체를 보려면 한 방향으로 관람을 해야 한다. 여행사 투어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차량이 기다리고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지만 콜렉티보를 이용하는 여행자라면 피삭을 관람한 후에 돌아갈 교통편을 염두에 두고 진행방향을 정하는 것이 좋다.
성당 앞에 펼쳐지는 친체로의 전통시장.
‘독수리여 날개를 펄럭이라’는 뜻을 가진 삭사이와만Sacsayhuaman은 쿠스코의 동쪽을 지키는 견고한 요새 겸 신전으로 쿠스코 시내에서 부담 없이 걸어서 다녀오기 좋은 곳이다. 쿠스코의 유명한 예수상과는 마주 보고 있다. 시간이 된다면 삭사이와만을 보고서 예수상으로 이동해 야경을 보아도 좋다. 삭사이와만은 산 중턱에 있어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대이다.
쿠스코 전체는 퓨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퓨마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 바로 삭사이와만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축대의 모습은 마치 푸마의 이빨처럼 지그재그로 돌출해 있다고 한다. 당연히 삭사이와만은 요새 이상의 종교적 의미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삭사이와만의 성벽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길이가 1,100m에 달한다. 하루 2만~3만여 명이 약 80년에 걸쳐 만들었다니 정말로 놀랍다. 이곳에 사용된 엄청나게 많은 돌들 중에 가장 큰 것은 높이 5m에 무게가 350t에 달한다. 어디서 이 돌들을 옮겨왔는지,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쿠스코 시내의 12각돌처럼 돌과 돌을 물샐 틈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쌓아서 잦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 공법 또한 신기할 뿐이다. 특히 돌 사이에 만들어 놓은 배수구가 참 인상적이다. 잉카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수수께끼다.
스페인 점령 후에 스페인 사람들뿐 아니라 쿠스코 주민들도 이곳의 돌들을 건축 재료로 많이 사용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너무 큰 돌은 옮기지 못해서 쿠스코에 남겨졌다는 것이다.
전통방식으로 직물 짜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친체로의 잉카인.
콜렉티보로 자유여행하기
남미에서 콜렉티보는 미니버스에 해당한다.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해서 가격도 무척 저렴하다. 투어사를 이용하지 않고 콜렉티보나 로컬버스를 이용해서 여행하면 현지의 문화를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자유롭고 여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더불어 현지인들을 만나볼 기회가 많다. 빠르게 여러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느림의 즐거움을 느끼며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
쿠스코 관광티켓 쿠스코에서는 개별 입장권 가격이 엄청 비싸다. 본인이 쿠스코에 머무는 기간과 가고자 하는 곳에 따라서 통합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4종 통합 입장권 : 삭사이와만, 켄코, 탐모이마차, 푸카푸카라
14종 통합 입장권 : 4종 + 모라이, 파차쿠텍, 피삭, 티폰, 피키야타, 친체로, 오얀타이탐보, 쿠스코 역사박물관, 현대미술관, 코리콘차박물관 등 8종
쿠스코의 길거리 음식 남미 쿠스코의 길거리 음식은 다양하다. 구운 옥수수, 돼지 껍데기, 초리소, 과일 등. 특히 각종 과일을 거리에서 팔아서 언제나 쉽게 사먹을 수 있다. 싸고 맛있고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에 딱!! 좋다.
쿠스코에선 수박을 많이 사먹었다. 남미 수박은 너무 커서, 조각피자처럼 자른 조각수박을 거리에서 많이 판다.
츄러스 맛집, 도나도니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발견한 쿠스코 맛집이 도나도니Dona-Dony. 쥬스도 팔고 각종 빵도 팔지만 입구에서 튀겨내는 츄러스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이 줄 서 있다. 한 개에 1솔(약 400원). 달콤한 설탕시럽을 묻혀 준다. 겉은 바삭바삭, 속은 달콤하며 부드럽고 얼마나 큰지 한 끼 식사대용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