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파일] 보도사진과 모자이크

원인은 초상권 보호에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개인은 동의 없이 촬영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초상권자 동의 없이는 사진을 언론 등을 통해 공표할 수 없다. 초상권에 관한 직접적인 조항은 없지만,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과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조항’이 근거다. 인파가 몰린 장소를 촬영한 사진 한쪽에 작게 찍힌 얼굴이라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심지어 공공장소서 열린 행사에 참가한 사람을 찍는 데도 동의가 필요하다. 공공의 목적으로 사진을 사용했다고 해도 초상권자의 ‘동의’가 없었다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때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은 대부분의 경우 초상권자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시민들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04/30/joongangsunday/20220430002640597kmpv.jpg)
반면 우리나라 초상권은 언론 보도의 자유보다 개인 인권에 더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개된 곳에서 찍힌 사진을 두고도 초상권자가 주관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언론에 게재됐다는 사실만으로 증명하기 힘든 피해에 대해 매번 조정과 보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공적 영역의 취재는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 등 국내 대부분 언론사가 사진 출고 전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 빠짐없이 체크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 ‘기록’의 중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는 이미 떠난 사람들이 남겨 놓은 작은 기록의 조각을 모아 그 시대의 삶을 엿본다. 기록이 없다면 기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기록한 사진에서 유대인들의 얼굴이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를 수 있다. 개인의 인권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지만, 그로 인해 한 시대의 주인공이 모자이크된 채로 역사의 기록에 남게 되는 건 안타까운 사실이다. 세월이 흐른 뒤 2022년을 기록한 사진에 온통 모자이크된 얼굴뿐이라면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전민규 사진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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