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현직 바둑기사로 PBA 도전 나선 이재웅

정완주 기자 입력 2022. 6. 24. 17:43 수정 2022. 6. 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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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당구지만 "정상에 오를래요"

바둑은 가로, 세로 19줄인 정사각형 형태의 반상 위에 바둑돌을 놓는 게임이다. 당구는 정사각형 2개의 돌판을 붙인 직사각형 형태의 당구대에서 공을 굴리는 게임이다.

사각형 안의 승부가 공통점인 바둑과 당구를 동시에 정복하기 위한 도전자가 등장했다.

한국기원 소속 이재웅 8단(38)이 그 주인공이다.

바둑기사 겸 당구선수 이재웅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한때 국내 바둑을 호령하던 최철한·원성진·박영훈 등이 그와 동갑내기 기사들이다. 이재웅은 치열한 토너먼트 기사에서 최초의 온라인 바둑게임인 '바투'의 최강자로 군림하다가 바둑을 보급하는 사범으로 변신했다.

최근에는 바둑과 관련한 모든 직책을 버리고 3쿠션 당구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PBA 3부리그 투어에 뛰어들었다. 바둑과 당구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재웅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인 '끈기'와 '노력'을 통해 바둑에 이은 당구의 길을 가려고 한다.

중3 때 프로 바둑 입단...최철한·원성진·박영훈과 동갑내기

이재웅의 유년기는 바둑과 당구가 지배했다. 당구는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바둑은 뜬금없이 5살 무렵 'MBC제왕전'을 TV로 본 뒤 흠뻑 빠져들었다.

그는 부모님을 졸라 바둑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5살 유아를 받아주는 학원이 없었다. 이재웅은 포기하지 않고 바둑과 관련한 VHS 비디오테이프와 책을 구입해 독학으로 바둑을 배웠다. 사실 배운다는 개념이 아니라 내용을 통째로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를 한 것이다. 그는 10살 무렵 바둑학원에 등록할 수 있었다. 

"학원에서 18급 판정을 받고 정식으로 바둑 수업을 시작해 딱 1년 만에 1급까지 올라갔습니다. 제가 살던 인천 지역에서는 또래에서 적수가 없었어요. 그 무렵부터 문체부장관배 전국청소년바둑대회 초등학생부 우승을 하고 전바협 어린이바둑대회 1,2,3회 연속 우승하는 등 성적도 냈죠."

바둑기사 겸 당구선수 이재웅이 인천 주안CC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이재웅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서능욱 9단의 제자로 들어갔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3대 바둑도장의 하나로 꼽히던 도장을 운영하는 김원 7단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늘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대망의 바둑기사 입단에 성공했다. 바둑 입문한 뒤 6년 만이다.

"당시 학교가 서울 녹번동이었는데 분당의 도장까지 오가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는 결단을 내렸죠. 학교 측에서는 시험 때만 나와도 된다고 배려를 해줬지만, 그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퇴를 선택했는데 지금도 후회는 하지 않아요. 중3 때 기사 입단에 성공하자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를 진학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바둑에만 전념했습니다."

사실 한국 바둑의 3대 천재인 조훈현·이창호·이세돌의 그늘에 가려서 그렇지 입문 6년 만에 프로 기사로 입단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보통의 천재형 기사들이 10세 이전부터 바둑에 입문하는 경우와 달리 그는 비교적 늦은 10살의 나이에 시작한 점을 고려하면 더 이례적이다.

바둑기사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지만 20대 초중반까지는 평범한 성적에 머물렀다. 그의 최고 성적은 'KBS바둑왕전', '물가정보배', '국수전' 등 국내 기전 본선 8강이다. 팀 리그가 도입된 한국 바둑리그에서 킥스팀 소속으로 2006년 우승한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7세 무렵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당구장에서 당구 큐대를 잡은 모습, 2006년 한국바둑리그 광주 kixx팀 4장으로 출전한 모습, 바둑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보드게임 Batoo 세계대회에서 우승, 2009년도 바둑프로 당구고수vs아마추어 당구여자고수 대회에서 여자팀 이미래 선수와 결승전에서 맞붙은 모습. (사진=이재웅 선수 제공)

온라인 바둑게임 '바투'로 세계 정상 등극

리그 폐지 후 바둑과 점점 멀어져

이재웅은 2008년 온미디어 자회사인 이플레이온에서 만든 바둑 기반 보드 전략게임인 '바투'(BATOO)에 진출해 바둑 인생의 전환을 모색했다. '바투'는 바둑과 전투를 합친 용어다. 그해 말 'BATOO 스타리그'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BATOO 인비테이션' 대회에는 조훈현·이창호·유창혁 등 국내 최정상급 기사를 비롯해 중국을 대표하는 구리·칭하오 등이 참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재웅은 2009년 '월드 바투리그' 8강에서 '돌부처' 이창호 9단을 꺾은 기세로 결승에서 국내 바둑 랭킹 1위인 최철한을 물리치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게임 형태의 바둑대회에서 대망의 세계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그해 바투 유저들 사이에서 이재웅의 닉네임인 '웅빠'(웅이 오빠의 줄임말)는 아이돌급 유명세를 치를 정도였다.

"절대 강자들을 물리치고 세계 정상에 올라 우승 상금 1억5000만원까지 거머쥐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전략 보드게임 형태가 저랑 맞는 것도 같았어요. 19줄이 아닌 11줄의 좁은 반상 위에 3·3을 두면 5점이나 감점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3·3을 두도록 작전을 구사하는 등 기존 바둑과는 개념이 달랐거든요."

바투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수를 놓을 수 있는 '히든', 상대방의 히든이 있을 법한 지점을 찍어 확인하는 '스캔' 등 바둑과 전혀 다른 룰이 적용돼 심리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갬블러의 심리전이 더 유용한 게임이다. 

하지만 이재웅의 전성기는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대중적 흥행이 이어지지 못해 2010년 10월 온라인 바둑게임 서비스가 종료된 것이다. 그의 바둑 운명도 완전히 꼬였다. 다시 한국기원 대회로 돌아갔지만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3·3 침입이 페널티를 먹는 바투 규정이 너무 몸에 익어서인지 실제 바둑을 두는 데 좀처럼 3·3 침입을 두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났어요. 마침 그 당시 바둑은 인공지능 '알파고' 등장의 여파로 3·3 침입이 거의 대세였거든요. 습관적으로 3·3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하기 시작하자 계속 지는 바둑만 두게 된 겁니다."

바둑기사로 다시 활동하는 동안 좌절의 시간만 보내던 그는 인천바둑협회에서 사범 제의가 들어와 결국 토너먼트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바둑 영재들을 양성하는 보급형 기사로 돌아섰다. 그때가 30살 무렵이었다. 방황하는 동안 그에게는 당구가 유일한 위로였다.

이재웅은 이전부터 비슷한 또래 기사들과 당구를 즐겼다. 이세돌을 비롯해 조한승·최철한·원성진·박영훈 등과 자주 당구로 어울렸다. 실력은 조한승이 가장 강한 편이었는데 이재웅이 나중에는 최강자로 올라섰다.

선배인 이세돌과는 20살 때 6개월 동안 동거를 한 인연도 있다. 그때 이세돌로부터 깊은 바둑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바둑 실력도 늘었다. 두 사람은 바둑 시합을 마치면 머리도 식힐 겸 당구장으로 향하는 일상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세돌과 자취를 한 경험은 그에게도 '넘지 못할 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세돌 선배가 둔 시합을 자주 복기했는데 수를 두기 전에 어떤 고민을 했고, 그 수를 왜 둬야만 했는지 등을 직접 설명해줄 때마다 저하고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바둑기사이지만 그때 이세돌 선배가 거의 '바둑의 신'으로 보일 정도였죠. 그 당시 이창호 선배와 이세돌 선배는 정말 '넘사벽' 수준이었습니다."

바둑기사 겸 당구선수 이재웅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승 김재근 만나 새로운 당구 인생 출발

보급형 기사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당구장을 더욱 자주 찾았다. 허전한 마음을 치유해주는 활력소를 당구에서 구한 것이다. 비록 중대에서 치는 수준이지만 승률이 95%를 넘었다. 

이재웅의 당구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는 'LGU플러스 3쿠션 마스터즈대회'였다. 그는 당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세계 유명 선수의 경기 장면을 직접 관전하기 위해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TV에서나 봤던 딕 야스퍼스, 마르코 자네티 등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까 제가 치는 당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당구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마치 이창호 선배와 이세돌 선배의 바둑을 보는 느낌이었죠. 그리고 국내 선수 중에서는 김재근 선수의 경기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이재웅은 얼마 후 김재근이 운영하는 인천의 당구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첫날 대대 기준 28점을 놓고 수지가 비슷한 동호인과 맞붙어 두 판을 내리 패했다. 그냥 패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박살이 나는 수준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마침 그 당구장에 자주 오시는 프로선수가 제가 치는 걸 보더니 '25점 정도 수준'이라고 하시길래 자존심이 무척 상했죠. 그래서 25점으로 내려 이를 악물고 내리 두 판을 이겼는데 애버리지가 무려 1.5가 나왔어요. 바로 28점으로 회복하고 계속 거기서 당구를 쳤습니다."

1년 정도 지나자 이재웅은 당구에 더 집중하기 위해 주말에 바둑 영재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바둑 영재를 양성하는 일 자체가 심력을 모두 쏟아야 하는 힘든 과정이어서 바둑과 당구를 병행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결국 그는 연구생 사범, 전국체전 감독 등 바둑과 관련된 직함을 모두 내려놓았다. 인생의 전성기인 35살에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김재근의 제자로 들어갔다.

"두 달 전에 정식으로 김재근 스승님이 저를 제자로 받아줬습니다. 어릴 때 잘못 박힌 습관을 고치기 위해 자세부터 스트로크까지 다 교정하는 중입니다. 당장 애버리지가 떨어져도 긴 장래를 위해서는 리모델링이 필요한데 경험이 풍부한 스승님의 가르침이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죠. 마흔 살이 되기 전인 내년에 대대 40점은 가능하다고 귀띔을 하시길래 반드시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합니다."

바둑기사 겸 당구선수 이재웅이 인천 주안CC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이재웅은 연습구장에서 매일 13~15시간 훈련에만 매진하고 있다. 바둑도 늦게 시작했지만,    30대 후반의 나이에 PBA를 도전하는 '늦깎이'라 고된 훈련으로 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약점인 뒤돌려치기를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마침 스승님의 뒤돌려치기가 장인의 반열에 오를 정도여서 그 비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또 같은 3부 리그의 송인덕 선배와도 연습구장에서 함께 땀을 흘리고 있는데 그 선배의 특기가 뒤돌려치기라서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바둑의 복기 장면처럼 특정한 배치 장면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 흔히 바둑기사의 기억법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이세돌의 경우 장면 하나씩을 사진처럼 기억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이재웅은 필름을 돌리듯이 전체 흐름을 통해 기억한다. 3쿠션에서는 당연히 전자의 기억법이 유리하다. 그래서 바둑기사의 장점을 살려 특정 상황마다 뇌에 저장하는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

지금 이재웅은 3부 리그인 '챌린지투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초반 탈락의 고배를 거듭 마시고 있다. 하지만 교정이 마무리되면 2부리그인 '드림투어'를 거쳐 1부리그로 등극할 날이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부리그에서 스승님과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정말 흥미진진하고 멋질 것 같아요. 제 당구 인생은 지금부터입니다."

바둑과 절연한 이재웅의 최근 취미는 동료 바둑기사들의 대국을 스마트폰으로 보는 일이다. 관전자 위치에서 '왜 이렇게 수를 놓았지'라고 혼자 킥킥거리면서 '힐링'을 즐기고 있다.

정완주 wjchung12@hankooki.com

바둑기사 겸 당구선수 이재웅이 스트로크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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