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산공원 옆 한 카페. 이른 시간부터 수십 명의 손님이 매장 밖까지 줄을 섰다. 이들이 손에 들고 나온 것은 바로 도넛. 가운데 부분에 동그란 구멍 대신 크림이 꽉 찬 이 도넛이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곳곳이 인스타그래머블한 매장 안은 인증샷을 남기는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맞은편 수제 버거 가게에도 긴 줄이 이어졌다. 이 가게들의 손님들은 대부분 MZ세대다. 맛집 탐방을 좋아하거나, 소셜미디어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 가게들의 이름을 눈치챘을 터. 카페의 이름은 '카페 노티드(이하 노티드)', 수제 버거 가게의 이름은 '다운타우너'다.
노티드와 다운타우너는 모두 'GFFG'의 작품이다. 2018년 설립된 GFFG는 매년 매출이 2배씩 성장하며 F&B 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노티드와 다운타우너 외에도 리틀넥, 클랩피자, 호족반, 웍셔너리 등 운영하는 F&B 브랜드만 총 6개다. 특히 노티드의 도넛은 한국에 때아닌 도넛 열풍을 일으키며 매일 생산 가능한 최대치까지 만들어도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됐다.
최근 롯데제과, 오리온 등 식품 제조 업체와 콜라보를 진행하며 마트, 편의점 등 GFFG의 맛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지만 GFFG의 매장들 앞에는 언제나 긴 줄이 서있다. GFFG는 어떻게 MZ세대 사이에서 웨이팅을 불사하고 꼭 방문해야 하는 맛집으로 등극하게 됐을까? DBR 337호에 실린 허준 GFFG 최고마케팅책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노티드 사례를 중심으로 한 GFFG의 리테일 및 마케팅 전략을 살펴보자.
돌아가는 손님을 위해 만든 도넛..
인플루언서들에게 입소문 나다
도넛이 노티드의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기까지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사업 초반 디저트 전문 카페로 기획된 노티드는 26년 경력의 최문성 파티시에를 영입하며 케이크, 푸딩, 쿠키 등 다양한 디저트를 선보였다. 도산공원 앞에 노티드 1호점을 오픈할 당시, 주변에는 디저트를 주력으로 한 카페가 없었던 터라 매장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이것이 높은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 번 음료와 디저트를 시킨 손님들은 몇 시간씩 매장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애써 찾아온 손님들이 발길을 돌려야 할 때 GFFG의 이준범 대표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회전율이 낮은 카페의 특성은 식당 사업만 해봤던 이 대표에겐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인기는 날로 높아지는데 매출은 정체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고, 급기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노티드는 되돌아가는 손님들의 '빈손'에 주목했다. 이들이 맛있는 디저트를 쥐고 돌아갈 수 있다면 미안한 마음이 가시는 것은 물론 매출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 포장을 열었을 때도 모양이 잘 보존돼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메뉴가 필요했다. 후보 중 하나가 도넛이었다. 이 대표가 미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보낼 당시, 도넛은 일상적인 간식이었다. 지역마다 특유의 맛과 모양을 지닌 로컬 맛집들도 존재했다. 반면 한국에서 도넛은 소수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판매되며 한 번에 두 개 이상 먹기 힘든 단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너무 달지 않아 여러 개 먹을 수 있는 수제 도넛을 예쁜 박스에 담아 팔면 노티드만의 시그니처 메뉴가 탄생할 것으로 보였다. 이후 최 파티시에가 디저트 크림으로 가득 채운 도넛을 개발했다. 도넛과 포장 박스까지 개발을 마치고 최종 출시 결정을 내렸다.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도넛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 작전이 펼쳐졌다. 작전의 핵심은 GFFG의 입지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플루언서들의 인플루언서'를 집중 공략하는 것이었다. 인플루언서들의 인플루언서란 말 그대로 연예인이나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며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이들이었다. 패션 마케터, 매거진 에디터, 포토그래퍼 등이 대표적이다. 다수 혹은 인플루언서 개개인보다 이들을 공략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넓게 노티드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보였다. 10년 경력의 패션 마케터 출신으로 이들과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던 허 CMO는 연예인 또는 모델들의 인터뷰 현장, 매거진 에디터의 미팅 자리 등 인플루언서들이 모이는 곳에 도넛을 보냈다. 도넛을 알리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시장성이 있는지 테스트하려는 의도도 컸다.
다행히 노티드는 이들의 까다로운 기준을 넘는 데 성공했다. 먼저 도넛을 보내지 않아도 매장을 방문해 도넛을 사가는 인플루언서들이 생겼고, 심지어 일주일에 매장을 3~4번씩 방문해 도넛과 다른 디저트를 바리바리 싸가는 톱스타들이 생겨났다. 유명 연예인들의 방문 소식은 SNS와 입소문을 타고 다른 인플루언서들을 불러 모았고 온라인 공간에는 이들의 방문 인증이 이어졌다. 노티드가 의도한 것들이 적중한 셈이었다. 2018년 첫 출시 때만 해도 청담 매장 한 곳에서 200개 정도 팔리던 도넛이 현재 14개 매장에서 하루 2만~3만 개가 판매될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F&B 브랜드의 영원한 숙제 '새로움'을 해결하다
F&B 브랜드는 유명해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카피가 많은 시장인 만큼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브랜드의 요소들을 리뉴얼함으로써 매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GFFG 역시 소비자들에게 더욱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GFFG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인지도를 쌓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GFFG는 다른 브랜드와 적극적으로 협업을 추진해왔다. 롯데제과, 오리온 같은 식품 제조 업체, GS25와 같은 유통 업체는 물론 삼성전자, 무신사 등 음식과 관련 없어 보이는 회사와도 폭넓게 협업했다. 삼성전자와는 갤럭시Z 플립 3 노티드 에디션, 노티드 액세서리 패키지 등을 출시했다.
그러나 브랜드 간 콜라보는 무작정 혹은 지나치게 자주 진행될 경우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가 소모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여기저기서 발견되기에 오히려 힙하지 않은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콜라보를 통해 최고의 시너지를 내려면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허 CMO는 GFFG가 콜라보 파트너를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로 '명확한 이해관계'를 꼽았다. 각자가 상대의 브랜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큰지 신중히 따져보고 뚜렷한 확신이 섰을 때 협업을 진행해야 함을 뜻한다.

GFFG가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확실해 효과를 거둔 사례로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의 콜라보가 있다. 사실 브랜드 콜라보는 허 CMO의 숙원 사업이었다. 2018년 그가 GFFG에 합류했을 당시, 고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는 것이 트렌드를 타고 뜬 2~3년 차 GFFG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는 해결책으로 브랜드 콜라보를 떠올렸고, GFFG와 결이 잘 맞는 브랜드들에게 협력을 제안했다.
그러던 중 2002년 무신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다운타우너와 노티드 매장에 무신사 테마를 입혀 일종의 무신사 쇼룸으로 꾸미자는 것이었다. GFFG는 무신사와의 협업을 통해 고객들에게 보다 새로운 공간과 제품을 선보이며 신선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또한 무신사가 보유한 광고 채널에 이벤트 소식과 함께 다운타우너, 노티드를 알릴 수 있다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고객을 유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2020년 8월 14일부터 한 달 동안 'Go! MUSINSA!' 이벤트가 진행됐다. 다운타우너와 한남점, 안국점, 청담점, 잠실점 4곳과 노티드 청담점, 한남점, 안국점, 서래점 4곳을 매장 무신사와의 브랜드 컬러인 검정색을 활용해 꾸몄다. 또한 노티드에서는 '무신사 도넛'을 특별 판매했다. 먹물을 섞어 검은색 빵을 만들었고 그 안에는 크림치즈와 바닐라를 배합해 노란색 크림을 넣었다. 각 브랜드의 컬러를 음식에도 반영한 것이다.
GFFG는 무신사와의 콜라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는 먼저 손 내밀어도 답하지 않던 브랜드들로부터 콜라보를 하자는 러브콜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식품 제조 업체 및 유통 업체와의 콜라보는 더 많은 고객이 GFFG의 음식을 편하게 찾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긴 웨이팅 때문에 GFFG 매장을 찾지 못하는 고객들이 간접적으로라도 맛을 체험하는 창구가 될 것으로 보였다.
이런 고민 끝에 롯데제과와 진행한 '쁘띠 몽쉘 몽블랑 케이크', 오리온-GS25와 진행한 '유어스 다운타우터X스윙칩' 등이 탄생했다. 두 제품은 편의점, 마트 과자 판매 순위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국에 있는 GFFG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GFFG의 맛을 담고 있는 전에 없던 제품으로 기존 고객들에게도 새롭게 다가간 것이다.
매장이 주는 미국에서의 경험,
고객 경험을 고려한 웨이팅 시간
GFFG의 음식은 배달도 되고,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기획 상품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GFFG의 고객들은 오랜 시간 줄을 서 가면서까지 매장을 이용하는 것일까.
허 CMO는 "GFFG의 미국적인 브랜드 색깔이 MZ세대에게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 것"이라며 "특히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GFFG의 음식이나 매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 여행을 경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GFFG의 모든 브랜드는 미국적인 맛을 표방한다. 버거도 미국식, 피자도 미국식, 심지어 중국요리도 미국식이다. 16년간 미국에서 유학한 이 대표의 영향이다.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며 일상적으로 먹었던 음식들이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거나 또는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는 모습을 보고 브랜드나 메뉴 개발에 영감을 얻는다.
예컨대 다운타우너는 자체 개발한 '아보카도 버거'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보카도를 버거에 넣은 최초의 시도였다. 미국에서 즐겨 먹던 아보카도가 한국에서는 생소한 재료라는 데 착안했다. 다운타우너 버거의 또 다른 특징은 버거가 서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한국에서 수제 버거를 시키면 고객들이 썰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 온갖 버거 맛집을 다녀 본 이 대표는 이 모습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버거는 한입에 베어 물어야 모든 재료가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를 느낄 수 있는데 칼로 썰어 버리는 순간 재료들이 전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다운타우너는 자체 제작한 명함 곽 모양의 종이 포장 박스에 버거를 세워 판매한다. 재료를 흘리지 않고 편하게 베어 먹게끔 만들기 위함이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경험한 버거의 맛을 한국에서도 성공시키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버거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1만여 개의 게시글을 일일이 살펴보기도 했다.
각 매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들 역시 고객들이 매장을 찾는 이유다. 다운타우너 잠실점, 안국점, 연남점, 광교점에서는 하루 20~40개 한정으로 쉬림프 버거를 판매한다. 에그스크럼블 버거는 청담점과 한남점에만 있다. 노티드 제주점의 제주녹차 도넛, 제주청귤 도넛 등 로컬의 특색을 살린 메뉴도 있다. 이러한 한정판 메뉴들은 메뉴 개발 차원에서 고객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해외의 정취를 느끼고 매장 고유의 메뉴를 즐긴다고 해도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상황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자칫 웨이팅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그 과정에서 불편함이 생기면 음식이 맛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기다릴 맛인가'하는 회의감도 든다.
GFFG 역시 매장별로 가능한 빠르게 대기 줄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대기 순번을 자동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매장도 있다. 웨이팅이 힘든 더운 날에는 매장 밖 대기 줄에 양산, 얼음물, 부채 등을 비치하고 반대로 추운 날에는 핫팻을 둔다. 노티트 일부 매장에는 웨이팅 동선에 포토 부스가 설치돼 있다. 노티드 테마로 꾸며진 사진 프레임을 제공해 웨이팅 과정에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함이다. MZ세대 사이에 웨이팅은 오히려 가기 힘든 매장에 성공적으로 입성해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GFFG가 매장 앞 기다림의 경험을 고도화하는 이유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337호
필자 이규열
정리 인터비즈 이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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