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떨어져도 요지부동 휘발유 값.. 정유사 마진 폭리가 '주범'
정유사가 휘발유를 팔아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이 최근 5년간 연 평균 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국제 유가를 기준으로 한 국내 휘발유 판매 금액은 연 평균 7% 오르는 데 그쳤다. 정유사의 휘발유 판매 수익 증가세가 국제 유가 상승률보다 3배가량 빠르다는 의미다. 이는 정유사가 휘발유 판매가에 임의로 더할 수 있는 마진을 대폭 올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락했음에도 국내 휘발유 가격 하락 폭은 제한적이었던 이유가 국내 정유사들의 마진 인상에 있었던 것이다.
반면 정유업계가 국내 휘발유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주유소 마진은 오히려 하락했다. 정유사는 국내 4사가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보다 높은 마진율을 책정할 수 있는 반면, 주유소는 1만개 가량이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보니 오히려 이익이 후퇴하고 있다.
◇ 휘발윳값, 세금 비중 줄어든 대신 정유사 마진 비중 늘어

2일 조선비즈가 사단법인 E컨슈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국내 정유사 4곳이 벌어들인 도로용 휘발유 총마진은 2017년 3542억원에서 지난해 7735억원으로 118.4% 늘었다. 연 평균으로는 21.6%씩 증가했다. 정유사의 총마진은 휘발유 소비량에 정유사의 리터(ℓ)당 유통비용 및 마진을 곱해 산출한다.
휘발유 가격은 ▲국제휘발유 가격 ▲정유사 유통비용 및 마진 ▲세금 ▲주유소 유통비용 및 마진 등으로 구성된다. 정유사는 국제 휘발유 원가에 인건비, 정제비용, 시설 운영·유지 비용, 유통비용, 마진 등을 더해 정유사에 납품하는 최종 판매가를 책정한다. 여기에 주유소가 유통 비용 및 마진, 세금 등을 더해 소비자가를 결정한다. 인건비와 정제비용 등 각종 비용은 대부분 정유사 유통비용에 포함되기 때문에 마진은 정유사가 갖는 순이익 개념이 강하다. 마진은 정유사가 수익성 개선을 위해 임의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휘발유 가격에 국내 소비량을 곱해서 산출한 원가매출 총액은 2017년 5조7127억원에서 지난해 7조3863억원으로 29.3% 늘었다. 연 평균으로는 6.6% 증가했다. 즉 정유사가 벌어들인 총마진은 이보다 3배 이상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국내 정유사가 국제 유가 상승률 대비 유통비용 및 마진을 3배씩 올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상승률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정유사가 유통비용과 마진을 매해 큰 폭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정유사의 ℓ당 유통비용 및 마진 평균은 2017년 28.5원에서 2018년 36원, 2019년 37.9원, 2020년 59.8원, 지난해 58원 등으로 꾸준히 올랐다. 정유사의 정제 비용이나 인건비, 유통 비용 등은 변동성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이런 상승 분은 대부분 마진 인상에서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연구실장은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정유사 유통비용 및 마진이 30원대에 불과했지만, 이후 대폭 상승했다”며 “해외에서 정제마진이 감소해 적자가 발생하는 부분을 국내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유사들은 국제 유가 하락 폭 만큼 국내 휘발유 값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유류세 등 세금과 주유소 마진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주유소 마진은 오히려 후퇴했다. 주유소 유통비용 및 마진은 2017년 1조548억원에서 2018년 1조2107억원으로 14.8% 올랐다가 2019년 18.9% 감소한 9814억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2020년 1조589억원으로 7.9% 늘어나며 1조원 선을 회복했지만, 지난해엔 10.6% 하락한 9465억원에 그쳤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연평균으로 따지면 마진은 오히려 2.67% 하락했다. 세금 역시 5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휘발유에 붙는 세금의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1.6%에 그쳤다. 주유소의 유통비용 및 마진이 후퇴하고 세금도 제자리 걸음을 걸으면서 소비자가로 판매된 국내 휘발유 판매 총액도 연 평균 3.5%씩 완만하게 상승했다.

◇ 정유사, 점유율 요지부동… 주유소는 “1원 경쟁 중”
주유소도 마진이 줄어드는 와중에 정유사만 높은 마진 증가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의 경쟁도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휘발유를 비롯한 경유, 등유, 항공유 등 경질유 시장의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SK에너지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29.7%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외에는 에쓰오일(S-Oil(010950))이 24.1%, GS칼텍스가 23.5%, 현대오일뱅크가 20.7%를 차지하고 있다. 주유소 점유율은 SK에너지(26.7%), 현대오일뱅크(21.5%), GS칼텍스(20.3%), 에쓰오일(19.0%) 순이다. 사실상 정유업체 4곳이 국내 시장을 4등분하고 있는 셈이다.
이서혜 실장은 “2020년 현대오일뱅크가 SK네트웍스 주유소를 인수하면서 각 사의 시장점유율이 잠시 출렁이긴 했지만, 매년 큰 차이 없이 유지되고 있다”며 “정유사가 마진을 낮게 가져간다면 국제 가격이 오른 만큼 비슷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국제 가격 상승분 대비 더욱 많이 정유사가 가져갔다는 것이며, 결국 경쟁이 덜해 이같은 가격 책정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정유업계가 과점 상태라 국제 유가 하락 시기에 마진을 올리는 방식으로 적자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주유소 업계는 점점 경쟁이 심화되면서 정유사처럼 높은 마진을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전국 주유소는 1만1154개로, 1년 전(1만1371개)보다 217개 줄었다. 전국 주유소 개수는 2010년 1만3004곳으로 점정을 찍은 뒤 매년 감소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40년 전국 주유소가 2980개까지 줄어야 주유소의 이익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알뜰주유소가 생겨나기 전까지만 해도 주유소의 마진이 ℓ당 평균 100원 정도였지만, 최근엔 70원대에 불과하다”며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보니 최근 주유소들은 ‘1원 차이로도 경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다만 정유업계 관계자는 “시차에 따라 국제 휘발유 가격과 국내 공급가격이 차이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 차이가 줄어 함께 움직인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 휘발유 가격과 소비자 가격의 차이는 주유소의 가격 책정 방식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주유소가 국제 휘발유 가격이 내려갈 때는 소비자의 심리적 거부감이 덜한 것을 이용해 원가 대비 느리게 가격을 인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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