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부동산 실패로 빚더미, 매출 300억 창업 성공으로 반전

미용·헬스케어 스타트업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의약품·의료기기 유통회사로 출발한 미팜은 최근 세포재생 물질을 이용한 탈모 관리 제품을 출시했다. /더비비드

사업의 시작 방식은 다양하다. 부업이 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팜의 권종욱(40) 대표는 대기업 광고회사 출신이다. 부업이 계기가 돼 매출 300억원의 미용·헬스케어 스타트업 대표가 됐다. 권종욱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공채 없이 대기업 광고회사 들어가는 법

미팜(MAYPHARM)은 의료기기, 필러, 보톡스 등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창업 8년 차에 연 매출 300억원을 달성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주력 상품은 탈모 완화 기능성 라인 ‘헤어나’다. 부스터 앰플, 샴푸, 트리트먼트, 토너등으로 구성됐다. 세포 재생 물질 '엑소좀'을 활용해 개발했다.

권종욱 대표는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더비비드

책을 좋아해 서울과기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문학가를 꿈꿨지만 당장 생계유지가 급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아버지가 실직하셨어요. 이후 무리하게 부동산에 투자하셨다가 빚이 우후죽순 늘게 됐죠. 집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꿈을 좇을 겨를이 없었어요. 이력서만 100개 넘게 썼습니다. 그러다 한 중소기업에 콘텐츠 제작 작가로 취업했습니다. 입사했을 때만 해도 회사 규모가 직원 4명밖에 안됐는데, 1년 만에 30명 규모로 고속 성장했어요. 하지만 회사가 커질수록 제 역할은 줄어드는 느낌이었죠.”

회사를 관뒀다. 관심 기업이 공개 채용을 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왜 그들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의문이 들더군요. 5분짜리 자기소개 영상을 만든 후 가고 싶은 광고 회사들의 인사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냈어요. 운 좋게 한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로부터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업으로 시작한 창업

중국에 국산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수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권종욱 대표 제공

면접에 합격해 광고 기획자로 근무를 시작했다. 대기업 직장인의 꿈을 이뤘는데, 생활은 기대와 달랐다.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야근이 잦았다. “각 구성원이 단계별로 일을 맡아서 진행하는 구조라, 제 차례가 올 때까지 대기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밤 9시나 10시까지 회사에 있는 일이 많았죠. 작업이 제게 넘어올 때까지 비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들었어요. 남는 시간에 창업 아이템을 구상하기로 했어요. 생활비 50만원을 제외한 모든 월급을 아버지의 빚을 갚는 데 썼던 터라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거든요.”

틈틈이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당시 업계 화두였던 온라인 성형외과 광고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잠재 소비자와 병원 상담 실장을 연결해주는 방식의 온라인 광고가 성행했어요.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 중국 시장에 주목했습니다. 한국에 성형관광을 오는 중국인 관광객이 계속 늘고, 중국 온라인 생태계가 확장하는 추세였거든요. 한족 출신의 대학 후배에게 중국 시장 조사를 부탁했어요.”

2013년 부업으로 온라인 성형외과 광고 사업을 시작했다. “성형외과에 사업제안서를 돌려 계약을 따냈습니다. 이후 성형 중개 비즈니스로 사업을 확장했고요. 어느 순간 이 일로 버는 소득이 회사 월급보다 많아졌습니다. 곧 퇴사하고 사업에 올인했죠."

2015년 미팜 법인을 설립했다. /권종욱 대표 제공

호황은 길지 않았다. 2015년 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충격을 받았다. "국내에 입국하는 중국인이 확 줄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사업 아이템을 전환해야 했습니다.”

◇회사 매출 100억원 넘겼을 때 들려온 끔찍한 소식

마침 중국 피부과 의사들이 국산 보톡스나 필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중국에 국산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수출하는 사업을 하기로 하고 2015년 미팜 법인을 설립했다. 2016년 1월 의약품 유통 허가를 받았다.

“정식 판매 허가를 받기 위해 약사를 채용했습니다.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직원 2명으로 출발했죠. 한 직원은 중국 명문대인 칭화대를 졸업했고, 다른 직원은 말레이시아어가 가능했어요. 아내는 중국어와 디자인에 능통했죠. 넷이서 의기투합해 중국에 필러, 보톡스 등을 수출했습니다.”

회사의 수명을 늘리려면 자체 제조한 제품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더비비드

회사를 매출 60억원 규모로 키웠다. 하지만 이번엔 사드(THAAD) 사태가 발목을 잡았다. “2017년 중국 매출이 급감했어요. 전략을 변경해 러시아, 유럽 등으로 수출국을 확대했습니다. 의약품 박람회에 참여하고 제약회사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물질과 신제품을 팔았어요."

타사 제품에 의존하는 방식으론 성장이 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회사의 수명을 늘리려면 자체 제조한 제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8년 필러 ‘미투필’을 직접 개발해 출시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30억원 이상 팔리는 등 성과가 좋았습니다.”

2021년 회사 매출이 100억원 넘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오랜 기간 가족의 발목을 잡던 빚을 다 갚아서 숨 좀 돌리나 했는데,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위암 말기셨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어요.”

◇두피에 미세 구멍 내 앰플 침투시키는 신기한 제품

권 대표는 엑소좀을 활용한 탈모 관리 용품 개발에 들어갔다. /권종욱 대표 제공

아버지 일을 계기로 치료나 관리 기능이 있는 제품에 관심이 갔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게 확장성 있겠다는 판단도 들었다. “마음 한켠에 탈모 관리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어요. 유전성 탈모 때문에 20대 중반부터 탈모 관리 제품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탈모용 제품이나 기능성 화장품을 두루 사용해봤지만 두피 열을 내리는 정도에 그쳐 아쉬웠어요. 발모에 특화된 제품은 찾기 어려웠고요.”

관건은 제품에 넣을 핵심 기술을 찾는 것이었다. 피부과 시술에 이용되는 엑소좀이 떠올랐다. “엑소좀은 몸속 세포들이 정보 전달을 위해 분비하는 세포 간의 신호전달물질입니다. 줄기세포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 핵심인데요. 그만큼 재생능력이 좋아 손상된 피부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죠. 엑소좀은 두피 영양 공급과 모낭세포의 활성화에 효과적입니다. 시중에 엑소좀을 이용한 탈모 제품이 없더라고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 6월, 탈모 관리 제품 ‘헤어나’ 시리즈를 출시했다. /더비비드

엑소좀을 활용한 탈모 관리 용품 개발에 들어갔다. “아무리 성분이 좋아도 두피에 제대로 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표피를 뚫고 진피층까지 성분이 전달돼야 하죠. 피부과에서 흔히 사용하는 MTS(미세침치료)니들을 활용했어요. 피부에 유효한 성분을 깊이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인데요. 헤어 앰플에 MTS를 부착해 엑소좀 성분을 두피 진피층에 주입하는 거죠. 앰플에 MTS를 끼워서 도장을 찍듯이 두피에 콕콕 찍어주면 침이 만든 구멍에 앰플이 들어갑니다. 바르는 두피 관리 제품보다 훨씬 침투력이 좋죠.”

◇7년 만에 매출 300억원 달성한 비결

헤어나 시리즈. /미팜

2021년 6월, 탈모 관리 제품 ‘헤어나’ 시리즈를 출시했다. 광고 회사 출신답게 공격적인 광고를 했다.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제품을 광고했다. “엑소좀 부스터 앰플을 필두로. 함께 사용하면 좋은 샴푸, 트리트먼트, 토너를 같이 출시했어요. 민감한 두피를 강화하고, 가늘어진 모발을 탄력 있게 만들어주는 엘-멘톨, 살리실릭애씨드, 덱스판테놀 성분을 포함해 탈모 증상을 완화하죠. 제형도 차별화했습니다. 시중의 트리트먼트는 점성이 높아 손에 짜면 덩어리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헤어나 트리트먼트는 묽은 형태였다가 물에 닿으면 덩어리로 바뀝니다. 최대한 표피에 침투시키기 위해 미세한 입자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사업 시작 7년 만에 매출 300억원을 달성했다. /권종욱 대표 제공

지난해 사업 시작 7년 만에 매출 300억원을 달성했다. “그동안은 B2B 비즈니스에 주력했는데 헤어나를 필두로 일반 소비자 시장 진출을 강화할 계획이에요. 엑소좀처럼 효능이 좋지만 생소한 물질을 꾸준히 물색해 헤어 제품을 개발할 구상입니다. 의약품·의료기기 유통사에서 더 나아가 모발 관리에 특화된 기업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잘 닦인 고속도로가 아니라 비포장도로도 새로운 기회에 닿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광고 회사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의약품 유통회사를 창업하고, 자사 필러·탈모 관리 제품까지 출시했어요. 광고 회사에 입사할 때도, 성형외과 광고일을 시작할 때도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길은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공개 채용 준비 대신 자기소개 동영상을 만들었고, 한국보다는 중국 시장에 관심을 가졌죠. 소비자에게 생소한 성분인 엑소좀으로 헤어나를 만들었고요. 많은 이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가면 역설적으로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 다수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주눅들 필요 없어요.”

/이나은 에디터